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나의 감정에게

안녕, 나의 불안아

by YOZO

내게 가장 미운 감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불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불안이 언제나 나쁜 감정만은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내게는 유독 쉽지 않은 감정이다. 불안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공부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잘하면 가치 있고, 못하면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믿음은 어느 순간 내 안 깊숙이 자리 잡았다.

영어 듣기 평가 날, 나는 문제보다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려 시험을 망한 적이 있다. 하나라도 틀리면 등급이 떨어져 외국어 고등학교를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나에게 그것은 사형 선고와 같았고, 그날 나는 떨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무너져버렸다.

재수 학원을 다닐 때는 마음을 굳게 먹고 부모님께 휴대폰을 반납했다. 친구들에게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것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그날, 학원에서 처음으로 공황이 왔다. 조퇴를 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죽을 것 같다며 울면서 다시 휴대폰을 받았다. 그렇게 나의 ‘당분간’은 반나절도 채 가지 못했다. 지금도 폐쇄된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공부로 나를 증명해 보이려는 강박에 불안이 생겼다면, 관계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거 아닐까,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유기 불안이 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나를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이 헌신하고 이해했다. 풍요에서 나오는 베풂이 아닌, 빈곤에서 비롯된 허덕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회피형의 사람에게 더 매달렸다. 서로에게 좋을 것 하나 없는 연애를 반복하며, 서로를 망가뜨리는 관계를 오랜 시간 놓지 못했다. 떠나지 못한 건 사랑이 깊어서가 아니라, 버려질 것이 두려워서였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나는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 내게 불안은 약함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괜찮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늘 무언가를 해내야만 했다. 잘해야 가치 있고, 사랑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긴장한 채로 세상을 버텨낸 시간이 조금씩 나를 잠식했다.

나는 불안을 억눌렀지만, 그래서 잡아 먹혔다.

시험 전의 떨림에, 폐쇄된 공간에서의 숨 막힘에, 사랑이 식을까 두려워 매달리는 마음에.


그렇게 오랜 시간 불안과 싸우고 나서야 깨달았다. 불안은 나를 망치러 온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나의 가장 솔직한 신호였다. 지금 너무 두렵다고, 앞으로 나아갈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경보음이었다. 나를 망치고 있었던 것은, 불안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불안을 없애야 할 존재로 보지 않기로 했다. 쫓아낼수록 배로 돌아오니 품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아직 완전히 화해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습관적으로 불안이 먼저 올라오고, 나는 지레 겁먹어 경직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잠시 멈춰 서려고 한다. 이것이 학습된 신경계의 과도한 반응은 아닌지, 지금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불안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감정을 밀어내기보다, 그 안에 숨은 마음을 읽어보려 한다.


나는 불안이 아니다.

불안은 나를 망치러 온 것이 아니다.

그저 나를 지키려는 신호일뿐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