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쉽지 않구나!
오늘 이 글은
어젯밤에 쓰고 자려던 것을
오늘 새벽 첫 글로 쓰겠다 다짐하고 도망갔단다.
오늘 새벽 깨어난 뇌가
이 글을 써야 함을 말해줬지만
손가락이 거부하더구나.
자꾸만 마음이 밀어낸다.
노트북을 켜지 못한 채
어둠인 길을 걷다 온다.
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더구나.
보슬비인지 이슬비인지
우산을 접으면
내리는 비에
옴팍 마음을 적시고 돌아온다.
그런데도
글을 쓸 수가 없구나!
손가락이 자꾸 다른 글을 쓴다.
결국
다시 나갔다 왔단다.
비가 그친 것 같았거든.
그럴 때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는 알지?
우리 산골 살 때 말이다.
아침이면 보여주던 무릉도원,
낙원의 모습을 말이다.
산 능선마다 피어오르는 안개로
장관을 이루던 그 모습!
감탄사로 맞이하는 아침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잖니.
"엄마, 하늘 좀 봐!"
지금도 엄마 귀에는
이 말이 들린단다.
하늘을 담으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흥분한 듯한 너!
그런 네 모습을
엄마 눈에 각인하며
행복이 저장됨을 느낀단다.
하루를 시작하는 하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하늘도
우리는 참 많이 사랑했지.
지금도.
아래로 내려와서는
산골에서
느낀만큼의 하늘을 만나지는 못했지.
아직은.
허망한 기대인 줄 알면서도
또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갔단다.
역시나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은
우리의 뇌에만 잘 숨겨져있는 것인가 보다.
실망하고 싶지는 않다.
산골의 추억은 그것대로
지금의 삶은 이것대로
우리에겐 소중하니깐.
이것 보렴.
아들아,
엄마는 지금도 다른 글을 쓰고 있다.
손가락이 자꾸만 이러고 있다.
정작 쓰고자 하던 글은
어디로 가고
하늘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다.
너가 깨기 전에
이 글을 꼭 쓰고 싶다.
너가 깨고 나면
더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니
쓸게.
어젯밤
쓰려고 했던 글을 쓸게.
저절로 큰 숨이 나오는구나!
뭐 대단한 글이라고.
대단한 글이 아니란다.
네게
미안한 글이란다.
참 많이도 미안한 글이란다.
엄마가 주지 못한
엄마가 주지 못하는
엄마가 너무도 못하는
.
.
.
아들아,
어제는 추석이었다.
네 아빠가 왔지.
우리는 새롭게 알게 된 갈비집에서
맛있게 소고기를 먹었다.
새로운 맛집을 알게 되어
너도 엄마도 기뻐했지.
다음에 다른 거 먹으러 와보자며
기뻐했지.
그리고
카페에 갔다.
아빠는 끊임없이 말하고
너는 맞장구치며 듣는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보낸 후
아빠는 가고
너와 엄마는 집으로 온다.
비 때문이었을까.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잠깐 다녀온 것으로
지쳐버린 몸은 침대로 향한다.
얼마나 잠들었던가.
얼마나 편안한 잠이었던가.
모른다.
지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으니.
얼마나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엄마는 모른단다.
결국 이야기가 빙빙 돌지?
본론을 말하지 않고.
빙빙.
아들아,
엄마가 미안한 건
가족이야.
가화만사성
이 말이 싫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된다니.
너무도 맞는 말이라
이 말이 싫다.
네게 주지 못하는
화목한 가정.
명절이면 더 아픈 말이 되어
심장을 괴롭히는구나.
그래도
엄마의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비록
병원에 요양원에 계셨더라도
우리 곁에 계실 때는
명절이면 북적북적
가족들이 모였는데 말이다.
엄마가 안 계시고
몇 해까지는 그래도 모였는데 말이다.
이젠
아이들도 다 큰 어른이 되었고
제각각 가족들이 모이게 되었지.
그러면서
명절이 쓸쓸해졌다.
네가 태어날 때부터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셨지.
