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Destroyer' 제작기(9)
결국, 회사 여직원의 오해는 풀었지만, 사실 이 세계(?)를 이해해 주는 '여성'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국내에서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대략 2002년에서 2003년 즈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직 직접적으로 모형을 제작하기 전이었던 나는 주로 'DVD'와 해외에서 완성품으로 발매한 영화 캐릭터의 '피규어(Figure)'나 '스테츄(Statue)'등을 몇 개 수집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아주 우연히 마음이 맞는 몇몇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뭉쳐 당시 '인티즌 카페'에 '다크월드(Dark World)'라는 동호회를 만든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DVDPrime', '네이버 카페'로 옮기는 수년 동안에도 여성 회원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생일,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다.
당시 생일이 되면 친한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생일파티를 했는데,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된 것이다.
누군가 외부인이 우리 집에 방문한다는 것은 우리 집을 온통 긴장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특히, 와이프는 혹여라도 누가 거실 쪽에 제작 중인 'Star Destroyer'를 실수로라도 건드려 다시 그날의 악몽(?)이 재현될까 봐 노심초사하곤 했다.
더욱이, 이번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초등학생들이라니... 비록 5학년이나 되는 아이들이었지만, 여전히 내 불안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자기야, 애들 절대 저 근처로 가지 못하게 하고 꼭 잘 지켜봐야 해!"
그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회사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나보다 '이 녀석을 잘 지켜내야 한다'는 미션을 받은 와이프가 더 긴장했으리라...
저녁 무렵 부랴부랴 퇴근을 한 나는 이미 전화로 녀석의 안부(?)를 확인했지만, 눈으로 직접 이상은 없는지 다시 확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
"아빠, 애들이 너무 멋있다고 가까이서 보고 싶어 했는데, 제가 멀리서만 보라고 했어요!"
"남자애들은 생일축하 끝나자마자 다른 건 안 하고 다들 여기에 몰려서 신기한 듯 쳐다보는 거예요! 근데 '가○'이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친구들의 반응이 자신도 좋았는지 한참을 신난 듯 이야기를 하던 아이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글쎄, '가○'이 가요. '얘들아 생일파티하러 와서 너네 뭐 하는 거야? 그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같은 게 뭐가 멋있다고'..."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 쓰레기? 아니, 이걸 쓰레기라고 하다니..."
"애들이 생일파티하러 와서 같이 안 놀고 다른 짓하니까 '가○'이가 화가 나서 그런 거야! 그리고 여자애들은 저런 거 관심 별로 없어!"
그날 저녁 아들의 같은 반 여자 친구인 '가○'가 남긴 한마디에 '화가 난 아들'과 '충격을 받는 나', 우리 둘은 와이프 나서서야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나는 주말 동안 을지로 아크릴 상가를 방문해 새로운 상, 하판을 다시 재단했다.
확실히 다시 측정한 크기를 바탕으로 재제작한 상부구조물과 상판을 결합했을 때 보이는 비례가 내겐 너무 완벽하게 보였다. 나는 '2009년 작업에서 하지 못한 패널라인을 추가하면, 이전 모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리지널 스튜디오 모델의 느낌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 이후로 몇 주 동안은 평일 저녁과 주말 동안은 패널라인 작업에만 매진을 했다.
꼬박 2주를 작업했는데도 브릿지(Bridge, 함교)와 상판 일부밖에 완성되지 못했다. "왜 이리 패널라인이 많은지..."
완벽한 모델을 원했던 나는 스튜디오 모델의 사진을 곳곳을 대조해 가며 수많은 패널라인의 위치를 연필로 가이드라인을 그리고, 수정해 가면 정확한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아크릴 칼과 '패널라이너'를 이용해 가이드라인을 파내기 시작했다.
ILM 모델러들은 아무렇게나 패널라인을 적당히 추가했겠지만, 그걸 똑같은 위치에 동일하게 그리는 작업은 열 배 이상은 집중력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아직 1/10도 못했는데, 지옥의 작업이다...ㅜㅜ"
결국, 인내의 시간을 통해 브릿지와 상부 구조물을 완성하고, 상판의 오른쪽 패널라인을 모두 그렸다.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테스트를 위해 서페이서를 올려봤는데, 라인을 그리던 중에 여러 번 속칭 "삑사리"가 난 것이 눈에 띄었다.(사람이 하는 일인지라...ㅜ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백 또는 수천 개의 패널라인에 묻혀 며칠 지나니 나 역시 구분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나머지 좌측 상판의 패널라인을 다시 그려야 하는데, 이 미친 작업을 다시 하려니 너무나 끔찍했다. "아! 이것도 Copy & Paste가 될 수 있다면..."
드디어 지옥 같던, 왼쪽 패널라인 작업도 마치고 상판을 골격구조물에 완전히 부착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디테일링을 위해 작은 프라판 조각들을 잘라 상판에 붙여가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정확성을 위해 서두르지 않고 차분이 진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날 저녁도 한창 디테일링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한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도 모르겠네!"
"??? 무슨 일 있어?" 내가 묻는 말에 와이프는 "오늘 '서○'이가 학교에서 기초 조사서를 들고 왔는데, 거기에 부모 직업란이 있어서 내가 '회사원'이라고 적었거든..."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 학교에서 기초 조사서를 작성해 오라고 했다는 말이었다.
도무지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작성해서 주면 되잖아? 도대체 뭐가 그게 한숨까지 쉴 일이야?"라고 되물었다.
"내가 회사원이라고 적었더니, 서○가 '엄마, 아빠 직업 잘못 적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야"
"그러면서, '아빠 모형 만드는 사람이잖아요'라고 말하더라... 애가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데. 어떻게 생각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이도 없었지만, 나는 이 상황을 누구보다도 어처구니없어하는 와이프를 보며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Tips
피규어(Figure) :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사물을 특정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인형이다. 제작을 위해 주로 플라스틱, 나무, 금속과 소프트한 재질에서 하드 한 재질까지 매우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제작방법과 재료의 재질, 가동여부, 사이즈에 따라 다양한 카테고리로 세분화된다.
스테츄(Statue) : 피규어의 한 카테고리로 가동이 가능한 '액션 피규어'와 달리 관절이 구현되지 않고, 한 가지 자세로만 전시하는 제품을 말한다. 구동이 되지 않는 특성에 따라 일반적으로 '폴리스톤(Polystone)'이나 '레진(Resin)' 같이 하드 한 재질이 많이 사용되고, 스케일이 크거나 복잡한 조형미를 나타내는 장식용 제품으로 많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