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시간을 건너는 돌다리
오사카, 나카노시마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다리 하나가 있다. 이 다리는 언뜻 보기엔 여느 도시의 교량처럼 평범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리 입구 양편에 버티고 선 돌사자상을 마주한 순간, 그저 그런 다리라는 인상은 완전히 사라진다. 돌사자의 눈동자와 마주친 사람은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 다리의 이름은 나니와바시(難波橋). 오사카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자의 다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강을 사이에 둔 수많은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 다리는, 단지 ‘강을 건너는 도구’가 아니라 도시의 기억과 정체성을 간직한 상징물이다. 돌사자상 뒤편으로 흘러가는 강물 위에 수백 년의 시간이 겹쳐지고 있다.
오늘날 나니와바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무엇보다도 이 두 마리의 석조 사자상이다. 건너편을 마주보는 듯한 두 사자는 각각 다리 양끝 기단 위에 놓여 있어, 마치 이 도시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보인다. 사자는 원래 일본 전통 건축물이나 신사 앞에서 볼 수 있는 ‘수호의 상징’이다. 하지만 현대 도시의 도로교 위에서 이토록 당당하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사자상은 흔치 않다.
이 사자상은 1915년(다이쇼 4년)에 설치되었다. 당시 오사카 시는 도시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주요 다리들을 철근콘크리트로 재건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니와바시는 석조 아치형 교량으로 재탄생했다. 다리 양끝의 사자상은 이러한 도시의 근대성과 위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사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켜봤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쓴 채 바쁘게 지나가던 회사원도, 강가에서 데이트하던 연인들도, 출근길에 고개를 숙인 채 걷던 수많은 노동자들도 이 사자들의 시선 아래 있었다.
‘나니와바시’라는 이름은 ‘나니와(難波)’라는 고유 지명에서 유래했다. ‘나니와’는 고대 일본에서 오사카 지역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즉, 이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나니와의 입구’, ‘나니와로 향하는 길’이었던 셈이다.
최초의 나니와바시가 정확히 언제 처음 놓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에도 시대 초기부터 다리가 존재했으며, 당시에는 주로 목재로 만든 간이 교량이었다. 17세기 후반부터 나카노시마를 중심으로 상업이 번성하면서, 이 지역의 다리들도 점차 견고하고 화려하게 변화했다.
에도 시대 말기에는 나니와바시가 텐진마츠리(天神祭)의 주요 무대로도 기능했다. 텐진마츠리는 오사카의 대표 여름 축제로, 수많은 배들이 도스보리강 위를 떠다니며 축제를 벌이는 장면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 축제의 중심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다리, 그곳이 바로 나니와바시였다.
우타가와 히로시게 2세가 그린 우키요에 작품 『諸国名所百景』 중 한 장면은 텐진마츠리의 밤 풍경을 생생히 담고 있다. 하늘엔 등롱이 붉게 빛나고, 수십 척의 배가 물길을 가르며 유람을 벌인다. 강 위에는 깃발을 단 배가 행렬을 이루고, 뱃사람들의 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풍경의 배경에서, 어둠을 가르듯 웅장하게 놓인 다리가 바로 나니와바시다.
이 우키요에 속 나니와바시는 지금의 돌다리와는 다르게 목조 구조의 긴 교량이다. 다리 위엔 인파가 붐비고, 강 아래는 빛과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오사카라는 도시가 살아 숨 쉬는 장소로서의 다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 속 나니와바시가 뿜어내는 생동감은 오늘날 사자상이 지키는 조용한 다리와 대조적이지만, 그 안에 흐르는 시간의 중첩은 오히려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나니와바시는 물리적으로는 그저 도지마강을 넘는 하나의 교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다리를 건너는 일은 종종 단순한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오사카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일이자, 도시 속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과 기억을 건너는 행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