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버티는 우리의 따뜻한 방식》
나는 추위에 약하다.
찬바람이 불기만 해도 온몸이 오그라들고,
마음까지 움츠러드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머플러며 털모자, 털 실내화 같은 따뜻한 제품을 이것저것 사들이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털북숭이 스피츠 아름이는 그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 존재다.
아름이를 안고 있기만 해도 겨울을 버틸 힘이 생기니까.
그 몇 해 전,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이었다.
창문에는 서리가 꽃처럼 피고,
숨을 쉬면 하얀 입김이 바로 퍼져나가던 날들.
크리스마스 캐롤이 흐르던 오후,
나는 다이소에서 우연히 털실 뭉치를 발견했다.
반짝이는 전구들 사이에 수북하게 담긴 색색의 털실.
그 순간 묘한 확신이 들었다.
“아, 이걸 사서 뭔가 해야겠다.”
호기심 대마왕이자, 한 번 꽂히면 끝을 보는 내 성향은 그날도 어김없이 발동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뜨개질 영상을 틀었다.
코를 잡고, 늘리고, 다시 풀고…
손가락에 감긴 털실은 계속 미끄러졌고,
목도리는 갈수록 이상한 모양이 되어갔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밤을 꼬박 새워 첫 목도리를 완성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음밖에 안 난다.
한쪽은 얇고, 한쪽은 두껍고,
중간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매듭까지 튀어나와 있었으니까.
그 엉성한 목도리를 들고
나는 가장 먼저 정숙이를 떠올렸다.
정숙이는 제주 태생이다.
제주의 바람과 햇빛이 만들어낸 사람.
솜씨도 좋고, 맵씨도 좋고, 마음씨는 더 좋은— 그런 친구였다.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 전화를 걸어 물었다.
“정숙아…
첫 작품인데 네가 받을래?”
그녀는 카톡으로 보낸 사진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머, 이거 너무 따뜻해 보인다!
내가 할게!”
그리고는 그 엉성한 목도리를
정말, 정말 오랫동안 예쁘게 목에 둘러주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그때 정숙이는
몸이 스스로 백혈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감기에 걸려도 큰일이 되는 몸이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정기적으로 세브란스 병원을 오가야 했고, 그 시절 그녀에게 서울은, 여행지가 아니라
비행기보다 병원이 더 익숙했던 시절을 견디기 위한 통로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맞는 차가운 서울바람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혼자 병원 복도에 서 있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그녀는 내 엉성한 목도리를 받으며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생각해 줬구나.”
비록 서툰 솜씨였지만
그 안의 온기는 진심이었으니까.
목도리를 목에 감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다연아, 제주 사람들은 말이야,
바람이 워낙 세서
뭐든 ‘걸친다’는 의미가 특별해.
겨울바람에 맞서라고 주는
선물 같아서 너무 좋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코끝이 시큰했다.
정숙이는 그 목도리를 제주에서도, 서울에서도 계속 사용했다.
그리고 때때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곤 했다.
“오늘도 이 아이와 함께
서울바람을 버텼다.”
가끔 생각한다.
왜 그 엉망진창 첫 작품을
그렇게 기뻐해줬을까?
아마도
누군가가 자신의 겨울을 진심으로 걱정해 준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큰 용기였을 것이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오기 전,
정숙이는 병이 조금 호전되었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목도리 덕분 아닐까?
제주 바람도 서울 바람도 다 막아줬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네가 잘 버틴 거지.”
전화를 끊고 나서
아름이가 내 무릎에 턱을 올렸다.
그 따뜻한 숨결이
내 마음에 남아 있던 겨울 잔상을
천천히 녹여주었다.
그래, 가장 따뜻한 건 결국
사람의 온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온기는,
엉성하고 서툰 목도리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겨울을 견디게 하는
기특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엄마께 보내드릴 핫팩을 검색하다가
오랜만에 정숙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숙아, 잘 지내?”
그러자 바로 정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응, 다연아. 너는?”
잠깐의 침묵 끝에
정숙이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때 네가 짜준 그 목도리…
요즘도 잘 쓰고 있어.”
그 말 하나면 충분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디 있었지?
그 많던 실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아,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여전히
안부를 묻고, 안부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 참 다행이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21《고독해서 그래》: 《서툴러서 더 따뜻했던 그 해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