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0일 금요일
am 6:06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면 보수주의, 현재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찾고 그것을 바꿀 방법을 찾으면 진보주의라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확실한 보수주의자에 해당되겠다. 내가 맞닥뜨린 현실을 부정하고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보다는, 일단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하니까.
그러면 보통 상담에서의 가이드도 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 서술되는 것일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조언을 많이 하지 않나. 예를 들어서 직장 상사가 자꾸 나를 갈구고 스트레스를 줄 때, 직장 상사를 갈아치울 수는 없으니까 내 마인드를 바꾸라는 식으로. ‘저 헛소리 중에서도 도움 되는 게 하나는 있겠지.’ 또는 ‘받아치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니까 나는 내 품위를 지켜야지.’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럼 확실히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현실에서 바뀌는 것은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앞장서서 틀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보다, 나처럼 적당히 수용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 결국에는 우리 사회 전체가 보수주의적인 색채를 띄고 있을 수밖에 없겠네. 일단 상황 자체에 문제점을 느끼거나 의문을 제기해야 하고, 단순히 생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것을 바꾸겠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행동력, 전투력을 기반으로 해서 여기에 자신의 시간까지 엄청 갈아 넣어야 할 테니까. ‘쟤는 왜 저렇게 튀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감당하면서.
나는 작은 일에는 크게 불만을 느끼지 못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문장을 꽤 선호하기도 한다. 갈등을 싫어하며, 도전하기보다는 안주하는 편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길 것 같으면 차라리 해결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나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세상은 아직도 선사시대나 농경 시대 정도에 머물러 있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냥 아침에 일어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림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직면하고 괴로울 때, 나는 언제나 나를 탓했다. 내가 강하지 못해서 그래, 내가 담대하지 못해서 그래, 내가 인내심이 없어서 그래, 내가 너무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써서 그래,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아서 그래, 내가 너무 게을러서 그래,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해서 그래. 내가 그래. 내가 그래. 내가 그래.
그런데 이 모든 상황에서 결국 탓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는 게 맞나? 정말 나 혼자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누군가 나를 심각하게 가스라이팅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삼자가 아니면 나 스스로가 직접.
"모든 게 내 마음먹기 달렸다."
어깨를 토닥거리는 따뜻한 이 말은 어찌보면 만능 해결 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속내는 ‘너의 살 길은 너 혼자 찾는 거야. 누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마음이라도 고쳐먹어.’라는 말을 듣기 좋게 포장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 자체를 해결하기보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그냥 참고 견디라는 것 처럼.
힘들 때마다 일상적으로 떠올리던 그 문장이, 갑자기 낯설고 깔끄럽게 느껴졌다.
am 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