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2일 월요일
am 5:47
평소처럼 5시 30분에 알람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으며 ‘이제 일어나야지.’하고 생각하는데, 다른 자아가 갑자기 억울한 목소리로 ‘왜?’ 하고 되묻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뭐라도 대답해서 나를 설득해야지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왜는 무슨 왜야? 그런 거 없어. 그냥 일어나!’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대화였는데 3번째 자아의 등장에 좀 당황스럽네. 보통은 실천하는 것을 말리는 나와, 좋게 좋게 설명해서 상황을 이어가려는 나와의 싸움인데. 이렇게 불도저같이 저돌적인 성격이 무의식 어딘가에 감춰져 있었나? 아니면 그 짧은 사이에 꿈을 꾼 건가?
월요일 아침이 되어버렸다. ‘되어버렸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주말이 후루룩 감아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금요일부터 시작된 유림이 열로 2박 3일 동안 간호만 하다가 시간이 다 갔다. 유림이 쫓아다니며 컨디션 살펴보고, 30분에 한 번씩 체온 재고, 시간 간격 확인해서 해열제 먹이고, 유림이 재우고 나도 살짝 눈 붙이고, 유림이가 일어나면 다시 반복. 이렇게 유림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마크하고 있을 때 잠깐 할 수 있는 딴짓이라고는 휴대전화 들여다보기 밖에 없다. 독서처럼 호흡이 길고 몰입이 필요한 생산적인 활동 대신, 릴스나 쇼츠처럼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을 보며 그 시간을 견딘다.
하루를 다양한 활동으로 보내면 뇌가 알아서 활동 사이에 Lap, 그러니까 구간 기록을 한다. 그리고 Lap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다채로운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과, 하루를 알차게 사용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주말처럼 아침, 점심, 저녁 내내 똑같은 패턴으로 하루를 보낸다면? 분명 각각의 요일과 시간이 존재했는데도, 그 시간들을 그냥 한데 모아서 굳혀버린 찰흙 덩어리같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이번 주말은 덩어리진 시간보다 더 중요한 유림이 병간호를 했다. 그러니 시간을 유용하게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좀 덜어두자. 체력도 정신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그 순간 내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른손 엄지손가락뿐이었다는 변명도 좀 해보고. 그래도 이렇게 일기에 털어놓고 싶을 만큼의 후회가 든다면, 다음번에는 사이사이에 생산적인 활동을 좀 끼워 넣어보자. 책을 들 기운이 없으면 독서대라도 사용하든가. 그래도 생각해 보니 그 와중에 짬 내서 운동 30분 이상씩 꼭 했고, 영어 단어 외우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충분히 잘했네, 예지나. 잘했어.
밤새 열로 끙끙거리고, 일요일 오전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애를 태웠던 유림이. 다행히 오전 8시에 먹은 해열제부터 약효가 잘 들어서 어제는 하루 종일 정상 체온이었다. 입맛이 없는지 잘 먹던 음식을 마다하고 좀 기운이 없긴 하지만, 열이 내린 것만으로도 어디야. 평일이 아니라 주말이어서 하루 종일 옆에서 챙겨줄 수 있고, 나도 덜 피곤하게 유림이를 돌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 주말 한 번쯤 대충 보내고 다시 월요일인 것이 무슨 대수인가? 유림이가 괜찮아졌고 나도 쌩쌩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am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