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과 변태

'Star Destroyer' 제작기(8)

by ILMer

그날 와이프에게 몰래 하던 작업을 들키고, 나는 무려 3년 동안 모형작업을 멈췄다.

3년 동안의 재활 아닌 재활기간 동안, 비록 몸은 'Star Destroyer'에게서 멀어졌지만, 녀석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허전함은 항상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온라인 포럼에서는 국내외 친구들과 함께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있었고, 어느새 내 일상이 되어버린, 출퇴근 시간 동안의 킷배싱(KitBashing) 목록을 업데이트하는 일 역시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일지 모를 내 ‘복귀의 날’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지난 2009년까지의 작업에서 알지 못했던 옆면과 후면에 사용된 킷의 정보를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마치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한 과학자처럼 서둘러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실제 모형에 적용을 해보고 싶은 조바심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상황까지 왔다.


내겐 너무나도 큰 차이 1cm…


‘Star Destroyer'의 옆면과 후면의 킷배싱(KitBashing)에 사용된 킷 정보를 완성했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Star Destroyer' 스튜디오 모델의 하부 이미지와 거기에 사용된 하나의 킷으로 기존에 유추했던 크기가 맞는지를 검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 시간을 정해 그 이상은 작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와이프를 겨우 설득을 할 수 있었다.

"얼른 킷들을 배열해 보자...!" 두근대는 마음으로 측면과 후면의 길이와 너비를 측정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처음에 유추했던 'Star Destroyer'의 길이와 새롭게 재측정한 길이가 놀랍게도 1c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해 '킷의 크기를 예상해 비워 놓은 공간'이 실제로 찾아낸 킷의 부품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아 도저히 기존 부품들 사이에 끼워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이 거대한 녀석을 목측으로 예상한 크기와 다시 정밀하게 예측한 크기가 1c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모른 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고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마치 거울을 보며 그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계속 거슬리는 것처럼, 녀석을 볼 때마다 내게는 실제와 다른 부분만 더욱 확대되어 보일 뿐이었다.


결벽증은 불치병이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당시 거의 결벽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던 나는 패널라인과 디테일링 작업 등 20% 정도의 공정만을 남겨둔 녀석을 재작업하기로 결정했다.

말이 재작업이지 그것은 미친 짓에 가까웠다. 기존의 구조물을 모두 부수고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3년이 넘는 작업을 모두 되돌리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병세가 심해진 내 결벽증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만드는 것 밖에는 없었다.


기존의 구조물을 전부 부수고, 사용된 킷들을 조심스레 떼어내기 시작했다. 수년간 접착제로 몸체에 단단히 고정된 부품들을 떼어 내는 것은 마치 발굴현장에서 고고학적 유물을 분리해 내는 것과 같았다.

워낙 고가와 어렵게 구한 rare kit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분리 과정 중에 파손된다는 것은 기존에 겪었던 세 번의 사고에 못지않은 일이었기에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도색을 한지 오래되었고 거실 한구석에 오랫동안 방치한 터라, 눌어붙은 먼지를 떼어내고 두텁게 올려진 도색을 신너로 녹여내는 작업 또한 거의 2개월여나 걸리는 고된 작업이었다.

새롭게 측정한 크기에 맞춰 다시 제작한 내부 프레임 위)와 오리지널 스튜디오 모델의 내부 프레임 하), 2012년

새롭게 측정한 결과에 따라 내부 뼈대구조를 다시 만들었다. 이번에는 나무보다 가공이 쉽고, 내구성까지 좋은 '포맥스'라는 재료를 사용해서 ILM 모델러들이 76년에 만든 그것과 거의 동일하게 제작을 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뼈대구조물 위에 완벽(?)하게 다시 제작한 상부구조물을 올려 크기와 비례를 확인했고, 그 결과 오리지널 스튜디오 모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새로운 프레임 위에 다시 제작한 상부 구조물을 올린 모습


“나는 변태가 아니야…!”


기존의 부품을 떼어 내는 과정은 6년 전 ‘Star Destroyer'의 구조물을 처음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 두 배이상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 중에 모든 기존 부품들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복구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10% 이상의 부품들이 파손되었다. 기체의 상단에 위치한 함교(Bridge)와 후면 엔진에 사용된 엔진 벨(Engine Bell) 부품 역시 당시 파손된 것들 중에 하나였다.


사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우주선에 사용된 부품들 중에는 '2차 세계대전의 밀리터리 모형 킷'들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ILM모델러들은 간혹 주변에 있던 생활용품들을 미니어처에 사용하는 기발함을 보였는데, 'Star Destroyer'의 함교(Bridge)에 사용된 캐비닛의 손잡이가 대표적이다.

'Star Destroyer'의 함교(Bridge)에 사용된 캐비닛의 손잡이

또 하나는 엔진에 사용된 Egg 모양의 부품이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생산이 중단된 제품이었기에 '이베이'를 통해 빈티지 제품을 주문해야만 했다.

이제는 와이프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된 나는 가급적 새롭게 주문하는 킷들은 배송주소를 회사로 지정하고, 차 트렁크에 배송된 박스들을 몰래 쌓아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여직원이 내게 해외 스탬프가 찍혀 있는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부장님, 해외에서 택배가 하나 왔어요!"

"그래, 올 게 없는데, 뭐가 온 거죠?" 나는 오히려 의아한 듯 물었다.

당시 배송비라도 아끼자는 심정으로 가능한 저렴한 배송방법을 택하고 있었고, 길게는 한달이 넘게 걸려 배송이 되는 경우도 많아 사실 내가 무엇을 주문했는지 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게요…물품명에 'Pantyhose'라고 쓰여 있네요!“

마치 내가 변태라도 되는 것처럼 여직원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주문한 물품을 기억해 냈다. ”그거…그러니까…다른게 아니라 모형에 쓰는 건데,…“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설명을 하고 있는 그런 내 모습, 아마 그게 더 이상해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1970년대 Leggs社의 Egg 형태의 팬티스타킹(Pamtyhos) 케이스
Leggs社의 Egg형태 Pantyhose 케이스를 사용해서 만든 ‘Star Destroyer’의 엔진

Tips

스타워즈의 오프닝 크롤 : 영화 '스타워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뽑으라면 사람들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수많은 특수효과들로 가득한 이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50년에 가까운 '스타워즈'의 역사에서 모든 팬들이 공통적으로 손에 꼽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오프닝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비치는 오프닝은 우리에게 '스타워즈'의 시그니처가 된 장면이지만, 사실 이 장면은 CG가 없던 시절 ILM 특수효과팀의 속칭 '노가다'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먼저, ILM은 시멘트 위에 수평 선반 트랙을 깔고 그 위에 텍스트가 새겨진 아트웍을 롤링시키면서 자막이 올라가는 효과를 줬다. 그리고 특수제작한 카메라의 원근법을 이용해 수많은 텍스트들이 우주 멀리로 사라지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멋진 장면이 만들어 질수 있었다고 한다.

스타워즈의 오프닝 장면을 위해 장비를 세팅하고 있는 Visual effect artist 'Richard Edl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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