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2월 18일, 20일, 22일

원균과의 갈등의 시작

by 지온x지피

十八日癸卯 晴 早朝行軍 到熊川 賊勢如 前 蛇渡僉使 伏兵將差定 領呂島萬戶 鹿島 假將 左右別都將 左右突擊將 光陽二船 興陽 代將 防踏二船等 伏于松島 使諸船誘引 則 賊船十餘隻 蹤後而出 慶尙伏兵五隻 輕發追 逐之際 伏船突入回擁 多數放射 倭人不知其數致 死 一級斬首 賊徒大挫 終不追後 日未暮 領諸船 到 院浦汲水 乘昏還到永登後洋 經夜沙火郞陣



1593년 2월 18일


오늘은 맑은 날이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병사들과 함께 행군을 시작해 웅천까지 나아갔다.
왜적의 기세는 전날과 다름없었으나, 나는 그들의 허를 찌를 계책을 세웠다.

사도첨사(김완)에게 복병을 정해두고, 여도 만호(김인영), 녹도 가장,
좌우 별도장, 좌우 돌격장, 광양의 두 척, 흥양의 대장선,
그리고 방답의 두 척까지, 여러 전선들을 송도 부근에 숨어 대기시키게 했다.

그리고 모든 배를 미끼 삼아 왜선들을 유인하도록 했다.
그 유인책이 통했는지, 적의 배 열 척이 넘게 뒤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경상도의 복병선 다섯 척이 먼저 쫓아가며 움직이자,
잠복해 있던 우리 배들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튀어나와 적선을 에워쌌다.

화살과 총통이 한꺼번에 퍼부어졌고,
당황한 왜적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한 채 죽어갔다.
그 죽은 왜적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그중 한 명의 수급(머리)은 직접 베어냈다.

적은 크게 패해 도망쳤고, 더 이상 뒤쫓아오는 자는 없었다.

해가 지기 전, 우리는 모든 전선을 이끌고 원포에 도착해 물을 길었다.
그 후 어둠을 타고 영등포 앞바다로 되돌아왔다.
밤에는 사화랑의 진영에서 밤을 지냈다.







二十日乙巳 晴 曉發船 東風暫至 (自午)與賊交鋒 則大風輒發 各船自相

觸破 幾不能制船 卽令角立 招搖止戰 諸幸賴 不至

重傷 然興陽一隻․防踏一隻․順天一隻․營一隻衝破 日未

暮 到蘇秦浦 汲水經夜 是日鹿群走東西 順天捉一獐送來




1593년 2월 20일



오늘도 하늘은 맑았으나, 바다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동틀 무렵 배를 띄우고 출발했다. 마침 동풍이 잠시 불어와 돛을 펼 수 있었다.
하지만 낮 무렵, 적선과 맞붙자마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에 배들은 서로 부딪히며 깨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배의 방향을 잡기조차 어려운 형국이 되었다.

나는 곧바로 각 배에게 뿔처럼 벌어져 진형을 세우고,
깃발을 흔들어 전투를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도 큰 피해 없이 싸움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흥양의 배 한 척, 방답의 배 한 척, 순천의 배 한 척,
그리고 본영의 배 한 척이 부딪혀 파손되었다.

해가 지기 전, 우리는 소진포에 도착해 물을 길었다.
밤을 지나며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날 저녁, 사슴 떼가 동서로 몰려다니는 진귀한 광경도 목격했다.
그중 순천 수군이 사슴과 닮은 노루 한 마리를 생포해 내게 가져왔다.






二十二日丁未 曉雲暗 東風大吹 然討賊事急 發行到沙火 郞待風 風似歇 促行到熊川 兩僧將及成義兵 送于濟浦 欲 將下陸之形 右道諸將船 擇不實送于東邊 亦將下陸之狀 倭賊奔遑之際 合戰船直衝 則賊勢分力弱 幾 爲殲盡 而鉢浦二船 加里浦二船 不令突入 觸掛 淺陜 爲賊所乘 其爲痛憤 憤膽如裂如裂 有頃珍島 上船 爲賊所擁 幾不能救 而虞候直入救出 慶 尙左衛將及右部將 視而不見 終不回救 其爲無謂 不可言 痛憤痛憤 以是詰於水伯 可嘆 今日之憤 何可盡說 皆慶尙水伯之致也 張帆還到蘇 秦浦宿 牙山蕾芬簡 來于熊川戰所 天只簡亦來




1593년 2월 22일



새벽,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동풍은 사납게 바다를 휘저었다.
그러나 왜적과의 싸움이 급박했기에, 나는 병사들과 함께 거센 바람을 뚫고 바다로 나갔다.
사화랑 앞바다에 이르자 바람이 잠시 잦아들었기에, 그 틈을 타 재빨리 웅천까지 배를 몰았다.


그곳에는 두 명의 스님 장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이끈 의병들은 제포로 가서 마치 육지로 쳐들어갈 듯 움직이며 왜적의 눈을 속였다.
다른 장수들의 배들도 동쪽으로 모여들며 상륙 공격을 하는 척하며 왜적을 혼란에 빠뜨렸다.

우리의 계략은 통했다.
왜적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모든 배에 명령하여 적진을 향해 돌진시켰다.
적들은 힘없이 무너졌고, 거의 다 쓸어버릴 만큼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갑자기 발포에서 온 두 척의 배와 가리포에서 온 두 척의 배가
내 명령을 어기고 앞서 나섰다가,
얕고 좁은 물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왜적이 거세게 들이닥쳤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이 끓고, 간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싸움터 한가운데서 지켜봐야만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쓰라렸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도의 지휘선 한 척이 적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포위당해 위태롭게 되었을 때,
우후 이몽구가 용기 있게 혼자서라도 적진에 뛰어들어 극적으로 구해냈다.

하지만 바로 곁에 있던 경상 좌위장과 우부장은 그 모든 광경을 뻔히 보고서도,
모르는 척 눈을 돌리며 끝내 돕지 않았다.
같이 나라를 지키자고 목숨 걸고 모인 자들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참담함과 억울함에 뼈가 저릴 만큼 통탄했고,
그들의 지휘관인 경상도 수사 원균에게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날의 원통함을 잊을 수 없다.
싸움에서 지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믿었던 이가 뒤에서 칼을 꽂는 것과 같은 배신이었다.

마음을 추슬러 돛을 올리고, 소진포로 돌아와 밤을 보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던 웅천에는
아산에서 보내온 이뇌와 이분(芬)의 편지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어머님께서 보내신 편지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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