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8일 수요일
am 6:15
어제 린아를 혼냈다. 많게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김유림 이 놈 시끼”라는 말을 듣는 유림이와 달리, 린아는 평상시에 혼날 일이 거의 없다. 1년에 2번? 3번? 그리고 그날이 어제였다.
도서관에서 린아 책을 반납할 때가 되어 린아에게 다 읽었냐고 물어봤더니 많이 못 읽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린아는 책을 10권 빌려주면 내용이 궁금해서 3일 만에 다 읽어버리는 타입이다. 그런데 많이 못 읽었다고? 아직 못 읽은 책을 갖고 와 보라고 했더니 10권 중에 6권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 약간 기가 찼다.
"린아야, 하루에 30분 동화책 읽기가 약속인데 그럼 그 동안 무슨 책을 읽은거야?"
"역사 만화랑 Why 읽었어요."
"만화는 책 읽는 시간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잖아."
"..."
그러고 보니 요즘 린아 담당인 현관 신발 정리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 한참이다. 날마다 쓰기로 한 일기가 학교 숙제로 써야 하는 날에만 적혀 있고, 심지어 공책을 다 썼는데 사달라는 말도 없이 맨 뒤 표지 미끌거리는 부분에 써 놓은 상태였다. 그동안 내 나태함이 눈을 가리고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린아의 습관에도 어딘가 조금씩 구멍이 뚫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전에 린아가 너무 잘해온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국어와 수학 문제집 풀이, 윤선생 영어공부, 독서 30분, 일기 쓰기, 신발장 정리의 하루 과제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해왔으니. 1박 2일 여행을 다녀와서 나머지 식구들이 다 지쳐 쓰러졌을 때에도, 린아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책상에 앉아서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해나가는 아이였다. 하루에 정해진 일과를 다 마쳐야 40분의 쉬는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긴 하지만, 솔직히 머리로는 알아도 미루지 않고 하는 게 어디 쉬운가. 내가 어릴 때는 하루에 5장씩 푸는 눈높이 수학이 유일한 학습 과제였는데, 그것조차 하기 싫어서 미루고 또 미루다가 엄마한테 혼나고 싹싹 빌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딸이지만 대단하다, 나도 저런 모습을 배워야겠다 감탄을 자주 했었는데.
아마 최근 들어 아빠하고 같이 하기 시작한 게임에 홀딱 빠져서 마음이 좀 흐물흐물해진 것 같다. 방에서 공부하다가도 아빠의 게임 소리가 들리면 후딱 나와서 옆에서 참견하고, 주말에도 원래 정해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게임기 앞에서 보냈다. 이제 보니 린아가 아니라 아빠를 혼내야겠네. 아무튼 때로는 좀 해이해질 수도 있는 거고, 관심 있는 것에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중간에 한번 흐름을 끊어주고 갈 필요가 있는 시기였고 그게 어제였다.
“린아야, 엄마는 린아의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엄마가 수학 시험 100점 맞아오라고 했어? 문제집 풀어서 하나라도 틀리면 혼냈어? 네가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가 문제인 거야.”
“죄송해요 엄마, 앞으로는 꼭 약속을 지킬께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린아야, 엄마가 속상하긴 하지만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린아의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너 스스로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야.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게임하며 노는 동안, 네 양심이 너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문제야.”
슬픈 영화나 이야기에도 울지 않는 린아가 펑펑 울며 잘못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이미 화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더 컸지만, 그래도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늦게까지 문제집 틀린 것 고치고 훌쩍거리다가 잠든 딸 옆에 잠깐 누워서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를 쓸어주었다. 어느새 11시 30분이 다 된 시간. 평소 잠들어야 하는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우리 집 복덩이 린아야.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너를 낳은 거야. 가끔 오빠한테 치이고,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도 있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도 네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물론 엄마가 너에게 주는 행복보다, 네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때가 훨씬 많은 걸 알아.
네가 앞으로 살아갈 모든 길들을 엄마가 미리 닦아놓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균형을 잃고 기우뚱거릴 때 손 잡아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 사랑해.
am 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