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파랗고 높은 하늘. 하늘이 정말 잘 보이는 자리였다. 조금 춥긴하지만 매일 창밖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8월의 끝, 방학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나는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미끄럼틀 아래서부터 거꾸로 올라오다가 넘어지면서 가장 윗쪽에 걸터 앉아있던 나를 밀어버렸다. 그 아이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쳤다. 그리고 나는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내어 울었다.
같은 곳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과 그 어머님들이 한데 모여 나를 둘러 싸고는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오른 팔목을 바라보며 울기만 했다. 팔목 가운데가 이상하게 엇나가 있었다. 그곳 말고는 멀쩡했으나 나는 무서웠던 건지, 아팠던 건지 정신 없이 울었다. 한 아주머니께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휴대전화를 꺼내드시고는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울어서 꺽꺽 숨이 찼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나 걱정하던 찰나에 근처에서 놀던 내 동생과 언니가 달려왔다. 아주머니는 언니에게 엄마의 연락처를 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는 금방 퇴근해 옷을 갈아 입은 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모르는 전화번호였을 텐데 단 번에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얘 이름이 뭐라고? 지원이? 지원이가 지금 다쳐서요."
"네? 지원이가 다쳐요?"
"애가 놀다가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떨어졌는데, 지금 다른 데는 모르겠는데 애가 계속 팔을 못 움직여요. 팔이 좀 이상해요."
"네? 팔이요? 어디.. 어디에요?"
"여기 그 5단지 제일 큰 놀이터.."
"금방 갈게요."
엄마는 한 걸음에 달려왔다. 운동이라곤 해본 적도 없고 빼빼마른 엄마가 무슨 힘이 있었던 걸까. 누워있던 나를 업고 집까지 달렸다. 엄마는 다른 곳은 다치지 않았는지,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는 화를 냈다. 도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다치냐고. 동네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형외과는 갈 일도 없으니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님도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아이고야. 조심 좀 하지 니네 엄마 얼굴 하얗게 질렸다. 부모 걱정시키는 게 제일 큰 불효야."
불효가 뭔지 생각할 나이도 아니었고, 나는 팔목이 잘못될까 무서워 누가 뭐라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차에서 내리면서는 부러진 팔목을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날까봐 팔꿈치에 힘을 주고 반대쪽 손으로 지탱하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깁스를 하게 되었다. 팔목 뼈 두 대가 나가서 임시로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고, 3일 후 통깁스를 하기로 했다. 학교에 가기까지 그래도 시간이 남았던 터라 다행이라고 했다. 임시로 해둔 건 너무 약해서 잘못 건드리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통깁스를 하고서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서는 엄마한테 미리 연락을 받은 후라 아이들에게 조심할 것을 신신당부 하셨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오른 팔을 다친 터라 글을 쓰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조금 버거웠다. 하지만 지나치게 소심하고 말이 없는 아이었던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원래도 점심 시간에 나가서 노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팔이 다친 후로는 화장실 조차 잘 가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9월 말이 되고 자리를 바꾸었다. 나는 창가 자리로 가게 되었다. 내내 교실 가운데 자리였다가 창가 자리로 간다니 기뻤다. 항상 끝 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그 옆 공간에 짐을 놓는 것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에서는 바람이 살살 불어왔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마자 햇살에 이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쁜 학교 정원과 우리 안에 있는 토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때 보다 높고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애국가에서나 듣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 하늘을 처음으로 의식해서 바라본 날이었다. 그 푸르름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아침 조회가 시작될 때까지 하늘만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 되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부는 바람이 궁금해 급식을 남기고 홀로 밖으로 나섰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지만 조금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교정의 나무들이 형형색색 물들어가고, 샛노란 병아리들이 어미 닭 곁에서 삐약삐약 소리 내고 있었다. 모래 바닥의 질감과 한 발, 한 발 딛을 때 마다 나는 모래알 소리에 집중해서 계속 걸었다. 빨간 단풍을 바라보다가,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을 바라 보다가, 나무 아래 앉아 나뭇가지를 줍고는 왼손으로 모래 위에 아주 못생긴 그림들도 그렸다. 정신 없이 뛰노는 아이들이 사이에서 나는 온전히 자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모래를 긁고 있던 중, 예비 종이 울렸다. 뛰놀던 아이들은 하나 둘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저린 다리를 톡톡 두드리고는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때 마침 나는 발 아래 너무나 완벽한 모양의 은행잎을 발견했다. 왜일까, 그 잎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결국 그 은행은 주워서 교실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알림장 사이에 끼우고 싱글벙글 웃었다.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늘이 맑길 바랐다. 맑은 날이면 항상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해 가을의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나의 학교 생활 중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주었다. 아직도 조금 찬 바람이 불어오면 그날의 내가 떠오른다. 그리고 맑은 하늘의 가을을 손꼽아 기다린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가 없을 때면 그때가 그리워진다. 그 해의 가을은 내 마음의 명사가 되었고, 소심하고 외로운 여유와 안정을 알려준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