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서른일곱 번째 편지를 쓴다.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먼저 '지금의 나'에 대해
끄적이고 왔단다.
끄적임마저 하지 않다가는
마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ㅎㅎㅎㅎㅎ
놀라지 말고.
그런 거 있잖니?
일기를 쓰는 마음 같은.
지금의 내 마음
지금의 내 상태를
나라도 알아줘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야.
누구보다도 가까우면서도
어찌보면 가장 먼,
그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나를 찾는 여행은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지.
지금 엄마가 그런 것 같아.
너와 오랜만에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누고
영상 통화로 얼굴도 보고 좋더구나.
대학생활.
3월도 절반이 훌쩍 지나고 있지만
넌 여전히 적응 중이라 했지.
공부에 대한 것보다
친구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따라다닌다고 했지.
전교회장 하던 아이마저
서울권 학교에서 떨어져
부산으로 갔다고 했었니?
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권에서 떨어졌다고.
가까운 친구 한 명이
용인에 있는 학교에 합격해서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고.
그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엄마는,
네가 연세대에 합격한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구나.
역시 울 아들 대단하다!
라고 생각했지 뭐냐.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외로움.
너도 엄마처럼 외로움을 많이 타지.
그렇지?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거야.
그치?
혼자만 똥 떨어져 있는 느낌.
혼자인 듯한 느낌.
그걸
너도 느끼고 있다는 게…….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그런 말들도
위로가 되지 못해.
지금은
혼자인 나를,
그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어떠한 말도
어떠한 결론도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나가고
하루하루
해야할 일을 찾아서 하고
하루하루
나와 좀 더 만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
지금의 시간이
네게도
엄마에게도
필요한 시간일 거라는
그런
판에 박힌 말로 위로를 대신하지 않을게.
너도 네 삶을
엄마도 엄마 삶을
우린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외롭지만
슬프지만
힘들지만
우린 이렇게 살아간다.
너도
엄마도
어제는 식당에 혼자 가서 밥을 먹었다.
너와 같이 가서 먹던 집이지.
엄마는 혼자서 밥을 잘 먹는다.
식당에 혼자 다니기 시작한 건
아마
고등학생 때였을 걸?
친구와 같이 영화 보기로 했다가
친구가 오지 않았어.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지.
두 시간 넘게 기다리다
혼자서 영화를 보았단다.
별거 아니더라고?
그 뒤로는 혼자서 식당도 가고
혼자서 영화도 보고
혼자 하는 것이 별거 아니게 되었어.
이런 엄마가
혼자 식당 가서 밥을 먹는데
왜그리 눈물이 나냐?
네 생각이 참 많이 났어.
같이 밥 먹던 거.
그러면서 웃긴 생각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과 같이 했던 모든 것들이 생각나
참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
웃기지?
엄마는 여태
진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너를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아.
고마운 녀석.
오십 다섯에
처음인 것들이 많구나.
사랑이라는 감정도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외로움에 대한 마음도
너를 참 많이
의지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넌
존재 자체로
엄마에게 힘을 주었지.
있는 그대로
엄마에게 힘을 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너야.
엄마는 오늘
혼자 영화를 볼 예정이다.
자주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밥을 사먹을 거다.
고등학생 그때처럼
혼자인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다.
혼자인 것이 별거 아님을!
혼자서 오롯이 설 수 있을 거다.
'홀로 서기' 시도 아니건만
엄마는
이제야 홀로 서기를 한다.
홀로 서는 사람만이
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
영화 보러 가야 하거든.
혼자!
ㅎㅎㅎㅎㅎ
넌
너의 첫 미팅
재미있게 하고 와.
안녕.
너의 오늘도
엄마의 오늘도
응원하며~
^^*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아침 9시 39분
넌 미팅을
엄마는 영화 보러 가는
주말 아침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