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쾅쾅 치고서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번호를 눌러갔어.
-찰칵-
문이 열리고 아빠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옆으로 몸을 살짝 웅크린 채 배를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누워있는 엄마였어.
"아.. 아저씨.. 나 배 아파.. "
"미진아 무슨 일이야?"
"어?"
혹여나 잘못 건드리지 않을까.
잘못 건들여서 더 크게 다치지 않을까.
제대로 만지지도 못하고 그냥 서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
"왜 무슨 일인데. 왜 넘어져있어."
"어..? 어그게.."
넘어진 엄마 앞에서 아등바등하다 보니 어느새 아빠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더라.
"어? 왜 울어?"
"울긴 누가 울어! 미진아 일어날 수 있겠어? 살짝 해볼까? 내가 받쳐줄게"
"어..? 어.. 그래보자 읏차!"
쪼그려 앉아서 양팔을 벌리며 혹여라도 넘어지면 받아주려던 아빠의 포즈가 무색하게
벌떡 일어나는 엄마를 보며 울음도, 행동도 다 멈춰버린 아빠였지.
"배도 좀 괜찮은 것 같기도.. 근데 왜 울어..?"
엄마의 말에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면서, 또 한편으론 뭔가 억눌려 있던 게 터진 기분이었어.
"야! 깜짝 놀랐잖아! 뭔데?"
"아.. 그냥 뭐... 미끄러져서 넘어졌던 건데..."
"배는!"
"그거야.. 다소가 놀라서.. 어휴 땀 봐. 나 다쳤을까 봐 놀랐어?"
좋지 않은 느낌, 좋지 않은 상황. 이런 것들은 특징이 있어.
항상 우르르 몰려온다는 거지.
그때 아빠는 살짝 눈치라도 채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그것들이 가까이 왔음을 말야.
혹시 아기가 잘못된 건 아닐까. 미진이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그동안 돈문제는 진짜 새발의 피고, 이제 제대로 지옥길을 걷게 되는 건 아닐까.
별에 별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빠를 두렵게 했던 것 같아.
뭐.. 그날의 사건은 엄마의 오버스러움도 한몫했지만 말야.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더 이상 대출받은 금액이 아빠의 통장에 남아있지 않았을때
한통의 전화가 왔어.
"도리씨? 대출진행하신 @@입니다. 이달 원리금 입금 잘 부탁드립니다."
뭔가 엄청난 대화가 오고 간 건 아니었지만. 돈이 없는 상태에서 받은 그전화는
아빠를 위축시키고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했지.
"도리? 도리도리? 그 애기 들었냐?"
멍하니... 할 수 있는 게 시선을 허공에 두고 멍하니 있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사무실입구에서 멍하니 서있는데 언제 나타 낫는지 모를 김 과장이
커피를 홀짝이면서 얘기하는 거야.
"모릅니다.."
"뭐를?"
"과장님이 지금 말씀하실 거요"
"이 새끼 많이 컸네?"
내 힘없는 반응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이내 그의 시그니처 무표정으로 다시 바꾸곤
이야기를 이어갔어.
"재 대리 달았다?"
"아.. 네? 누구요?"
"재 있잖아 니 사수"
신난 얼굴로 여기저기 붙어 다니며 사람들하고 악수하고 다니는 경태형을 김 과장은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어.
"갑자기요?"
"갑자기라기엔.. (홀짝) 실매출이 10억 가까이 된다는 말이 있던데.. 연봉도 천 넘게 올랐다는데.."
"우.. 우와.. 천.."
경태형이 맡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번에 대박이 터졌나 보더라고.
웃긴 건 회사에서도 그 가능성이 장담할 수 없어 1인 단독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거야.
후반에 인력이 모자라니까 그때 돼서야 인력을 붙여 주는 그런 식이었던 거지.
다행히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해 경태형은 회사에서 인정받고 연봉과, 직급 그러니까 승진하게 된 거였어.
"도리야~ 여기들 있네. 아~ 이거 어깨가 무거워서 내일부터 출근 어떻게 해요 김 과장님?
응? 원래 이게 이렇게 무거운 건가?"
"... 대리 달았던 게 언젠지 몰라서 기억도 안 난다."
그 말만 남긴 체 김 과장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어. 더 이상 귀찮으니까 이야기하지 말라는 표정을 하고는 말이야.
"야야 그래서 형이 오늘 술 한잔 살까 하는데 말이야."
"술.. 하아.. "
"이 새끼가 잔칫집에서 한숨이네? 미쳤냐?"
"제가 술 마실 돈이 없어서요."
"미친놈 누가 너보고 사래? 술은 형들이 사는 거야. 니들은 돈아꼇다가 나중에 후배들 사주는 거고"
'그러니까 대리 탈돈도 없다고요. 그것도 주시게요?'
라고 목 끝까지 올라오는 걸 겨우 참아 삼켜버렸어.
"오 형태쒸~ 대단해? 대리 축하해요? 오늘 퐈티 하나?"
"오 기현쒸~ 이제 우리 같은 대리야? 나 말 놔도 되지?"
경태형의 어깨를 스윽 감싸며 리듬을 타듯 몸을 흔들면서 나타난 기현이 형.
그리고 그에 반응하는 경태형이었어.
기현이 형이 좀 더 먼저 들어왔고 먼저 대리를 달아서 그렇지 둘은 동갑이라고 하더라고.
"뭐~ 이미 말 놓고 있구먼~ 어디서 먹을 건데?"
"그러니까 봐봐 우리 팀만 부를까 했는데 저 사 차장님을 부르면 재도 올 거고, 강 부장님도 오겠지?
그럼 그 팀 부서 애들도 올 텐데 이러다가 또 저번에 도리 회식 때처럼 점점 커져서 직원 회식 되는 거 아냐?"
