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무가당 두유를 마시며

2025년 6월 23일 월요일

by 곽예지나

am 5:50


유림이가 일어나있고, 나도 알람이 울리자마자 일어나서 일기를 쓰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니 월요일이 오긴 왔구나. 이번 달에도 단식 타이밍이 되어서, 지금 35시간 30분째이다. 어제 24시간 무렵 제일 고비가 왔다가 딱 그 순간을 넘기니까 괜찮아졌다. 간밤에 그 어느 때보다 숙면했으니 내 장기들도 잘 쉰 것 같다. 일어난 직후에는 너무 멀쩡해서 ‘48시간 도전해 봐?’라는 생각을 했지만, 일기 몇 줄 쓰고 나니까 급격히 기력이 쇠해진다. 까불지 말고 36시간 되면 쫑내야겠다. 지난달에 단식 끝나고 아팠던 기억이 새록새록 해서-바이러스 잠복기를 몰랐던 것이라고 항변하고 싶지만-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단식을 하다 보니 이제 24시간 정도는 단식 같지도 않은 느낌이다. 말이 24시간이지, 1일 1식하고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솔직히 그렇게 난이도가 높지도 않다. 하지만 세 끼를 꼬박 숟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36시간은 느낌이 좀 달라진다. 그래도 저녁밥의 유혹까지만 잘 버티면 그 다음에는 일찍 자버리면 되기 때문에, ‘24시간 하느니 36시간 한다.’ 뭐 이런 결론이 나오더라.


단식하면서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에 눈이 돌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어제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 나온 뚝배기 계란찜을 보고 크게 마음이 흔들렸었다. 뚝배기를 한가득 채운 노랗고 뽀얀 계란찜이 위로 동그마니 솟아올라 보글대는 것이 얼마나 먹음직스럽던지! 내가 계란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인식한 순간이었다. 다른 밑반찬들이나 그 뒤에 나온 돼지갈비는 오히려 하나도 유혹적이지 않았다. 일기에 쓴 김에 이따 보식으로 순두부 달걀찜이나 해 먹을까 생각하고 있다.


단식이 끝나면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은 위가 놀랄 것을 대비하여, 첫 끼는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소량 먹어야 한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식’이라고 부른다. 기껏 단식해 놓고 먹는 첫 끼가 햄버거, 치킨, 떡볶이 같은 가공식품이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먹어야 한다. 일기를 쓰다가 36시간이 끝나서 첫 끼로 무가당 두유를 조금씩 입에 넣고 삼키고 있는데, 늘 먹어왔던 건데 오늘은 아주 달짝지근하게 느껴진다. 단맛의 역치가 리셋이 된 것이다. 이렇게 며칠 동안에는 음식 맛이 아주 강렬하게 느껴져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음식을 소량 먹게 된다. 한 3일쯤 지나면 입맛도 체중도 다시 원상복구 되어 있지만.


사실 단식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챗GPT다. 고비가 오는 순간마다 챗GPT를 달달 볶는데, 그때마다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예지나 넌 정말 잘하고 있다. (F식 위로) 지금 네 몸에서는 이런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T식 위로). 하지만 힘들면 멈춰도 된다. 지금 멈추더라도 너는 멋진 사람이다. (무조건적인 지지)”라고 대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럼 또 그 순간을 넘기게 된다. 사실 챗GPT의 위로 패턴은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묻기도 전에 어떻게 대답할지 뻔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뻔한 말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것을 보면, 인간은 뻔한 말이라도 듣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뻔한 위로라도 건네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고.


단식과 관련된 이야기는 지난달에 자세하게 거의 다 쓴 것 같아서 오늘은 첫 문단에만 간단하게 쓰고 넘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주구장창 길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었던 거구나. 그렇지만 이런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이야기들을 다른 누군가를 붙잡고 늘어놓는다는게 난 좀 그렇다. 뭔가 좀 척해보이는 것 같고, 그 사람은 이런 분야에 관심도 없는데 괜히 시간 뺏는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말을 아끼게 되고, 좀 더 편안한 글쓰기의 공간으로 몸을 숨기게 된다. 글은 어쨌든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 읽는 것이고, 나도 몇 번이나 고쳐가며 제일 맘에 드는 것을 내 놓을 수 있으니까.


am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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