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23.《그 새벽,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새벽, 칸 아래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지방을 자주 다닌다. 대부분 혼자 이동하는 편이라 새벽에도 운전대를 잡곤 한다.
무섭다고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 웬만한 길은 척척 찾아가고, 새벽 운전에도 익숙한 편이라 어두운 도로가 특별히 겁나지도 않는다.
그날도 그랬다.
오히려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무도 없는 도로를 나 혼자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편안했다.
12월 초, 비가 올 듯 말 듯 축축하게 흐린 새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와이퍼가 유리창을 긁는 규칙적인 소리. 그게 전부였다.
남해로 가는 길이었고, 얼마쯤 지났을까 서해고속도로를 한참 지나 달릴 때쯤 슬슬 피곤함이 몰려왔다.
날씨 탓에 지속한 히터, 방향제 냄새에 속이 조금 울렁거렸고, 화장실도 급해졌다. 그래서 난 큰 고민 없이 가장 가까운 휴게소로 빠졌다. 아주 작은 휴게소였다고 기억한다.
부슬부슬 비가 떨어졌다.
차에서 내려 몇 발자국 걷자, 날씨 탓인지 공기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적이 없었고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렸다.
잠이 든 건물 사이 편의점 하나만 간신히 불이 켜져 있었다.
고속도로에 이런 곳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했지만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급한 건 급한 거니까 나는 서둘러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 앞에 작은 전등 한 개만 켜져 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간판이 달그락대며 흔들렸다.
시간 때문이었는지,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그 쇳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가운 공기가 훅 하고 맞았다.
그런데—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누군가 방금까지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듯한 느낌. 설명하기 애매한 기분 나쁜 정적.
스산하고 습하고 서늘한 느낌...
세면대 쪽은 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세면대 거울로 주변을 살폈다.
자동문이 열리는 그 순간, 아주 작은 인기척을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귀신의 존재를 믿는 편도 아니고 겁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그때만큼은 오싹한 느낌이 확 올라왔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안쪽 칸으로 들어갔다. 휴게소, 새벽, 혼자. 이 세 단어가 겹쳐지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그 모두를 무시하고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변기에 앉으려는 순간. 바닥 아래쪽, 낮은 틈 사이로 어두운 그림자가 움직였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야…? 방금… 뭐가 지나갔어?’
바람인가? 내 그림자인가?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내 몸은 이미 굳어 정지 상태였고, 그림자는 너무 분명하게 한 번 더 스쳤다.
그 순간, 머릿속이 완전히 하얘졌다. 화장실 칸 아래로 보이는 멈춘 그 그림자.
그런데— 그 그림자가 갑자기 움직였다. 그때였다. 그림자가 천천히 멈추더니 아래쪽 틈에서 두 개의 검은 것이 꿈틀 하며 올라왔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변기 칸 아래로,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반쯤 드러나며 내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꾸로 뒤집은 그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말, ‘목이 잠긴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 남자는 마치 숨도 쉬지 않는 사람처럼 거꾸로,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차갑고, 너무 비정상적으로 느리게 움직여서 그 자체로 인간 같지 않았다. 나는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문을 열어 뛰쳐나가려는데— 남자가 갑자기 칸 밑으로 팔을 뻗었다.
정말 눈앞에서, 내 발목을 잡으려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스크래치— 스크래치— 나는 그 소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해 그 팔을 발로 밟았다. 짧은 외마디 신음 소리를 듣자,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어젖히고, 휴게소 밖으로 달려 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휴게소 주변은 인적하나 없는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차 문을 덜컥 열고 안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숨이 가빠서 핸들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잠시 후, 화장실 쪽에서 무언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 오는 새벽, 어둠 속에서, 여자 화장실 출입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남자가 밟혔던 팔을 잡고 고개를 기울인 채, 비를 맞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차창에 비친 그 실루엣은 정말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비뚤어진 생물 같았다.
나는 미친 듯이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뒷좌석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휴게소를 벗어났다. 몇 킬로미터쯤 가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 소름은 그 후에 찾아왔다. 남해 쪽 일을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뉴스를 보는데 그 휴게소 근처에서 도주 중이던 성범죄자가 검거되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사진 속 그 남자— 눈이 고장 난 사람처럼 초점을 잃은 그 눈. 화장실 아래에서 나를 보던 그 남자가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될 수 있으면 혼자 새벽 운전을 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지방에 갈 때는 더욱...
한동안 그날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그 공포가 내 고독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랬다. 혼자라는 건, 아무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뜻도 되었다.
새벽길, 그 화장실, 그 순간의 공포는 결국은 내가 견뎌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운전대를 잡는다.
길 위의 고요를 사랑하지만, 그 고요가 품은 어둠을 잊지 않기 위해서.
고독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지만, 어떤 날은 우리를 시험하기도 한다.
나는 그날 새벽, 그 시험을 간신히 통과했다.
고독해서 그래. 그래서 고독했어.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23《고독해서 그래》: 《그 새벽, 칸 아래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