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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D.D.C. 02화

D.D.C. 진

EP.02

by 이다연

진은 홍대 거리의 인파 속을 천천히 걸으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아침에 있었던 아버지와의 심한 말다툼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여파로 마음은 무거웠다. 거리의 활기와 자유로운 분위기가 숨을 쉬게 할 줄 알았는데,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빛은 공허했고, 귓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아침에 머물러 있었다.


“또 오디션? 너, 그럴 시간 있냐?”
아버지는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진은 말없이 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무언가 쌓여가고 있었다.

“재수하면서 노래 타령이나 하고 있고… 현실 좀 보자, 현실.”

“음악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진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분명했다.


아버지는 서류에서 고개를 들더니 비꼬듯 말했다.
“좋아하는 걸로 평생 먹고살 수 있으면 세상에 백수는 없지.
그게 직업이냐, 꿈이지.”


그 말에 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전 그게, 인생의 전부예요.
아버지처럼 계산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이랑은 다르다고요.”


그 말이 끝나자 아버지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그래서 나더러 뭐, 틀렸단 거냐?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게 틀렸다는 거냐고?”


진은 입을 다물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대답이었다.
결국,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거실 안에 무겁게 울렸다.


진은 그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그때, 불현듯 고개가 들렸다.

정면, 건물 외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이 번쩍이고 있었다.
화려한 영상이 빠르게 전환되며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었고, 진도 발걸음을 멈췄다.


시야 한편에 강렬하게 빛나는 대형 전광판이 들어왔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깜빡이며 화려한 영상이 재생되고 , 거기에 큼지막하게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DDC 가요 대제전 – 전국을 흔들 무대를 향해!”


영상은 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 장면과 함께 대회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고 있었다. 수천 명의 관객이 함성을 지르는 대형 공연장, 무대 위에서 빛나는 조명과 환호 속의 주인공들—그 모든 장면이 숨 막히도록 찬란했다.


이어진 내레이션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당신의 무대는 여기입니다. DDC 가요 대제전 – 지금 도전하세요!”
영상 말미에는 지원 방법, 예선 일정, 본선 장소가 안내되었고, 마지막으로 큼직한 글씨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세상을 바꿀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진은 걸음을 멈추고, 그 거대한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선 여전히 아버지의 말들이 맴돌았다. "음악으론 먹고살기 힘들다." "재수 끝나고 제대로 된 진로를 잡아라." 현실은 그를 옥죄었지만, 전광판 속 그 불꽃같은 에너지는 그의 마음속 무언가를 흔들고 있었다.


'저 무대에 나도 설 수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떠올랐고,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용음악을 전공해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했다.


아버지는 ‘현실’을 이야기했고,
진은 그 현실 안에 자신이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렇다면—현실을 바꾸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직 무겁고 복잡한 감정들이 남아 있었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들려줄 준비가 시작됐다는 것.


전광판의 화려한 빛이 멀어질수록 진의 발걸음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확신은 없었지만, 이제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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