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공감능력이 좋다는 말을 듣는 것은 내게는 조금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2023년에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50이 넘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적극적인 응원과 지원 속에 모대학교의 경영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학교 수업과 회사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3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젊어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숫자 다루는 일을 평생의 직(職)으로 살아온 덕분에 조금 난이도가 있었던 과목들인 회계학, 경제학, 재무 등의 수업들도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경영대학원에 같이 입학한 동기들은 나이도 직업도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경험도 모두 각양각색이었지만, 마치 젊은 시절 대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오빠', '누나', '형'으로 호칭하며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외향적인 성향이 아니었기에 학교생활 2년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갖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같은 그룹으로 활동했던 동기들과는 허물없이 가까워졌고,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의 고민까지도 같이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오빠는 제가 지금껏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 같아요!"
학기를 마치는 날 저녁자리에서 한 학기 동안 같은 그룹으로 활동했던 동기 한 명이 해준 말이었다.
"맞아! 이 형은 말도 직설적이고 뭔가 퉁명스러운 것 같은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뭔가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아...!" 또 다른 동기 한 명도 맞장구를 쳤다. (물론 그날 저녁자리는 내가 사는 자리가 아니었으니, 아마 그들의 말이 아부성(?) 발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다시 직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MBTI'와 '공감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입사 1~2년 차 직원 한 명이 "상무님은 공감 능력이 좋은 신 것 같아요!"라고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은 아직 연차가 오래지 않았고, 나랑 보낸 시간도 많지 않아서 잘 모르니까... 이 차장도 그렇게 생각하나요?"라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차장급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뇨, 공감 능력 없으신데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이 나왔다. 차장급 직원의 단호한 대답에 자리에 같이 한 사람들 모두가 당황을 한 모습이었다.
워낙 평소에도 똑 부러지기로 소문났고, 사회생활을 위한 융통성보다는 항상 진실됨을 추구해 온 친구였기에 난 그의 말에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반응이 궁금했었다.
"그럼, 이 차장이 생각하는 '공감 능력'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나요?". 이유를 묻는 내게 "우선, 상무님은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그런데 항상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있으세요."
"그렇군요! 근데, 내 생각에는...", "이런, 내 생각에는 그때...", "맞아!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이 차장의 입에서 끝도 없는 사례들이 이어졌다.(ㅜㅜ)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데, 상무님은 이해를 하시는 것까지는 비슷하신데, 항상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잖아요!". "그건 오롯이 상대방에게 공감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주 정확하게 포인트를 찍은 듯한 대답에 나도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조금 전 이 친구가 말한 내 사례들이 생각나 뒷말은 참았다. 하지만 뭔가 기분이 씁쓸했다.
그날 저녁 군대에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와 오랜만에 네 가족이 식사를 했다.
"나랑 매일 생활해 온 가족들의 이야기라면 확실할 것이다." 극명하게 나뉘는 나의 '공감 능력'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었다.
"내가 공감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없는 것 같아?" 밥을 먹다가 말고 갑자기 꺼내든 내 이야기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음, 우리 가족은 솔직하니까... 내가 부인으로 살아온 20여 년간의 경험으로는 공감 능력 없는데! ㅎㅎ"
"그래? 학교와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내가 공감 능력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들 하던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네? 솔직히 이야기해도 되죠? ㅎㅎ 아빠, 공감 능력 없으신데요!"라고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온 가족의 통일된 반응은 비록 내 '공감 능력'에 대한 이론의 여지를 없앴다. 그리고, 항상 티격태격하던 '아들'과 '딸'이 그렇게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다음주, T의 공감법(최종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