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게임_무림고수 K
나는 학창시절부터 스포츠에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다. 예를 들어 체력장을 하면 친구들 중에 공을 가장 멀리 던졌고, 체육대회를 하면 이어달리기 주자로 나서곤 했다. 그래서인지 스포츠는 나에게 아주 재미난 놀이였다. 소싯적부터 지금까지 즐긴 스포츠를 순서대로 꼽자면 수영, 빙상, 축구, 핸드볼, 탁구, 배드민턴, 야구, 농구, 십팔기, 당구, 볼링, 스키, 스노우 보드, 테니스, 골프 정도다.
묘한 것은 이 모든 스포츠가 어떤 식으로든 각기 연관이 있다는 거다. 어려서 스피드 스케이팅을 했던 나는 이른바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야 스키와 스노우 보드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얼음과 눈 위라는 차이가 있을 뿐 몸의 무게중심을 잡고 미끄럼을 타면서 속도를 겨루는 동일한 유형의 스포츠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일단 타보니 그랬다. 스키도 스노우 보드도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스키장에 간 첫날 나는 중급코스에서 나름 자유자재로 턴을 하면서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같이 갔던 동행인들이 “솔직히 말해. 너 스키 처음 아니지?” 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더 묘한 것은 무예 십팔기와 골프의 그 직접적 연관성이다. 나는 서른 여덟 살에 처음 골프 클럽을 잡았다. 그때 호주 투어프로 출신인 프로가 골프 스윙 시범을 보이는데 대번에 골프와 십팔기의 몸 쓰는 원리가 같음을 알았다. 그 뒤 한 달 쯤이나 됐을까. 풀 스윙을 하기 시작하자마자 비거리가 많이 났는데, 그것은 젊어 십팔기 원리를 몸에 익힌 덕분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 내가 키가 크거나 울퉁불퉁 알통을 자랑하는 기골장대형도 아닌데 남들 못지않게 멀리 치는 이유를 꼽으라면 그것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무술에 이유제강(以柔制强)이라는 말이 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무협지에나 나오는 말 아니냐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도장에서 무술을 같이 익힌 이들 중에 결국 승자는 부드러운 몸 움직임을 만들어 가진 사람들이었다. 대련을 붙어보면 부드러움에 강한 힘이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힘이야 말로 수련하면 할수록 더 커질 수 있는 힘이다.
골프? 주말골퍼라도 대부분 다 안다. 스윙이 부드럽지 않으면 똑바로 멀리 칠 수 없다는 것을. KPGA 투어에 갤러리로 한 번 가보면 알게된다. 근육질 선수들이 얼마나 부드러운 스윙을 구사하는지. TV나 동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게 친다. 어떻게 저렇게 스윙을 하지, 그저 놀라게 될 거다. 그래서 나도 가능한 한 부드러운 스윙을 추구한다. 필드에서 내 드라이브 샷 거리는 캐리 240~260미터쯤 될 터이다. 물 흘러가듯 부드럽게 스윙했는데 스위트 스폿에 정확하게 공이 맞아 묻어나가는 임팩트 느낌이 들었을 때가 캐리 260미터를 때릴 때다. 만약에 손목과 팔, 어깨 등 상체를 부드럽게 하지 않고 딱딱한 근력으로만 볼을 친다고 가정해보자. 내 생각에는 캐리 220미터 치기도 바쁠 거 같다.
