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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해서 그래/후— 대신 아~를 부른 밤

― EP.22《언니, 나… 또 미사리야》

by 이다연


동생은 어려서부터 멀미가 심했다.
세 발자국만 차에 타도 얼굴이 하얘지는 아이였다.
그래서 우리 집 누구도 동생이 ‘언젠가 운전을 할 거다’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실로 출퇴근하는 게 너무 힘들다며
갑자기 면허증을 들고 나타났다.

“나… 운전할래.”

그 한마디에 식구들은

젓가락을 떨어뜨릴 만큼 놀랐다.


하지만 상황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밤 10시, 11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외식업 특성상, 부천에서 잠실까지 대중교통으로 오간다는 건 하루에 체력을 두 번씩 갈아 넣는 일에 가까웠으니까.


상부(부모님)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물론 직장상사의 배려가 한몫을 했다.

“차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기름값은 전적으로 회사에서 부담하겠습니다.”


동생은 자신만만하게 초보 스티커를 붙였다.

“5시간째 직진 중입니다.”
“이러다 부산 갑니다.”

그렇게 출퇴근이 시작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멀지 않은 그 길을
동생은 매번 헤매다 귀신같이 2시간씩 걸렸다.

회사에서 10시에 출발하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늘 12시 반.

“왜 이렇게 늦어?”

라고 물으면
동생은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길이… 자꾸… 사라져….”


문제는 길이 아니라
길치를 넘어서 길의 법칙을 거스르는 동생의 방향감각이었지만,
그 사실은 본인만 모르는 듯했다.


어느 날은 미사리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천 가는 길에
어떻게 미사리를 가…?”
“그러게… 나도 모르겠어…
따라오다 보니까… 여기네…”

그때마다 막막했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집에는 도착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밤.
봄비가 가볍게 내리던 날이었다.

동생이 문을 열자마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언니… 나… 너무 창피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집 근처에서 음주단속을 하더라고…
근데 나… 그거 처음 해봐서…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

경찰이

“불어 보세요”

하자 동생은

“아~”

하고 노래하듯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경찰이 당황해,

“다시요.”

라고 하자 이번에는 더 길게

“아아~~~”
"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경찰은 멀쩡하게 생겨서 진심으로

뭐 하는 거냐고 물었고,

동생은 반복해서

"아아~~~~ 아 "

했다고 했다.


경찰은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그렇게 노래 부르면 안 되고요…
그냥… 후— 이렇게만 하시면 됩니다.”

동생은 얼굴이 더 붉어지며 다시 불었다.

“후~~~~~~~~우우…”

아무리 들어도
그건 바람이 아니라
슬픈 발라드의 한 구절 같았다고 했다.

경찰은 결국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 가세요.
술 드시면 안 됩니다…?”


그날 밤 동생은

한참을 부끄러워하며 물었다.

“언니… 나 진짜 바보 같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초보니까, 초보들은 다 그래.”


밤새 길을 헤매고,
미사리까지 갔다가,
음주측정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동생.


어설프고, 웃기고,

하지만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하루를 살아내던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때, 동생이 축져진 모습으로 방문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며

“아…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어설픈 걸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해내려는 마음을 가진 동생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엔딩

+ 초보들에게 보내는 응원


나는 동생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조용히 웃었다.
서툰 것도, 헤매는 것도, 순간 당황해서 노래부터 나오는 것도— 모두 그 아이의 방식대로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었으니까...


세상의 모든 초보들에게.

"당신이 느리고 서툴다면,
그건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겁내지 말아요."

그리고…
초보 스티커에 적힌 말처럼,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다.

“5시간째 직진 중입니다. 하지만 저는 끄떡없습니다.”

“급하면 먼저 가세요. 저는 천천히 살고 싶습니다.”

“방향지시등? 저도 가끔 놀랍니다.”

“초보 + 길치 = 판타스틱 듀오”

“차는 멈춰도 저는 흔들립니다.”

“제가 아니라 네비가 길을 잃었습니다.”

“저도 제가 어디 가는지 모릅니다.”

“뒤에서 빵빵 금지! 심장에 안 좋아요.”

“이러다 부산까지 가능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자기 속도로 나아가는 초보들이여—

당신들은 잘하고 있다.


그리고 동생처럼,
길을 잃든, 노래를 부르든, 미사리에 가든,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한 줄을 붙이고 싶다.

아…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서툴러도 자기 속도로 나아가는

세상 모든 고독한 초보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22《고독해서 그래》: 《후— 대신 아~를 부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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