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런치 작가 아르칸테님의 <팔자>에 대한 짧은 감상문입니다.
제가 읽은 이 소설의 주제는 가족은 사랑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 오늘 내리는 결정과 그 결정의 비용을 끝까지 책임지는 행동이 가족을 버티게 한다는 것, 그래서 중요한 건 말의 크기가 아니라 약속의 이행이고, 통장·영수증·녹취·서류 같은 것들일 때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요하면 끊을 것과 지킬 것을 나누어야 하고, 그 선택을 실제 생활에서 운영할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읽혔습니다. 이 작품은 장면마다 그 과정을 보여 주며 “가족은 선택·이행·책임의 합”이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합니다.
이야기는 자녀인 화자의 시선으로, 병을 앓는 어머니가 주소 이전·통장 정리·서류 준비 같은 현실 문제를 직접 처리하며 무너진 살림을 다시 세우는 흐름을 따라갑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지나 서울에서의 만남과 결혼, 아이 문제로 삶이 크게 흔들리는 국면이 나오고, 어머니는 기관과 병원, 행정 창구를 오가며 아이를 찾고 생활을 복구하려 애씁니다. 이 과정에서 통장 내역·영수증·녹취 같은 증거가 말의 진위를 가르고, 그때마다 돈·시간·돌봄의 배치가 바뀝니다. 각 편은 현재의 한 장면으로 시작해 그 결과로 닫히고, 전체로 묶이면 “말보다 행동, 선언보다 이행”을 축으로 한 가족 재정비의 서사가 됩니다.
전체적으로 수식을 줄인 동사 중심의 서술이 좋았습니다. “무엇을 했다, 어떤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다”가 앞에 서고, 감정은 그 뒤를 따릅니다. 장면 뒤에 통장·영수증·녹취 같은 근거가 붙고, 생활 단위의 결과(지출·이동·돌봄 변화)로 닫는 반복 리듬이 안정적입니다. 대사는 기능이 분명해 책임을 지는 말은 짧고 실행으로 이어지고, 책임을 피하는 말은 길어지며 지연됩니다. 연재 형식임에도 시작·멈춤 지점을 정확히 골라 회차별 완결성과 전체 응집을 함께 유지합니다.
이 브런치북을 읽으며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생각났습니다. 두 작품 모두 “가족은 감정이 아니라 매일의 결정과 그 비용으로 유지된다”는 관점에 서고, 말보다 이행과 기록을 믿습니다. 다만 『팔자』는 지금 여기의 행정·살림 기술(주소 이전, 자동이체, 보호자 결정 등)로 문제를 풀며 현재형 생활을 전면에 놓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세대와 역사의 압력을 함께 비추어 가족의 선택을 긴 시간의 축에 올립니다.
용서의 방식도 달라서, 『팔자』는 이후 설계를 운영할 힘이 마련되었을 때 가능한 선택으로 다루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오랜 기록과 견딤이 쌓이며 가까워지는 감정으로 다룹니다. 같은 주제를 다른 눈금으로 측정하는 한 쌍입니다.
제목이 ‘팔자’인 이유도 본문 안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초반부터 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운명에 기대지 않는 태도를 드러내고, 중후반에는 주변 사람들이 누군가의 삶을 “팔자 탓”으로 단정하려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작품은 이런 통념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갈라지는 순간마다(가족이 흩어지고 다시 모일 때, 믿음이 흔들릴 때, 끊고 지킬 것을 나눌 때) 실제 선택과 이행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팔자’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뜻을 빌려오되, 그 말을 뒤집어 “팔자라 해도 바꾸는 건 오늘의 선택”이라는 메시지로 연결됩니다. 동시에 얼굴과 몸에 남는 생활의 자국(일을 오가며 생긴 걸음과 주름)까지 함께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가족을 이루는 사랑만큼 중요한 건 일상에 대한 약속”이라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관계를 붙잡는 건 큰 말이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내는 태도였습니다. 서류를 챙기고, 통장을 정리하고, 약속한 일을 미루지 않고 마무리하는 것—그 소소한 이행이 사랑의 무게를 실제로 지탱했습니다. 말은 길어도 달라지지 않을 때가 많고, 영수증 한 장, 메모 한 줄 같은 기록이 신뢰를 지켜 줍니다.
그래서 그 구성원들간의 사랑과 더불어 오늘 지킬 약속을 적고, 그걸 해내기. 그 작은 실행이 쌓여야 가족이라는 이름이 오래 버틴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충분히 설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