상체와 하체 꼬임의 원리. 나는 십팔기 도장에 다닐 때 ‘바닥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허리를 틀었던 탄력으로 주먹과 발차기를 쏘아내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그런 주먹 지르기와 발차기를 하려고 부단히 수련했다. 모범답안인 해범 선생과 사형들의 몸놀림을 흉내 냈다. 그렇게 해야 힘이 붙는 걸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골프도 원리가 꼭 같지 않은가. 결국 골프는 탄력으로 치는 것이다. 몸과 클럽 샤프트가 갖는 탄력 말이다. 활 시위를 제대로 당겨야 화살을 강하게 쏘아낼 수 있다. 중년 골퍼들이 해마다 비거리가 한 클럽씩 줄어든다는 하소연을 한다. 나이가 들면 비거리도 주는 게 당연할 거다. 그런데 그게 근력이 줄어서라기 보다는 유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상은 근육량이 감소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리 몸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비거리가 줄었다면 먼저 몸의 탄력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운동이라면 주말에 골프 연습장에 가는 정도다. 그런데 연습장에 가기 전에 스트레칭을 보통 10여분쯤 한다. 그리고 연습장에 가서도 골프 클럽을 휘두르기에 앞서 20여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다. 오래된 버릇이다. 십팔기를 배울 때부터 그렇게 몸에 익었다. 도장에 들어가면 먼저 기마식이니 궁전식이니 하는 기본식을 하고,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같은 기본 발차기까지 하면서 몸을 푸는 시간이 보통 30~40분쯤 됐다. 그리고 혼자 수련하는 권법, 이어서 상대와의 대련, 그리고 검과 봉 같은 병장기 순서로 운동을 했다. 그 패턴 때문인지 몸을 풀지 않고는 나는 어떤 운동도 하지 않는다. 뻣뻣한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운동이 잘 안되고 당연히 재미도 없다. 부상의 위험이 커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골프연습장에 가보면 스트레칭을 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드라이버를 꺼내 풀스윙을 하는 주말골퍼들을 볼 때가 있다. 저러다 몸 다 상할 텐데, 내가 다 걱정이 앞선다. 나는 아침 침대에 누운 상태로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나온다. 주말 골퍼들이여, 스트레칭 습관을 가져보라. 그게 곧 비거리 신장의 특효약이 될 것이다.
“골프 그게 운동이 되니?” 골프를 시작하기 전 테니스에 빠져 있을 때 친구들이 골프를 권할 때 내가 했던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운동이 물론 된다. 연습장에 가서 2시간 정도 공을 쳐보면 안다. 땀에 흠뻑 젖게 될 것이다. 몸에 유연성과 근력이 없다면 2시간 연습이 불가능할 것이다. 2시간 정도 편하게 골프스윙을 하지 못할 체력이라면, 몸부터 만드는 게 정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부상 염려 없이 재미있게 골프를 할 수 있을 테다. 골프 라운드를 나가 보면 카트을 타지 않는 동반자들이 있다. 그렇게 라운드 내내 뛰거나 걷는다면 그 거리가 6~7킬로미터쯤 될 것이다. 이러니 골프가 왜 운동이 안되겠는가.
평생 스포츠광으로 살아왔다고 자평하는 내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게 골프다. J와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되서 스키장에 간 일이 있다. 그때 나는 스노우 보드를 타고 고급코스를 유유히 내려왔는데, J는 슬로프 자체가 너무 무섭다고 했다. 그 뒤로는 스키장에 간 일이 없다. 테니스는 10년 넘게 레슨도 받고 아주 즐겼었다. 보통 서브와 스트로크 위주의 단식을 즐겨 쳤는데 지금 내 몸상태로 그렇게 테니스를 쳤다가는 무릎과 발목이 대번에 망가질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골프가 이제는 꼭 마음에 든다.
골프장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언젠가 산 중턱에 자리잡은 골프장 그늘집에서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나왔는데 저 멀리 보이는 산과 산의 굴곡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신이 수려한 붓 놀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았다. 페어웨이에 밟히는 잔디, 철마다 바뀌는 색깔과 모양의 나뭇잎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위안을 전한다. 내가 한때 즐겨 불렀던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브라보 마이 라이프’처럼 자연이 나에게 브라보를 외쳐주는 거 같다. 잘 살아왔다고, 또 열심히 살 거라고. 아마도 나는 골프채 들 힘만 있다면 평생 골프를 계속할 거 같다. 대한민국 중년 주말골퍼들도 생각이 비슷할 거다. 이게 바로 사는 재미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유어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