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

by 필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뭘 해야 해요?"


자유 활동 시간이면 아이들에게서 이런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옵니다. 신기합니다. 놀이 교구가 있고 책이 있고 다양한 활동지가 있고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놀아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놀아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가 단체 활동을 하게 되면 그건 또 "하기 싫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다같이 하는 건 하기 싫은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일까요?



오늘 읽은 책 주인공인 어른도 그렇습니다. 그는 억울한 옥살이로 10년의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다른 죄수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은 그는 그 속에서도 자격증 공부를 하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나름의 시간을 아주 잘 활동하고 보냈습니다. 10년이 지나 세상으로 나온 그에게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두렵기만 하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이 글을 읽다 문득 나 자신도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라클모닝으로 새벽을 깨웁니다. 새벽의 고요에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글도 씁니다. 아침을 두 번 연다며 기뻐도 합니다. 남들보다 앞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문제는 이것이 어느 순간 나를 옥죄는 감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몸이 아픈데도 쉬는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쉼이 필요하다고 몸이며 마음이 여기저기 신호를 보내는데도 외면합니다. 해가 떠서 일어나는 것에 죄책감마저 생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것은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이것은 무엇에 대한 죄책감일까요?



나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이틀 혹은 쉼이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달 두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컷 쉬고 나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언젠가 제 페이스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지금의 쉼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기준을 타인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타인들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좋다는 것에 매여 정작 나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모른척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여러날이 되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새벽 시간, 1분 1초도 허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타인의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기준에 맞추면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지 않는 날이 많아져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여러날이어도 괜찮습니다. 자연이 자정능력이 있듯 지구가 자정능력이 있듯 우리에게도 스스로 일어설 힘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믿을 때 가능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실컷 쉬고 나면, 실컷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면, 하고 싶어집니다. 그때 하면 됩니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십시오. 남들이 만들어놓은 쇠창살을 끊어내십시오.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는 걸, 자신을 믿으십시오.



이것은 제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습니다. 해야 한다는, 해야만 한다는 기준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 자신의 부르짖음과도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을 때 멈칫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금세 놀거리를 찾습니다. 자유를 누리며 신나게 놉니다. 우리도 그렇게 삽시다. 삶을 너무 해야 하는 것만으로 채워서 살지 맙시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엎어지고 한없이 잠만 자는 시기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나쁜가요? 나쁘다고 규정지어놓았기에 잠깐의 쉼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자유합니다.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때 그 자유는 우리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삽시다. 자신을 믿으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그렇게 삽시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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