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 게 참 웃긴 게 뭐냐면
이게 없을 땐 사람이 그렇게 작아 보이고 하찮아 보여.
그게 비단 다른 사람 눈에만 그런 게 아니라
나 자신조차도 그렇게 느껴진다는 게 큰 문제지.
자신감, 자존감 모두 바닥나서
어딜 가도 패배자처럼 행동하고 눈치 보고
자격지심에...
물론 사람에 따라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닐 수 있는 것처럼
안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완전 말도 안 되는, 근거 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사람은
글쎄? 몇 퍼센트나 될까?
하지만 아빠한테 만약 더 무서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주머니에 한 푼도 없던 상태에서 갑자기 생겼을 때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것이 로또나 다른 엄청난 기회를 타고 들어온 횡재던,
대출 같은 빚이던.
갑자기 생긴 돈은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계속 잘못된 길을 걷게 만들어서
결국 스스로 벼랑 끝까지 걸어가게 만들더라고.
혹시... 혹시말야... 구체적인 계획이나,
누군가 정신 차리라고 혼내줄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게 아니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이지.
250만 원 정도 남았다는 입출금 문자를 보면서도 아빠는
아무 느낌이 없었어.
오히려 백단위에 돈이 아직 통장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거일지도 모르지.
"도리아저씨 오늘도 파이팅!"
엄마의 에너지 넘치는 인사를 받고 집을 나섰어.
항상 루틴처럼 차에 반쯤 몸만 집어넣어서 시동만 걸고 내려
주머니 담뱃갑을 열었지.
'담배가 별로 없네?'
담뱃갑엔 1개의 담배가 그 넓은 공간을 혼자 쓰며
자유롭게 굴러다니고 있더라고.
'...'
-치익-
담배갑을 바라보며 잠깐의 고민을 했지만
일단 담배에 불을 붙였어.
반쯤 폈을까?
평소 같으면 아까워서 필터 바로 위까지 쪽쪽 빨아 댔을 테지만
손가락을 튕겨 바로 꺼버렸지.
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바로 편의점으로 뛰어갔어.
"ㅇㅇ 한 보루 주세요!"
담배 보루로 사는 사치를 부려보고 싶었던 거지.
항상 담배 한 두 개 남았을 때
'담배 살 돈 있나?'
하면서 속으로 계산하고, 주머니 뒤져보고, 통장확인해 보는 게
너무 구차하고 징글징글했거든.
"ㅇㅇ 한 보루요."
뒤로 돌아 수납장에서 보루담배를 찾는 아르바이트생을 바라보다가
"xx도 한 보루 주세요"
어제 사수에게 담배 두 갑 사주겠다고 한 게 생각이 났어.
'쪼잔하게 두 갑이 뭐냐 보루는 사줘야지'
담배 두 보루를 들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은 게
정말 그럴 리 없었음에도.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어.
차에 경태형 줄 담배부터 싣고 내 담배를 뜯었어.
'한 갑.. 두 갑.. 세 갑..'
담배 10갑. 그게 다 아빠 거였어.
더 이상 직원들한테 담배를 안 빌려도 되고
10갑이면 적어도 2주 이상은 담배걱정 없이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들뜬 아빠였지.
'어디~ 보루담배 맛이나 보자~'
그날 핀 담배는 왜 그렇게 맛있던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나더라고.
이번에도 반쯤 피었을까? 문득 바라본 핸드폰 시계가
지금 당장출근하지 않으면 지각이라고 알려주더라고.
'어우씨 지각하겠네'
이번에도 검지손가락으로 담배를 튕겨 끄려고 했는데
'아뜨거!'
불똥을 손으로 만져버린거지. 그대로 담배는 바닥에 떨어지더니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어.
'아뜨거.. 아씨.. 어떡하지? 아 몰라. 알아서 꺼지겠지.'
담뱃불이 담배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 조금 걱정됐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차에 올라 출발했어.
바닥에 타다 만 담배는 그렇게 남겨둔 채
어차피 놔두면 다 타들어가 필터만 남긴 채 스스로 꺼지겠지 라는 생각하며 말이야.
"이야.. 사람은 역시 안 변해? 그치 도리야?"
[ 8시 58분 ]
오늘따라 차는 또 왜 그렇게 막히는지.
'담배 하나는 출근해서 필걸 그랬나?'
'오늘 뭐 단체로 피난 가는 거야? 왜 이렇게 막혀'
'아.. 형들 또 뭐라 하겠네..'
'아오.. 염불 하네 진짜...'
수없이 자책하고 혼자 화냈다가 중얼거렸다가를 반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을 했다만. 또 출근시간 2분 남기고 도착을 하고 만 거지.
"야 그럴 거면 그냥 그만둬~ 뭐 하러 힘들게 출근하고 그러냐? 집에서 푹 쉬지?"
"죄.. 죄송.."
아직 2분이나 남은 상황인데, 지각한 것도 아닌데 왜 들 이러나 아직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쩌겠니? 직장생활이라는 게 이런 거라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었어.
그러다 문득 담배가 생각나 고개를 팍 들어 경태형의 눈을 마주 봤지.
"뭐... 뭐냐? 습격이냐?"
갑작스런 행동에 경태형은 당황했는지 어설프게 결투 자세를 취하며 나에게 묻고 잇었어.
'담배 한 보루면 용서해 주겠지?'
라는 생각에 얼굴에 미소를 지은채 경태형에게 다가갔지.
