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계획이 바뀌었다

본업을 그만두지 않기로 한 이유

by 김동욱

(커버: UnsplashEd 259)


들어가는 말

4화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전문 번역가로 가는 길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나는 계속 걸어가고 있다.”


여전히 걷고는 있다. 하지만 가려던 길이 조금 달라졌다.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2026년 초에 본업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2025년 한 해를 보내고 나니 그 계획이 바뀌었다. 왜 바뀌었는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브런치북 시리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2026년 초에 본업을 그만두려고 했다.


물론 곧바로 번역만으로 먹고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았고, 본업을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번역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번역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미래도 더 빨리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2025년 한 해를 보내고 나니 그 계획은 바뀌었고, 나는 여전히 본업을 계속하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말렸다. 번역 일을 하는 선배들도 그랬고, 본업의 선배들도 그랬으며, 심지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분이든 여러 일을 병행하는 분이든,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한층 불안정한 길로 가는 것을 우려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만류를 ‘어려움은 각오하고 있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넘겼던 것 같다. 파트타임 일을 병행할 계획도 있었고, 프리랜서가 쉬울 리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출판계가 안 어려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했다. 2017년에 당시 국내 2위 도매업체이던 송인서적이 부도났을 때, 나는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출판계를 기웃거리고 있었기에 이 나라가 출판을 얼마나 홀대하는지 흘깃 볼 수 있었다. 그때도 중소형 출판사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출판계는 늘 어려웠다.


하지만 2025년 출판계의 구체적인 현실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몇 출판사의 내부 사정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내가 작년 한 해 동안 엄청 애를 써서야 12월 말에 겨우 세 번째 번역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단지 내가 ‘신입 번역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출판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추측하자면, 2024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2.0%로 전망치를 밑돌았고, 특히 3~4분기는 각각 0.1% 성장에 그쳤다. 2025년은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람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줄일 수밖에 없는 게 책 구매가 아닐까.


현재만이 문제라면 몇 년 버티면 될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어떨까.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독서 인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최근 10년만 봐도 독서율은 2013년 72.2%에서 2023년 43.0%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2023년 기준으로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가 반전될 계기가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초중고 학생의 독서율은 95.8%로 성인보다 두 배 이상 높고, 연간 독서량도 36권으로 성인(3.9권)의 거의 10배에 달한다. 학생은 출판 시장을 지탱하는 중요한 독자층이다. 그런데 향후 5년간 초등학생은 54만 명, 전체 초중고 학생은 103만 명이 줄어든다. 학생이 성인이 되면 독서율이 떨어지는데, 그나마 현재 책을 많이 읽는 학생 자체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독서 인구의 급감은 이미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12월 논픽션 시장의 위기를 다루며, 팬데믹 이전 10년 동안 논픽션이 브렉시트와 트럼프, 미투 운동과 기후 위기를 설명하는 책들로 호황을 누렸지만, 최근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닐슨IQ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논픽션 판매량은 전년 대비 8.4% 감소했는데, 이는 페이퍼백 픽션 하락률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출판 관계자들은 “세상이 너무 암울해서 독자들이 현실을 이해하려는 책보다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책을 찾는다”라고 분석했다.


독자들이 짧고 무료인 온라인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왜 한 권의 책에 15파운드를 쓰느냐, 출퇴근길에 무료 콘텐츠로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만약 후자의 지적이 옳다면, 어쩌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디언》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출판 관계자가 이렇게 말한 것이 가장 인상 깊다. “판매량의 등락은 날씨와 같은 것이고,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기후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장기적 안목과 깊이 있는 사고를 돕는 논픽션은 여전히 중요하고, 나는 그런 책을 번역하고 싶다.


그렇지만 출판 번역을 ‘직업’으로 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출판 번역을 하고 싶은가를 돌아봐야 한다. 나에게 그 이유는 논픽션이 가진 가치, 깊이 있는 사고를 돕는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장 ‘전문 번역가’라는 직업적 정체성에 집착할 게 아니라, 한동안 더 ‘번역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내린 결정은 단순했다. 본업을 그만두지 않고 번역과 병행하기. (물론 솔직히 고백하자면, 막상 2026년 초라는 데드라인이 다가오니 현실적인 불안도 더해진 탓도 크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이 달라졌다. ‘전문 번역가’와 ‘번역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나는 어떤 걸 하고 싶은 걸까?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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