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할게, N

2025년 5월 20일 화요일

by 곽예지나

am 5:59


N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5년 간 암투병을 하셨고, 작년에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해를 넘기고도 별 말이 없어서 다행이다 했는데, 봄을 보고 가고 싶으셨나 보다.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장례식장에 갔다. 헝클어져 있는 N의 긴 머리를 곱게 빗어주고 단정하게 따주었다. 흰색 리본도 깔끔하게 꽂아주며 말했다. “이쁘게 하고 있어야지.”

먼저 혹은 나중에 온 친구들과 모여 앉아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계모임 하러 만난 것처럼.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니어서인지 장례식장 분위기는 침착했다. 하지만 가족의 상실에 대한 슬픔은 그렇게 쉽게 갈무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투병 생활동안 N의 어머니와 N이 많이 고생을 했던 것을 알고 있다. 마지막에 호스피스 병원에서 눈을 감으셨다고 하니,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N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같이 맘고생을 했을 것이다. 가장 힘든 것은 환자 본인이지만, 옆에서 악화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시들어가는 생명을 시시각각 살펴야 하는 그 마음.

20대까지는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간다는 것이 무섭고 생소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근처에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던 나이니까. 40대가 된 나는 이제 더 이상 장례식장에서 어리둥절하지 않는다. 절을 몇 번 해야 하는지, 상주와 마주 보고 있을 때는 뭘 해야 하는지, 장례식장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데 익숙해졌다고 해서 태연해진 건 아닌가 보다. 태연한 척 하지만 나는 여전히 두렵다. 20대 때의 장례식장이 공포 영화 같은 허구적인 강렬함이었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현실적인 두려움이다.


내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신이라는 존재를 믿는 것은 왜 이리도 힘들단 말인가.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겁 내면서도, 온갖 비이성적인 신념은 다 갖고 있으면서도, 누가 감시하고 있지 않아도 세상에 나를 지켜보는 커다란 눈이 존재해서 내 죄를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상상까지 하면서도, 왜 이 생각이 종교와 연결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나는 이미 하나의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데, 이 종교가 대중적인 것이 아니고 나 혼자만 믿는 어떤 종파일 뿐인 걸까? 더 과거에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부족이 섬겼을지도 모를 그런 원시적인 종교.


슬퍼하는 N에게 더 따뜻한 위로의 말, 마음이 더 편안해지는 말을 건네주고 싶었지만 그냥 실없는 소리만 더 하다가 왔다. 이 실없는 소리가 N을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게 어딘가를 묶어주는 실이라도 되는것처럼.


am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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