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쟁이

by 도리

아빠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리는 것이 평생소원인

사람이 있었어.


"헤헤! 할아버지 분리는 했는데 조립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고! 이 놈 새끼 손목쟁이를.."


음악 듣는 걸 좋아하셨던 증조할아버지께 최신 전축이라며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너희들 할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걸 곰곰이 듣던 아빠는


조그만 기계에서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하다며 드라이버를 들고 와선

전부 해체해 버렸어. 그때 아빠 나이 4살 때였어.


너희들 할머니의 건강과 할아버지의 일 때문에 아빠는 종종 증조할아버지 댁에 맡겨졌었단다.

하루 이틀? 이런 게 아니라 몇 년, 몇 개월 이런 식으로.


시골에 살면 심심하지 않냐고?


음 그때는 그래도 동네에 아이들도 좀 있었고.

여름엔 동네 형 누나들과 물가에서 놀고

겨울에는 막대기 하나 들고 냇가에 꽁꽁 얼은 얼음도 깨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잘 놀았던 것 같아.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땐 그냥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고,

그것에 만족하면서 살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멀리 있는 행복, 손에 닿기 조차 어려운

그런 것들을 좇으면서 불평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난 왜 이렇게 불행하냐고 말야.


"할아버지 불 낫어요!"


"한겨울에 무슨 일이랴? 어디?"


칼날 같은 찬바람이 불던 11월 어느 날. 마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소여물 끓이는 냄새, 밥 짓는 냄새,


그리고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던 걸로 기억하는 걸 보면

아직 저녁 먹기 전 5시쯤 이었을까?


집에 헐레벌떡 뛰어온 아빠는 아빠의 할아버지에게

불이 낫다고 전하고 있었어.


"조기요~"


불난 곳이 잘 보이는 위치로 할아버지를 밀다시피 모시고 나와 손가락으로

논을 가리켰지.


그곳엔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물을 뿌려대며 불을 끄고 있었어.


"워메.. 크게 낫네? 어쩌다 그랬다냐?"


불구경을 하면서 담배를 입에 물고는 아빠를 쳐다보며 묻는 할아버지에게

아빠는 해맑게 그러나 아쉬운 듯 한 말 투로


"저번에 형누나들이랑 고구마 구워 먹었는데 맛있었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낌이 왔던 걸까? 할아버지의 눈빛은 갑자기

귀신본 눈빛으로, 아니야.. 그냥 초점이 갑자기 사라지셨던 것 같아.


"응? 고구마...? 구워...?"


"네! 그래서 저기 성냥 하고 광에서 고구마 갖구가서 구웠는데"


그 말을 하자마자 할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어.


"으이.. 그라제.. 고구마 맛나제..."


"네! 근데 바람이 휙 불어서 불꽃놀이처럼..."


그날따라 동네에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 혼자 나무작대기를 줏어서는

예전에 논에 보면 지푸라기를 사람 모양처럼 해서 엎어 놓은 게 있었거든?

그걸 상대로 칼싸움 연습을 한다면서 혼자 신나게 놀았던 거지.


얼마나 놀았을까? 슬슬 배고파지자

이전에 동네 형누나들이랑 논 구석에서 구워 먹은 군고구마가 생각이 났던 거야.


집으로 뛰어와 광이라고 농기구나 농산물들 조금씩 모아놓은 그런 창고 같은 곳에서

고구마와 성냥을 갖고 다시 논으로 향한 거지.


할아버지 쓰레기 태울 때 몇 번 해봤던 지라 성냥에 불을 붙이는 건 어렵지 않았어.

다 말라버린 지푸라기에 불을 붙이는 것도 어렵진 않았지.


"아뜨거!"


다만 불이 너무 빨리 붙고 너무 빨리 타버려 감당이 안 됐던 거야.

바람까지 불어버리니 불씨가 있는 지푸라기들이 여기저기 날라다니고.

그러다 옮겨 붙고 이게 반복이 돼버린 거지.


그때 아빠는 뭐 하고 있었냐고?


"우아~ 이쁘다~ 불꽃놀이 같아~"


타들어가는 아마겟돈의 한 장면 같은 논 한가운데에서

웰컴투 동막골을 찍고 있었던 거지...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는 증조할아버지와 그 옆에서 재잘거리는 아빠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어디서 논 태우나? 어디 가신데유?"


"김씨네 논이 몇 평이었던가?"


"갑자기 김씨넨 왜유?"


"으이? 아녀 가서 물어보면 되지~ 가자 도리도 가자~ "


밖으로 나가자며 아빠를 들어 올리는 할아버지의 등을 할머니는 살짝 터지 하셨지.


"밥때 다돼서 애달고 어딜 간담?"


"있어봐 김씨네 가서 욕먹고 와야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아빠를 가리키며


"그럼 도리는?"


"간 김에 이 놈 새끼 손목쟁이도 같이 분지르고 올랑게 기다려봐 봐"


그렇게 항상 아빠의 할아버지는 아빠가 사고 치면 동네사람들에게 대신 욕을 먹고

대신 처리하면서 호시탐탐 아빠의 손목을 분지를 타이밍을 재는 그런 분이 셨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할아버지 댁에 갈 일도 줄어들고

할아버지보다는 친구들이 더 좋아 점점 연락도 뜸해지게 되더라.


그래도 아빠는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했어.


우리 장손~ 우리 장손~ 하면서 항상 이뻐해 주시고. 말로는, 표정으로는 그렇게

무섭게 대하면서도 평소에는 내가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무심하게 툭툭 챙겨주시는 뭐랄까?


요즘말로 츤데레 같은 분이랄까?


