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3일 화요일
am 5:54
안네가 일기를 쓸 때 왜 일기장에 특정 이름을 붙여줬는지 알 것 같다. 일반적인 독백 형태라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굳이 다시 일기에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은신처에서 일어났던 일을 책으로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
근데 키티에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은신처에 들어가기 전 안네의 생일부터고, 그러면 시점이 좀 꼬이긴 하는데... 혹시 그 때 일기장에 이름을 지어주는 게 유행이었나?
당시에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어린 나에게 유행이었던 것은 맞다. 초등학교 때 처음 <안네의 일기>를 읽고 나서 큰 감명을 받은 내가 가장 먼저 한 것도 내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었으니까. 그 때 내 일기장 이름은 ‘미니’였는데.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까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귀여운 친구라는 느낌으로 작명했던가.
그 때는 마치 내가 안네가 된 것처럼 상상하며 일기를 쓰고는 했다. 미니에게 일기를 쓰게 되기 전날까지는 철없는 초등학교 3학년의 일기인데, 그 다음날부터는 갑자기 세상의 근심을 짊어진 번역체의 말투가 등장한다. 그 일기가 친정집 베란다 창고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건데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 읽을 용기는 차마 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미니에게’ 라는 일기의 첫 도입부만 봐도 “으악!” 하면서 얼른 덮어버렸다. 그래도 꿈 많고 어렸던 나를 위해 변명을 좀 하자면, 원래 어릴 때는 모방과 학습의 경계가 모호한거다. 따라하면서 배우는 나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런 습관이 좀 남아있긴 하다. 읽고 있는 책의 문체나 분위기를 내가 현재 쓰는 글에 비슷하게 담게 된다. 책의 주인공과 같은 감정 상태를 공유하기도 하고, 똑같은 상황에 대한 판단도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내릴 때도 있다. 평상시에 어떤 책을 읽는지가 내 삶에는 분명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30대가 되기 전, 20대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유럽 여행을 갔다. 독일에서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여행 경비를 탕진하는 바람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는 가용할만한 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돈 박박 모아서 들른 곳이 안네의 은신처였다. 사실 네덜란드를 간 이유가 은신처를 가보기 위해서였으니, 땡전 한푼 없어도 구걸을 해서라도 갔어야 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그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빛나야 할 청소년기를 보냈던 안네를 떠올렸다.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꿈꾸며, 은신처의 생활을 꾸준히 기록하던 안네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였다면?’ 이라는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떠올리게 되겠지. 예전에는 그 질문에 판에 박힌 교과서같은 대답을 곧잘 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 질문을 가정하며 다른 삶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너무 겁쟁이가 되어버려서. 어른이 되면 될수록 더더욱 겁쟁이가 되어버려서.
안네는 일기에서 ‘내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싶다.’라고 썼다. 어찌 보면 안네는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은신처에서 서서 생각했다. 안네라는 아이가 살았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전혀 모르더라도, 그냥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나이 드는 삶을 살았다면 좋았겠다고. 그 작은 소녀가 역사의 위대한 한 사람이 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보다, 개인의 소박한 삶을 살다가 평범하게 잊혀졌다면 더 좋았겠다고.
벽장 너머 캄캄한 세상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am 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