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나는 회피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회피를 할 바엔 감당하지 못할 것들에 온몸이 부서지기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유일하게 회피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다.
사춘기 이후로 비교적 최근까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쌓여온 갈등 앞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부모님도 내게 너무했지만,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원망은 종종 나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어쩌면 그게 부모를 가장 아프게 하는 방법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했다. 다만 그 방식이 서툴렀고, 내가 바라는 방식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 또한 최선을 다했다. 원하는 것을 말했고, 나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감정에 점철된 호소는 늘 설득력이 부족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한 만큼 실망했고, 서로에게 노력한 만큼 상처받았다.
나는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학구열이 높은 부모님께 일본 유학을 말했을 때, 그건 도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거래였다. 그들이 바라는 걸 해줄 테니, 이 정도 지원은 해주는 게 맞지 않느냐는 못된 심보였다.
코로나 시기의 일본은 너무 우울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부모님 몰래 자퇴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 식사를 하던 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그날 아빠에게 내가 본 가장 슬픈 눈을 보았다. 엄마는 잠을 설치며 귀신을 본다고 했다. 나는 내가 없어도 되는 존재인 줄 알았다.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으니, 사라져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악으로 깡으로 버텼지만,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이미 망신창이었다.
그때 알았다. 성경 속에서 다시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부모처럼, 부모에게 자식은 족쇄이자,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그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 아픔을 지금도 회피한다. 아직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러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죄책감에 내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후의 내가 드라마틱하게 갱생한 효녀가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쌈닭처럼 싸우고, 여전히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다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님이 내게 그랬던 것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낸 삶 안에서는 그것이 옳은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던 지지와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내가 부모님을 함부로 대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우리의 관계가 극단에 이르고 나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아마 부모님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기 위해 스스로 깨지고 부서져야만 했다. 그 과정은 필요했다.
아직도 지난 시간을 입에 올리기에는 서로에 대한 원망이 너무 많다. (몇 번 대화 끝에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이야기가 원망이 아니라 사랑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과거를 회피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땐 정말 미안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