"오.. 금일봉은 얼마나 하사하셨는데?"
"그러니까 나 이거 못 뜯어보겠다. 뭔가 두툼하긴 한데. 얼마 들었을지 무서워서 못 열겠어 기현 씨가 좀 열어보고 애기해 줄려?"
관심도 없는 회식애기? 파티애기에 기운이 더더욱 빠지는 것 같은 거야.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때 기현이 형이 나를 붙잡으면서 경태형을 향해 한마디 하더라고
"이야~ 많네~ 만원 정도 빼도 티도 안 나게~"
그러면서 2만 원을 빼가지고는 아빠의 주머니에 넣어주더라
"아니 이양반이 뭐 하는 짓이야? 아직 나도 못 만져본 돈을?"
내주머니에서 다시 돈을 빼려고 하는 경태형, 그걸 저지하는 기현이 형
"에헤이~ 부사수 대리비는 사수가 챙기는 거지~ 야 도리야~ 넌 오늘 꼭 참가해야겠다~
아~ 남자가 꼬집는 게 어딨어! 담배나 피우러 가요? 못났다.. 줬다가 뺏게?"
기현이 형이 넣어준 2만 원. 주머니 속에 잡히는 그 2만 원을 꼭 잡고서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전체회식, 그러니까 아빠 신입사원환영식 때 생각이 나더라고
그때 아빠는 어차피 망한 거 제대로 망하자 란 생각으로 술을 미친 듯이 마셧던것 같아.
노래방에서 탬버린 흔들고 춤춘 기억, 양주를 컵에다 따라 마신기억 등 평소라면 생각도 못했을
행동들을 한. 지워버리고 싶었던 기억만 생각나는 걸 보면말야.
그렇게 회식자리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야 해서 아빠 차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어.
그래. 음주운전을 하자고 생각했던 거지.
'몰라 씨.. 돈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먹자고 했냐? 그러니까 쿨럭쿨럭. 왜 가만있는 사람을'
담배하나만 피고 출발할 생각으로 흔들리는 몸으로 겨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라고
"야~ 도리!"
"기현 대리님?"
"야! 도리!"
기현이 형은 내 얼굴 바로 앞까지 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
"네?"
"대리님은 무슨. 야 담배 좀 달라고! 저기서부터 쫓아왔잖아! 나주는게 아깝냐?"
"아.. 아니요.."
당황하는 바람에 손을 살짝 떨며 담배를 건네는데 담배가 우르르 쏟아지는 거야.
'아 아까운데'
그대로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줍는데 술이 많이 취해서 그런가
그대로 넘어져버렸어.
"얼씨고.? 너 집엔 어떻게 가냐? 대리?"
"네 대리..."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다 주워 담뱃갑에 넣고 그중에 제일 멀쩡한 놈을 기현이 형한테 내밀었어.
기현이현은 아빠를 한번 휙 훑어보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더라고.
"흐아~ 회식 재미없지? 노인네들 떠들기 나하고"
"재밌었습니다."
"거짓말 치지 마 인마~'
그렇게 그냥 별거 없는 사소한 애기로 회식의 밤은 끝나가고 있었어.
"야 담뱃갑 해라"
기현이 형은 2만 원을 내밀고 있었어.
'저 돈이면 대리비분만 아니라 약간의 기름값도 충분하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그지야? 왜 적선해?'
라는 자기 비하적 반감도 잇었던 것 같아.
"... 빨리 받아? 안 받아?"
내가 받지 않자 내차로 뚜벅뚜벅 걸어가던 기현이 형은 내 창문을 열고
보조석에 돈을 살짝 내려놓고는 문을 닫았어.
"나 간다~ 원래 사수가 챙겨야 되는데 그 양반이 그럴 위인이 못되거든~
나중에 후배들한테 갚아~"
어쨌든 오늘도 기현이 형 덕에 대리비가 생겼지만.
집은 집대로 빚은 빚대로 아주난리 시궁창인 이 상황에서 술 마시러 가도 되나
괜히 엄마한테 미안해진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
"도리 아저씨? 오늘 늦는구나! 또 이상한 아저씨들이 막 괴롭혀?"
"아.. 아니 그 이상한 아저씨들이 밥 사준데~ 술도 사준데~"
"오.. 그럼 좋은 아저씨들인데? 많이 먹고 와"
"당신 저녁은?"
"난 먹을 거 많다요~"
알고 있지. 집에 뭐가 있는지... 먹을게 얼마나 있는... 아니 없는지...
그래서 더 전화해서 확인받고 싶었는지 몰라.
괜찮으니까 다녀오라고
그렇게 허락받고 갔다 오는 게 좀 덜 미안할 수 있는
면죄부라고 생각해서 굳이 허락을 받으려고 했던 것 같아.
"도리~"
"아 그만 좀 불러 지겨워 죽겠어"
"그럼 이름을 바꾸라"
멀리서 신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노란 머리였지.
"오늘 회식한다며? 우리 도 부르던데?"
"알아서들하겟지~"
"오.. 이따 상황 봐서 우리끼리 2 차갈까?"
"왜?"
"왜냐니 친구끼리 2차 가는.."
"돈 없어."
"아니 내가 사줄.. 야!"
2 차가 자는 요청에 돈 없단 이유로 딱 잘라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오는데 노랑머리는 끝내 아쉬운지
졸졸 따라오다가 아빠가 아무 반응 없쟈.
"요이요이 이 단무지는 왜 자꾸 요기서 얼쩡거리나"
팀장님에게 또 잡혀가더라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퇴근시간.
"자! 오늘은 내가 쏩니다! 다들 일어나시죠?"
그렇게 경태형의 씩씩한 한마디로 그날 저녁은 시작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