"뭐.. 뭐야! 하극상이야? 너 이 새끼 형이 어? 어렸을 때 얼마나 잘나갔... 야 그거 벽돌!"
"... 선물... "
스윽 내미는 담배보루가 벽돌이라 착각했는지 몸을 뒤로 피하는 경태형을 바라보며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선물이라며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어.
경태형은 내손과 나를 번갈아 두세 번 쳐다보더니
"하~ 나참. 지금 뇌물 먹이는 거냐? 몇 개 줄건데? 아씨 쪽팔리게..."
"에이형.. 여기서 이걸 어떻게 또 나눠요."
"너 이 새끼!"
후배가 담배를 보루로 사줘서 건방지다고 생각했을까?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하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언성을 높이는 경태형을 보면서
'아... 또 내가 뭐 실수했구나'
하며 자책하는 순간
"형이 너를 많이 오해했구나? 이 새끼 좋은 새끼네? 형이 앞으로 너에 대해 알아가 봐도 괜찮겠니?"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담배를 가져가는 경태형이었어.
그렇게 자기 자리로 들어가서는 내가 준 보루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일어나더라고
"가자~ 모닝담배 펴야지~"
신나서 나가는 경태형 뒤를 쫓아 나가는데 어디서 또 희미하게 커피 향이 나는 거야.
"내거는?"
"헉 네?"
언제 들어 갔었는지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 홀짝홀짝 마시면서 나오는 김 과장과 마주친 거지.
"나도 필 줄 아는데 보루 담배"
"아.. 아?"
문득 차에 놔두고 온 아빠 담배가 생각난 거지.
"있긴 한데.. 제가 담배가 없어서 하나 뺏습니다. 그거라도..."
아빠의 말에 실눈을 뜨고 바라보던 김 과장은 재미없어졌다는 듯이
자기 자리로 걸음을 옮겼어.
"가랑비에 홍수 나는 법이다. 정신은 잘 붙들고 살아야 해"
이상한 말을 남기면서 말이지.
그때 김 과장은 알고 있었던 걸까?
앞으로 아빠가 어떻게 될지 말이야.
하지만 정작 그때는 아빠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
아무리 좋은 말도, 아무리 맞는 말도
들을 준비가, 변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수천번, 수만 번을 한다 해도 잔소리, 헛소리로 들릴 뿐이거든.
"오늘 저녁 뭐 먹지? 치킨 시켜 먹을까?"
"내일 주말인데 드라이브나 할까?"
"홈쇼핑 지금 방송하는 거 저거 괜찮다? 두 개 사서 쟁여놓을까?"
한동안 정말 돈걱정 없이 살았던 것 같아.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기름을 넣기 위해
집 근처 주유소에 들렀을 때.
-딩동-
문자 알림 소리에 한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문자함을 열었던 그때.
아빠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져 버렸지.
[국민은행] 출금완료
일시: 20xx/xx/xx xx:xx
가맹점: XXX 주유소 ㅇㅇ점
금액: 40,000원
잔액: 270,000원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아빠잔액은 이미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던 거야.
사실 알고 있었어. 무서워서 보지 않았던 거거든.
돈을 쓰면 날아오는 알림 문자에 적혀있는 잔액.
점점 줄어드는 그 잔액을 내가 보지 않으면 좀 더 천천히 줄어들지 않을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되지 않을까. 정말 마법이라도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마법 따윈 일어나지 않았지.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담배를 꺼내 물었어.
아주 오랜만에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쪼그려 앉았지.
'돈이.. 참 금방 나가는구나.. 500이었는데...'
한 달? 아니 20일도 안 되는 시간만에 500을 다 썼다는 생각에
'난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몰려 오더라구.
'하아~ 후~'
두 번째 연기를 내뱉었을 때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가 눈에 띄었어.
필터 부분이 많이 손상되지 않았음에도 불붙는 부분은 완전히 다 타버린.
그래 돈 생겼다고 신나서 담배를 보루로 샀던 그날.
불똥 끌 시간도 없어서 차에 올라 부랴부랴 출발했던 그날.
내가 버렸던 그 담배꽁초가 분명했어.
이담배꽁초는 여기에 버려져서. 아무도 모르게, 티 안 나게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었던 거야.
마지막 빨아들일 수 있는 필터 윗부분까지 말이지.
'그.. 그래도.. 이번엔 월급도 있으니까..'
그 돈으로 이자내고, 월세내고, 공과금내고...
아직 계산은 해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거다.
그리고 아직 대출금 중에 27만 원이나 남았잖아?
라는 생각으로 애써 불안감을 떨치고 일어나려는데 엄마에게 전화가온거지.
"응 마누라~ 다 왔어 금방 올라..."
"아저씨..."
수화기에서는 평소와 다른 어딘가 아파 보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잇었어.
"뭐야? 왜? 기다려 금방 갈게"
"으.. 아저씨.."
[삐삑삑삑
띠릉띠릉]
집까지 단걸음에 뛰어올라가 집문을 열려는데 당황해서인지 한 번에 잘 열리지 않는 거야.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 또 눌러도 열리지 않았어.
[띠릉 띠릉
쾅! 쾅! ]
'아씨 왜 안돼! 미진아!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
문을 쾅쾅 치고서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번호를 눌러갔어.
-찰칵-
문이 열리고 아빠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옆으로 몸을 살짝 웅크린 채 배를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누워있는 엄마였어.
"아.. 아저씨.. 나 배 아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