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9일 금요일
am 5:53
나는 고민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털어놓지 못한다.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가 그게 나의 약점이 되고 어쩌고 하는 고차원적인 사회심리학의 이유 때문이 아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서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면, 그 일이 해결되지 않거나 상황이 악화될 것 같은 믿음(이라고 쓰고 미신이라고 읽는)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어떤 것이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종결 상태가 아닌 경우, 누군가에게 입을 나불댔다가 상황이 반전되어 안 좋은 결말로 바뀔까봐 불안해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어떤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나중에 모든 일이 다 해결되어 더 이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을 때쯤에야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해결 됐어."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혹은, 그것을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려서 말할 기운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해결됐는데 뭐.’하고 그냥 넘어가버리기도 한다.
가끔 자기 마음에 돌처럼 걸려있는 어떤 일들을 주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마음보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면,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가끔 건강검진 받으러 병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게시할 때가 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건강검진 받았다가 큰 병이라도 발견되면 어떻게 하려고 저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지?’
‘건강검진 받는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와 ‘안 좋은 결과를 받는다.’의 결괏값 사이에는 아무런 확률적 상관관계가 없다. 행여나 "감히 건강검진 받는다는 중요 개인사를 함부로 이야기해? 에잇, 나쁜 결과를 받아라!"라고 할 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당사자가 아닌 내가 괜히 눈치를 보며 혼자 걱정한다. 아니, 눈치는 주는 사람이 있어야 받는 것도 가능한 건데. 아무도 안 주는 눈치를 어디에서 받는 거지 도대체?
가끔은 나 혼자 있을 때도 나에게조차 고민을 비밀로 할 때가 있다. 일기를 쓰는데, 그 일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떼면서 한 글자도 안 쓰는 것이다. 그 일을 활자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무슨 큰일이 날까 봐서. 브런치에 쓰는 공개 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나 혼자만 쓰던 개인 일기에서도 그랬다. ‘이러면 일기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하는 생각에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의도적으로 이런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은 했다. 그래도 정말 결정적인 것들 몇 가지는 차마 못 쓰겠더라.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은 정작 다른 것들인데, 일기로는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이다.
내 신념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누가 지적해 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목이 턱, 막히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내 기억 속 어딘가 트라우마가 있던가, 아니면 내가 물려받은 DNA에 중요한 개인사를 발설했다가 고초를 치른 사람의 선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am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