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여행, 그리고 도전 #4
영화 <나 홀로 집에 2>처럼 반짝이는 뉴욕을 꿈꾸며, 내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계획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내 인생 최악의 홀리데이이자 동시에 최고의 수업이 되었다.
보스턴에서의 서툰 홀로서기 이후, 나는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붙었어. 그래서 이번에는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아주 원대한 도전을 계획하게 되었단다.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의 뉴욕 여행’이었지. 영화 <나 홀로 집에 2>의 케빈처럼, 반짝이는 불빛과 흥겨운 캐럴로 가득한 그 도시의 한복판에 서보고 싶다는 오랜 꿈이 있었거든.
이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나의 의지로 계획되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여행들과는 의미가 달랐어. 가고 싶은 시간, 머물고 싶은 장소,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친구까지,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정했으니까. 특히 이번 여행에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나는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호사를 누려볼 수 있었단다. 맨해튼의 근사한 호텔, 분위기 좋은 스테이크 레스토랑, 심지어 집 전체를 비우고 우리에게 공간을 내어준 에어비앤비 호스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그야말로 꿈의 여행이었지.
하지만 동생아, 너도 알지 않니? 인생이란 게, 그리고 여행이란 게, 결코 우리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우리는 뉴욕으로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사소한 일들로 꽤 자주 다퉜어. 지금은 왜 그렇게 싸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오해들이었지만, 그때는 ‘이대로는 도저히 같이 못 가겠다’ 싶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지. 하지만 나는 혼자 그 먼 곳으로 떠날 용기가 없었고, 친구는 친구대로 뉴욕에 대한 로망이 있었을 테니, 우리는 결국 어색한 동행을 선택했어.
그리고 그 불안한 예감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현실이 되었단다. 친구가 갑자기 몸살감기에 걸려버린 거야. 뉴욕까지 날아간 첫날부터, 친구는 숙소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어. 창밖에는 센트럴 파크의 겨울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데, 방 안에서는 친구가 틀어놓은 게임 비디오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지. ‘여기까지 와서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어. 물론 좋은 친구라면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어야 했겠지만, 솔직히 그때 나는 ‘그러게 옷 좀 따뜻하게 입고 오지’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단다.
나는 한국인 특유의 ‘본전 생각’에,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구경하고 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어. 그래서 첫날부터 밥도 거른 채, 아픈 친구를 숙소에 남겨두고 혼자 뉴욕의 거리를 몇 시간이고 걷고 또 걸었지. 하지만 혼자 보는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광고판도, 록펠러 센터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도, 내 마음을 온전히 채워주지는 못했어. ‘함께’라는 기대를 안고 온 여행에서 ‘혼자’가 되었을 때의 그 공허함이란.
결국 우리는 첼시 마켓에서 랍스터를 먹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만났지만, 이미 어긋나 버린 마음의 시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어. 나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을 함께 고르고 싶었는데, 배고픔에 지친 친구는 아무거나 빨리 먹고 싶어 했지. “너 먼저 구경하고 와서 알아서 먹어.” 친구의 그 무심한 한마디에,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어. 함께하기 위해 온 여행에서, 왜 우리는 계속 따로 있어야만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지.
결국 나는 친구가 밥을 다 먹고 다가왔을 때, 아는 체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혼자가 되자, 비로소 뉴욕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더구나. 혼자 걷는 소호의 거리에서, 나는 비로소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쇼윈도에 비친 나의 얼굴을,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어.
돌아보면, 뉴욕에서의 시간은 최악의 홀리데이였지만, 동시에 최고의 수업이기도 했단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완벽한 계획이 완벽한 여행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어. 오히려 우리의 기대를 벗어난 뜻밖의 변수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관계와 감정들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함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진정한 ‘함께’란, 모든 것을 똑같이 하고, 똑같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이 여행은, 내게 ‘계획’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껴안는 법을 가르쳐준, 아주 특별한 성장통이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