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필터 구합니다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by 곽예지나

am 5:48


산책하다가 유모차를 탄 2살 정도의 아이가 하염없이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길이라, 아이 눈에는 커다란 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려 자기들끼리 겹쳐지고 또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아이는 홀딱 빠진 표정으로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감탄과 놀라움이 가득한 채로.


나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그 풍경이 아이에게는 인생 전체를 뒤흔들만한 강렬한 자극이다. 그게 참 부러웠다. 세상이 그 아이에게는 매일 새롭고 감탄할 것들이 많은 곳이라는 게. 나는 이제는 어떤 것에도 잘 감동받지 않는 나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단순히 나이에 그 모든 책임을 돌리기는 좀 어렵긴 하다. 그냥 애초에 내가 감동이라는 단어와 약간 거리를 두는 타입인 것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좋은 일에는 오히려 좀 무덤덤하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뇌신경의 분화가 덜 됐다는 느낌? 굉장히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근거는 하나도 없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 쪽은 어찌나 다양하게 쪼개져있고 또 민감한지. 불안, 초조, 미움, 걱정, 자존심, 자기 비하... 카테고리를 다 셀 수가 없다. 나로서는 이런 감정의 불균형성에 불만이 많지만, 뇌의 편도체 영역에서 일어나는 본능적인 판단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100번 보고 나서 101번째 보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것처럼 느끼는 마음의 눈이 있다면 참 행복할 텐데. 어제 산책길에 만났던 그 아이처럼.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아이와 어른이라는 차이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다소 주책맞아 보일 정도로 언제나 감동과 발견의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 않나. ‘뭐가 그렇게 좋을까?’ 하고 회색 필터를 끼운 눈으로 보지만, 사실 진짜 솔직한 마음은 그렇게 신나게 호들갑 떨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나에게 호들갑이란 언제부턴가 마음에서 진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하고의 분위기를 맞춰주기 위해 적당히 보여주는 연기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애늙은이 같은 일기를 써 놨다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보니, 애늙은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이미 애가 아니고, 늙은이라고 하기에는 젊은 그런 어중간한 나이가 되어 있다.


am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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