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전부 가벼웠다.
손가락 끝으로 숫자를 눌러보는 일,
작은 금액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화면,
잠깐 스쳐 지나가는 환호음.
그 모든 것이
일상 위에 얹힌 작은 먼지 정도로 느껴졌었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근했고, 밥을 먹었고,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그 속에서 틈틈이
문을 열고, 닫고, 다시 열었다.
그게 습관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도박은 처음에는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조용히 곁에 서 있을 뿐이다.
낯설지 않은 얼굴로,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경계심을 늦출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익숙함 앞에서 가장 쉽게 무너진다.
"조금만 더."
"이번엔 다를 거야."
그 말들은 누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딘가에서 알아서 떠올랐다.
도박은 사람의 말투를
기억 속에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유혹한다.
나는 스스로를 속이며
조금씩 그곳에 시간을 태워 넣었다.
크게 잃지 않았고, 크게 벌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큰 파도는 경고가 되지만
잔물결은 늘 위험을 숨긴다.
어느 순간
‘잠깐’이 ‘하루’가 되고
‘조금만’이 ‘다음 번’이 되었다.
나는 숫자를 보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계산되어 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발목은 한 번에 잡히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기척 없이,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잡혀 들어갔다.
사람이 추락을 인지하는 순간은
이미 절반쯤 내려간 뒤다.
그때의 나는
아직 바닥이 있다는 믿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더 내려갔다.
그게 함정이었다.
도박의 바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