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8일 일요일
am 11:09
아직도 몸이 100% 회복되지 않았다. 멍하고 약간 어지러운 머리,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을 떨쳐내고 겨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마음속으로 결심을 한 10번 넘게 반복했나 보다. 역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예서 뭘 써야 할지 자꾸 멈칫하게 된다. 밤새 몸이 욱씬욱씬 아파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지금도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는 것 같다.
오늘 린아는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어제 몸이 안 좋은 나 대신 남편하고 둘이 시내 아트박스에 가서 나름 열심히 선물을 골라 왔다. 근데 달랑 키링 하나? 포장지는? 생일 축하 카드는?
“여보, 그냥 생일 선물만 주는 것도 아니고 파티 초대돼서 가는 건데. 이렇게 사 오면 어떻게 해?”
“초등학생 생일에 무슨 돈을 더 얼마나 써야 해? 그냥 마음만 전하면 되는 거지.”
“그래도 생일 파티 준비하면 집에서 신경도 더 쓰고, 점심도 먹고 오는데. 최소한의 예의가 있지.”
결국 내 등쌀을 못 이기고, 둘은 다시 나가서 생일 선물 몇 가지를 더 골라 왔다. 사실 나도 뭐가 정답인지 자신은 없다. 확실한 건, 세상에 남편과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서로 거리낄 것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거다. 남편은 정말 그런 것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가치와 사람들의 시선하고 좀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난 좀 생각이 다르다. 린아 생일 파티에 온 친구가 선물을 안 갖고 오는 건 괜찮지만, 린아가 다른 친구 생일 파티에 허접한 생일 선물을 들고 가게 할 수는 없다. 세상에 남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때로는 너무 얽매이기까지 하는 나. 이 일기를 쓰면서도 혹시 나나 남편의 마인드에 다른 사람이 책잡을 것이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일기를 공개할 생각은 도대체 어떤 용기로 한 건지?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그것은 술기운이었던 것 같다. 나는 술을 마시면 mbti가 정확히 반대로 뒤집힌다.
날씨도 좋고 햇살도 따뜻하다는데(외출하고 돌아온 남편 왈) 밖에 나갈 기운이 없다. 사실 언제나 안 나갈 수 있으면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싶다. natural born 집순이인데 유림이 등쌀에 못 이겨 주말마다 밖을 전전하는, 내 본성을 거스르는 혹독한 삶을 살고 있는 불쌍한 나. 흑흑.
유림이가 정상 발달이었다면, 주말에 아빠랑 야구하거나 축구하면서 놀 수 있었겠지? 린아까지 합쳐서 세 명 캠핑 보내고, 나는 집에서 차 마시며 우아하게 책 읽는 주말을 보내는 거다.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한데?
이번 생에는 안 될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
am 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