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스피드 신혼집 계약

99일 만에 결혼하기 프로젝트

by 자몽까는언니

결혼의 목적 자체가 ‘최대한 빨리 식을 올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막상 중요한 집 문제는 뒷전이었다. 마흔 전에 결혼이란 걸 해봐야겠는데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이 사람이라면 적어도 억울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크나큰 도박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당장 오늘 결혼해도 이미 늦은 나이, 이제는 갔다 오더라도 남들 다 하는 결혼 나도 해보고 싶었다. 반면 예비신랑은 ‘이 여자와 한 공간에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그게 결혼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여름 야외 웨딩을 원하니 그는 그런 나의 페이스에 맞춰 함께 경주마가 되어 달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각자의 타당한 이유로 한 마디로 ‘미쳐서’ 결혼을 준비했다.



선생님 신혼집 구하셨어요?

부동산을 운영하고 계신 나의 고객이 물어보셨다. 어쩌면 식을 올리고 각자 본가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깔깔거리면서 대답했다. 회원님은 펄쩍 뛰면서 말도 안 된다고 빨리 집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반 우스갯소리로 말한 거긴 했지만 사실 여차하면 결혼식을 올리고 각자 본가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결혼 준비 자체만으로 이미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강경하게 말씀하셨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기는 했다. 정신을 차리고 예랑이와 부랴부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 집값이 만만치 않은데 급하게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하려고 하니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결국 우리는 매매가 아닌 전세를 알아보기로 했다. 전세 계약으로 일단 임시 거처를 구하고, 결혼해서 살면서 오랫동안 살 집을 함께 찾아보자고 합의했다. 집은 한 번 매매 계약을 하면 이동이 어렵고 무엇보다 세금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보다 좋은 대안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전세로 들어간다 해도 아무 곳이나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빌트인으로 된 새 집에 가려고 했지만, 집이 마음에 들면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위치가 좋으면 가격이 만만치 않는 식으로 조금씩 어긋났다. 예산 내에서 마음에 쏙 드는 곳을, 그것도 단기간 내에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동산에서 강하게 추천하는 집이 있었는데 처음에 우리는 그곳을 사양했다. 평수가 좁고 건축 자재도 고급스럽지 않았으며 뷰도 마음에 안 들었다. 부동산에서는 그 집이 남편과 나의 직장에서 가깝고 여러모로 가성비 괜찮다고 밀어붙였으나 내 마음에 꽂히지 않았다. 누가 그랬다. 생각보다 나의‘직관’이 정확하다고. 나는 무엇이든 첫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부동산에서는 우리에게 그 집을 아주 집요하게 추천했다. 우리는 계속 거절했다. 2주 후에 부동산에서 그 집 이야기를 또 꺼냈다. 가격을 내렸으니 한 번만 더 고려해 보라고 말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그 집을 다시 한번 방문했다. 시간이 촉박한 상태에서 부동산에서 강하게 추천을 하고 마침 전세 가격도 내리니 정말 가성비 이만한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랑이와 상의 끝에 결국 그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순간 중심을 잃고 부동산에 휘둘렸던 것에 약간의 아쉬움이 여전히 있다. 전세 계약기간 2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가전과 가구 침구 채워 넣기

신혼집 입주 날은 본식으로부터 2주 전이었다. 빌트인으로 된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서 골치 아픈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침구류, 부엌 식기류, 그리고 기타 생필품들 외에 가전과 가구를 사야 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가전은 백화점에서 한꺼번에 구매할 경우 신혼부부 특별 할인 혜택이 좋다고 했다. 결혼을 3주 앞두고 고민할 새가 없었다. 우리는 백화점에 방문해서 방문 한 그날 바로 TV,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로봇청소기등의 가전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새로운 살림을 차린다는 것이 이렇게나 신경 쓸 것이 많은지 몰랐다. 사은품으로 꼭 필요했던 수저세트와 그릇세트를 받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릇과 수저까지는 도저히 보러 다닐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하늘이 우리 커플을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도 필요했다. 적어도 침대랑 식탁은 있어야 했다. 평소에 안 하던 산책을 나왔는데 우연히 집 근처 프리미엄 가구점에서 전격 세일에 들어간 것을 발견했다. 평소 할인을 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눈을 의심했다. 매장에 들어가서 가구를 둘러보니 매장 곳곳에 예쁜 가구들 천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격을 보니 할인 폭이 컸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바로 예비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매트리스를 미리 사 두었는데 침대 프레임이 마땅한 것이 없어서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딥 그린 계열의 침대 프레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믿을 수 없게도 매장 안에 내가 원하던 딥 그린의 침대 프레임이 있었다. 그것도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말이다. 직원에게 침대 프레임 재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없다고 해서 무척 실망했는데 이내 그 직원이 내게 다시 오더니 딱 한 개 남은 것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 커플은 바로 다음 날 침대 프레임과 식탁 및 거실 테이블을 포함한 각종 가구들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비싼 가구들을 저렴한 가격에 풀세트로 구매하다니 이는 필시 하늘에서 우리 커플을 돕는 것이 분명했다.


결혼 준비는 쉽지 않았다. 특히 만난 지 99일 만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급하게 진행했던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고 싶었다. 결혼을 한 지금도 우리가 그렇게 급하게 추진했던 것을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넉넉하면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면서 오해가 쌓일 수도 있고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커플은 너무 바빠서 틀어질 시간도 없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결국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불가능할 것 만 같았던 집 계약이 속사포로 이루어졌고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기 어려울 것만 같았던 가전과 가구도 모두 구매 완료했다. 일을 하나하나 처리할 때마다 몫 돈이 무섭게 나갔다. 결혼 준비가 되어갈수록 돈을 물 쓰듯 신나게 쓰게 되어서 심장이 졸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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