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낭만
엄마는 성격이 급하다. 나도 엄마의 그런 면을 닮아 조급한 사람이다. 아니,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살면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체크카드를 발급받는데 1, 2주가 걸리고, 인터넷을 설치하려면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속도를 자각한다.
이 ‘빨리, 빨리’ 문화는 분명 빠른 경제 성장에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AI의 도래 속 급변하는 세상에도 빠르게 적응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조급함이 마음이 성과보다 앞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친구들은 내게 속도는 같은데 손만 분주하다고 놀리곤 했다. 혹은, 고작 며칠 공부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실망하기도 했다. 조급함은 침착함을 저버리고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하게 했다. 그렇게 종종 최선을 망가뜨렸다.
그렇다고 조급함을 없애겠다는 다짐 하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나를 더 조여왔다. 대신,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내게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과를 빨리 확인할 수 없는 취미를 일부러 선택한다면, 과정을 견디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걸 같았다. 성실함과 꾸준함은 그런 시간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날로그가 그 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두 가지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전소설과 필름카메라다.
독서는 느리다. 같은 분량이라도 어떤 책은 한 시간이, 어떤 책은 두 시간이 걸린다. 영상처럼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대신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물게 한다. 그리고 오랜 여운에 여러 번 되새김질하기도 한다. 특히 고전소설은 미사여구가 많다. 옛날에는 그 화려한 표현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시대의 풍경을 묘사하는 그 예쁜 말들이 마음에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어를 모으다 보면 표현이 풍요로워지고, 표현이 풍요로워지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조금은 다채로워진다.
필름카메라는 사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인상 깊게 보아서 산 것이었다. 거기에서 은중은 첫사랑인 천상학에게 필름카메라를 배운다. 내가 필름카메라를 사게 된 계기인 상학과 은중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이건 셔터 스피드가 60분의 1초야. 이 안에 60분의 1초가 담겨 있다는 의미야.
그런데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60분의 1초만큼 움직이고 있어.
이렇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거야.’
‘오빠는 셔터 스피드를 125에 맞추라고 했지만, 나는 60에 맞췄다. 60분의 1초가 더 기니까.’
나는 니콘 FM2를 가지고 있다. 당근에서 구매한 카메라는 첫 번째 롤은 잘못 끼워 현상이 되지 못했고, 두 번째 롤은 찍다가 카메라가 고장 나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카메라를 너무 애정한다. (그래서 그날 바로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수원까지 달려갔다.) 필름 한롤은 만 오천에 달한다. 사진을 찍어도 그 자리에서 볼 수 없고, 현상소에 맡긴 뒤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낭만이라고 부른다. 내게 낭만은 비효율적인 행복이다. 나는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을 사랑한다. 셔터를 누르는 소리를 사랑하고, 리와인더를 돌리는 감촉을 사랑한다. 필름카메라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를 멈춰 서게 만드는 아주 고마운 존재이다.
나는 독서를 통해 단어를 모으고, 사진을 통해 시간을 채집한다. 그것들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효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가치와 맞닿아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나는 성과가 나의 가치를 정하는 것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성과는 나의 속도를 증명해주지는 않을지 몰라도, 내가 머문 시간들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