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성찰
나는 스스로 투쟁하며 살아왔다고 말하곤 한다. 마치 ‘진격의 거인’의 에렌처럼, 안정보단 자유를 택해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우여곡절과 아쉬움이 남았지만, 후회는 많지 않다. 대부분이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관계만큼은 다르다. 그 앞에 서면 나는 여전히 쉽게 단단해지지 못한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 스스로의 마음을 뒤로 미뤘던 기억은 아직도 내게 큰 후회로 남아있다.
어릴 적 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춤을 추는 것을 정말 많이 좋아했다.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를 수백 번씩 돌려보며 춤 연습을 했다. 빨리 집에 가서 춤을 추고 싶어 하굣길을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시절, 왕따를 당했을 때에는 고립감을 느끼는 환경 속에서 노래는 내게 위로이자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부모님의 반대에 못 이겨 나는 음악을 가슴에 품고 5년을 보냈다. 결국 절연을 각오하고 음악을 시작했지만,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다. 주 5일, 하루 7시간씩 일하며 학원비를 벌었고, 학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시간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매번 숙제는 ‘곡 하나를 준비해 오기’ 뿐이었다. 예체능을 하는 친구도,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던 터라 더욱 막막했다.
나는 음악을 시작하기만 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더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음악을 그만둔 뒤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한 나머지, 2년 동안은 음악을 듣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일찍 음악을 시작했다면, 혹은 스스로 밴드를 만들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있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하지 못하게 한 부모님을 원망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타인의 선택을 따르다 그 사람을 원망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성인이 된 지금, 선택의 결과는 내가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찾으러 다닌다. 그 적극성의 가장 큰 장점은 거절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라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찔러보고 다닌다. 그것이 내 주특기가 되었다.
나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필 코로나 시기였다. 부모님 없이 혼자 집을 구하고, 시청에서 보험 처리를 하고, 전화로 인터넷 설치를 예약하는 일은 20대 초반의 내게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디에 떨어뜨려 놔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1년 만에 자퇴를 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본에 간 이유가 거창한 꿈이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으니까. 일본 유학은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가장 빠르게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루트였다.
한국에 돌아와 당분간 부모님을 안 볼 생각으로 주 5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와 함께 살았다.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우리 가족 모두를 상처 주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믿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선택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렇게 생각할 만큼 지금은 내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반복하지 않을 행동들이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의 실패 이후,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은 내게 전혀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배움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대학원을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빠르게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를 바라신다. 나는 또 그들의 바람과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일본에서의 실패는 오히려 내 안에 또 다른 욕구를 남겼다. 타국에서의 삶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기질상, 실패로 남겨두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 확인해야만 속이 후련해진다. 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막연한 동경이었을지라도 그 마음은 오래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국을 목표로 다시 공부해보려 한다. 도망이 아니라 선택으로 가보고 싶다.
이제 나는 부모님과 나 사이에 필요한 경계를 세울 만큼은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것은 내가 그들의 노후에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또, 내가 사서 고생한다고 염려하신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세상에 온몸을 던지는 삶을 살고 싶다. 두려움 때문에 멈추기보다는, 무너지더라도 내 선택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그 부분에서 타협한다면, 나는 또다시 부모님을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남을 탓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그리고 내가 배우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나는, 음악 이후로 새롭게 품게 된 꿈을 좇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를,
원망이 아닌 책임으로, 도피가 아닌 선택으로,
성장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