외할아버지도
친할아버지도
친할머니도
모두 없었지.
유일하게 네게 사랑을 주던
외할머니마저
그렇게나 빨리 가버리셨지.
그러고야 말았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건만
엄만 네게 참 미안하다.
엄마는 외할머니 사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거든.
시골에서의 삶을 꿈꾼 것도
외할머니의 사랑이 배경처럼
엄마 도화지에 그려져있기 때문이거든.
그런데 네게는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하니
참으로 미안하다.
더 큰 미안함은
알지?
차마 쓸 수가 없구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쓸 수가 없구나.
네가 어릴 때
명절이면
도망가듯 여행을 갔었던 거.
기억하니?
언젠가는
눈 내린 휴양림을 갔었더랬지.
관리인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걸
지금도 기억한단다.
그 차가운 눈빛이
우리를 더 얼게 만들었던 기억이.
우리는 눈 속에 갇힌 듯
얼음 속에 갇힌 듯
휴양림에서 꼼짝하지 않았지.
아니
꼼짝 할 수가 없었지.
눈에
얼음에
사람에
아마도 설이었나 보다.
그 얼음길을 긴장하며 운전했던 기억이
이리도 또렷하다.
무엇에 숨은 걸까.
무엇에 도망간 걸까.
미안하다.
아이야.
네게 주지 못한 가족의 화목함.
명절이면 찾아오던 통증이
바로 이 때문이었나 보다.
이번 추석이 더 아픈 건
아마도
네가 엄마 곁에서 함께 하는
마지막 추석이어서겠지?
이번 설날에는
네가 어디로 가는지가
다 정해져 있겠구나.
그곳이 어디일지
지금은 모른다.
네가 바라던 길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야,
아들아,
결국,
다 하지 못하는 말이 되었구나.
하지만
넌 이 정도의 말에도
다 알 거다.
그러니
더 미안하다.
마냥 들뜨고
마냥 즐거운
용돈 많이 받아 자랑하는
그런 명절을
주지 못해서
엄마가 가장 못한
네게 가장 미안한
.
.
.
미안하다.
아이야,
많이 많이
아무리 울어도
이 마음은 더 깊어질 뿐이다.
네게 미안한 이 마음은.
그래도
아이야,
엄마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다.
지금도.
네가 알 거라 믿는다.
내 새끼는
안다.
너는 안다.
그래서
그래서 더 미안하다.
이제 그만 울게.
엄마가 어쩌지 못하는 것에
미련을 버릴게.
너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것으로 끝낼게.
원망하렴.
왜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이 아니었냐고
왜냐고
이 엄마를 미워하렴.
그리고
털어버리렴.
네가 있었기에
엄마는 살 수 있었다는 거.
네가 엄마 목숨줄
이어줬다는 거.
그것만 기억하렴.
너로 인해
엄마가 살 수 있었던 그 순간들만
기억하렴.
넌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사랑이다.
그것만 기억하렴.
아,
이제 더이상 쓰지 않으련다.
신파극도 아니고.
이제 그만 할게.
어쩔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어쩔 수 있는 것으로
우리 행복하자!
사랑한다.
아이야,
나의 아들아,
2025년 10월 7일
아침 8시 36분
조금 전 알람에 넌 깨었지.
네 방을 나오며
"오늘도 비 와?"
한 마디 남기고 다시 들어갔지.
이제 이 글은
마무리 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준 게야.
신파극 그만 찍으라고!
그래.
알았다. 아이야,
이젠 웃을게.
다 쏟아내지는 못했지만
좀 더 솔직하지도 못했지만
이만큼만 해도
넌 다 알 거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앗!
이제 진짜 그만 할게.
엄마도 침대로 가서 조금 더 누워야겠다.
새벽 4시 33분에 깨어
이 시간까지
두 번의 산책
그리고 글
쉽지 않다.
이젠 조금 쉬련다.
안녕,
아이야.
조금 있다 만나자.
안녕,
나의 아이야.
널 너무도
사랑하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