[프롤로그]나선의 시선

두 번째 삶을 위한 시선

by 준희최

전화기 너머 엄마의 ‘네가 이해해’라는 말에

나는 소파에 엎드려 흐느껴 울었습니다.

아내는 나를 부축해 안방으로 데려가,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문을 닫았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아내는 내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터지는 댐을 더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내와의 대화로 이 글은 시작되었습니다.




감정 하나를 온전히 말로 옮기기까지는

걷는 것보다 느리고,

말하는 것보다 조용하며,

잊는 것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글쓰기는 고백이 아니라 회복이었고,

회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 찾아낸 나의 첫 언어였습니다.


이 글은 ‘용서와 화해’라는 익숙한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잠재우는 명쾌한 해답도,

감정을 단정히 묶어줄 논리도 약속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삶의 결을 따라

안쪽으로 천천히 감아 들어갔다 지금으로 돌아오는

‘나선형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향해 몇 번이고 되돌아가

울고 있던 그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고,

다시 지금의 나로 돌아오는 감정의 나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빠가 되어 내 아이에게는 다른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분투했던

한 남자의 시간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돌고 돌아, 늘 같은 자리에 선 것만 같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주 조금 다릅니다.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조금 더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덜 외로워졌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조금’이 쌓여 만들어낸 변화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동안 나는 글쓰기를 잊고 살았습니다.

살아내는 일에 너무 바빠서, 마음을 들여다볼 틈도 없이.


아빠로, 남편으로, 한 명의 사회인으로

하루하루의 책임감에 버티듯 살아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아주 오래된 감정의 파편 하나가 내 안에서 반짝였고

저는 그 빛을 따라 문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언어가,

당신 안의 오래된 감정을 쓰다듬을 수 있기를.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천천히 감아 돌아 나올 수 있기를.


당신과 나의 두 번째 삶을 향한 걸음을

나선처럼 느리지만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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