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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내가 박살낸 것들》

by KOSAKA

이 글은 브런치 작가 신정애님<내가 박살낸 것들>에 대한 짧은 감상문입니다.


처음 〈격파왕〉을 읽을 때, 저는 이 연작이 “부서짐”을 통해 삶을 재정리하는 방식의 기록이라고 느꼈습니다. 작가님께서 일부러 과장하지 않고, 사건의 난처함을 한 번 웃음으로 낮춘 뒤 천천히 관계로 시선을 옮기시지요. 그 리듬이 한 편을 넘기고 또 한 편을 읽게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유리잔이든 장독이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사소한 도구든, 그 파손의 순간은 늘 민망하지만 글 속에서는 애정이 됩니다. “내가 부순 것들”이 아니라 “함께 견딘 것들”로 마무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의 식탁〉에서 와인잔 파손이 불러오는 감정은 의외로 따뜻했습니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실수를 서로의 언어로 정리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기억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유머로 남습니다. 저는 이 태도가 전편의 숨결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처럼 일상 노동의 도구를 다룰 때는 그 도구가 품은 시간의 결이 손에 잡히듯 느껴집니다. 생활은 늘 작고 반복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반복이 때로는 성급함과 부주의를 낳고, 그 부주의가 파손을 부르지요. 그런데 작가님은 그 원인을 자기비난으로 끝내지 않고, “다음에 더 천천히”라는 다짐을 관계의 언어로 번역하고, 결과적으로 더 밝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장독 깨기〉를 읽으며 저는 “집”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시간의 독(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금이 간 독을 버릴 것인가, 살려볼 것인가의 선택 앞에서 글은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이 연작이 지닌 윤리입니다. 버리는 일은 쉽고, 보존은 손이 가는데, 작가님은 손이 가는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시죠, 그래서 〈버리지 않는 것〉이 후반부의 정서적 닻처럼 읽혔습니다. 이 연작에서 “보관”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다른 말이 아닐까요.


〈부러진 활〉과 〈내 눈에 비커〉처럼 물성이 선명한 사물들은 “긴장”과 “관찰”이라는 키워드를 불러옵니다. 활의 탄성은 삶의 복원력을 비추는 거울이고, 비커의 유리는 사유의 투명도를 은유합니다. 저는 이 두 편에서 작가님이 사물을 읽어내는 방식의 섬세함을 느꼈습니다. 설명을 길게 늘이지 않더라도 적확한 이미지 한두 개로 독자가 느끼게 하지요. 특히 한 장면을 정확히 포착해 놓고 그 장면이 스스로 말하도록 한 다음, 마지막 문단에서 관계의 숨을 끌어와 툭 얹는 마무리는 시리즈 전반의 미학처럼 보였습니다.


반려와 생명을 다룬 〈견생 묘생〉, 성장과 보호의 감각이 배어 있는 〈소녀와 새〉에서는 어조가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깨짐 앞에서 사람이 드러나고, 드러난 사람에게 다시 말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왜 이렇게 자주 깨뜨릴까”에서 출발한 질문이 “그럼에도 왜 웃을 수 있을까”로 옮겨가고, 그 이동을 통해 독자는 파손의 기록을 삶의 회복 일지로 읽게 됩니다. 저는 이 전환이 가장 아름답게 빛난 곳이 〈옆구리가 터져서〉라고 느꼈습니다. 결함을 결점으로 명명하지 않고, 사용의 역사로 재명명하는 태도—그 태도가 이 책의 마음이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제목의 힘입니다. 〈보노보노가 된 토끼〉, 〈쩍벌 곰돌이〉처럼 장난스럽고 정확한 명명은 클릭을 유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제목이 미리 웃음을 약속하고, 본문이 그 약속을 관계의 온기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오늘은 무엇을 또 부쉈을까”가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함께 수습할까”를 기대하게 됩니다. 마지막의 〈이건 말 안 해야지〉는 이 연작에 필요한 여백으로 읽혔습니다. 모든 파손이 말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깨짐은 조용히 흘려보내야 더 나은 내일의 손놀림이 가능하다는 제안—그 절제 덕분에 전편의 밝음이 가볍지 않게 남았습니다.


총 24편을 다 읽고 나니, “파손”은 사건이 아니라 관계의 단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가 깨지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고, 사과하고, 농담하고, 수선합니다. 그 일련의 과정이 곧 함께 사는 방법이고, 작가님은 그 방법을 선언이 아니라 습관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집 안의 사소한 금 간 물건들을 한 번 더 쓰다듬어 보고 싶어집니다. 버리지 않고 놓아두는 일, 고쳐 쓰고 다시 웃는 일이 곧 우리의 내구성을 키우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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