오늘 감자밭을 다 망가뜨렸다고 눈물 쏙 빠지게 혼나도.

자고 일어나 내일이면


"감자먹을려?"


하면서 젓가락에 감자를 꽂아 껍질을 벗겨 한참을 부채질하다가 주시는 그런 분 이었거든

아빤 그게 그냥 당연한 줄 알고 항상 받기만 했고 말이야.


아빠가 대학 다닐 때였어.

수업도 다 끝났겠다. 이제 어디 가서 술 먹고 노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빠의 엄마 그러니까 너희들 할머니한테 전화가온거지


"할아버지 입원하셨는데... 안 올 거지?"


"네"


항상 집안 행사 같은 거에 잘 참여하지 않았던 아빠라.

서운함에 그렇게 말씀하셨단 걸 알면서도


왜 그런 거 있잖니?

부정적으로 물으면 부정적으로 대답하고 싶어 지는 거.


"할아버지가 너 얼마나 이뻐했는데. 얼굴이라도 비추고 가지."


엄마의 조심스런, 그리고 안타까운 말투에 처음에 들었던 반항심도 살짝 누그러들었어.


"어디가 편찮으신데요?"


"어제 갑자기 편찮으시데서 왔더니 맹장이라고 하네?"


"수술은?"


"수술은 잘 끝났지."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에 아빠는


'그럼 됐지 뭐'


라는 생각을 정말 바보같이 했었나 봐.


"명절에 뵈면 되겠네~ 시험 때문에 바빠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도리야.. 도.."


맹장수술이야 엄청 흔한 거니까. 며칠만 지나도 일상생활 가능할 정도로

정말 쉬운 수술이니까. 몇 달 뒤에 명절 때 뵙고 공부하느라 바빴다고

못 와봐서 죄송했다고 웃으면서 애교 부리면 되겠지

그럼 할아버지는


"오긴 뭘 와~ 공부가 최고지 잘했어~"


라고 하실 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별거 아닌냥 넘겼던 것 같아.

한 달쯤 지났을까?

엄마한테 또 전화가 온 거야.


"아줌마 요즘 외로우신가 봐? 자꾸 남자한테 전화해?"


"... 도리야.. 이번엔 진짜 와야겠다."


평소와 같지 않은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이건 뭔가 다르다 라는 걸 감각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


"노인네야 뭐 자꾸 아프고 낫고 그러는 거지 뭐~"


"할아버지 암 이래 췌장암"


분위기를 깨고자 살짝 농담스럽게 한말뒤에 온 할아버지의 췌장암이란 소식.


근데 너무 충격이어서였을까?

그럴 리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 이었을까?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웠던 걸까?


놀랍게도 아빠는 그 말에 아무 느낌, 생각조차 들지 않았어.


"아.. 췌장암.. 몇 기..?"


"말기"


"알았어요 주말에 갈게요"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 보면 전화기도 떨구고 폭풍오열하면서 쓰러진다고 하는데

아빠는 그냥 덤덤하게 전화를 끊고 담배를 입에 물고 모니터를 응시하면서 게임을 했어


정말 그냥 드라마 한 편 본거 마냥.

내일이 아니라는 듯 말야.


"어? 우리 할아버지 얼굴이 노랗게 구워졌네?"


"고놈 새끼 말은. 아 공부는 어쩌고 뭐 한다고 왔어."


췌장암 때문인지 황달이 와서 살짝 누렇게 떠버린 눈과 얼굴을 보며

애써 농담을 던지는 아빠였지.


"아이고 할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밥이라고는 이상한 거만 줘~"


"우리 할아버지 고기 좋아하는데! 고기도 안 줘?"


"그러게 말이다 니가좀 가서 구워와라"


할아버지와 대화 중에 주위에서 삼켜대는 눈물 소리와 슬픔들에

나도 모르게 울컥울컥 하긴 했지만 애써 버텼어.


할아버지 때문에 내가 슬퍼하는 걸 알면 할아버지는 더 힘드실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도 많이 아프실 텐데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날 반겨주고 있잖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고기는 지푸라기에 구어야 제맛인데 그죠?"


"지푸라기는 고구마지"


"어? 기억하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잊나 이 녀석아"


어렸을 때 애기, 학교 생활 애기등 그동안 자주 뵙지 못했던 만큼 하지 못했던 많이 묵혀놓았던 얘기들 까지

탈탈 털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어느새 창밖에 어둠이 깔려있더라고.


"병원 뭐 좋은데라고 이렇게 오래 있어? 들어가 으이? 아 들어들 가라니까?"


"아~ 알았어요. 할아버지 빨리 나으셔요~ 건강해지시면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아빠의 말에는 신경도 안 쓰고 옆에 있던 가습기를 흔들어대던 할어버지는


"야 도리야. 이거 만졌나? 갑자기 이게 뭐가 안되네?"


"응? 아까 물만 채웠는데요?"


"어휴 저놈 새끼 손에만 들어가면 멀정한 게 없어. 저놈의 손목쟁이를 그냥.."


역정을 내는 할어버지를 보고 웃으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헤헤 또 올게요"


"오지마러!"


그렇게 한참을 못 간 것 같아.

아니 안 갔다고 하는 게 맞겠지.

시간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항상 그런 핑계로 미뤘지만


사실


시간이 많았어. 방학도 있었고, 휴일도 있었고.

단순히 할아버지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었던 것 뿐 이더라고

친구들 만나고, 술 마시고, 여행 가고, 연애할 시간은 그렇게 많았으면서 말이지.

그렇게 아빠는 아빠를 그렇게 이뻐하고 헌신적이었던


할아버지를 몇 년 동안 병실에 방치하고 말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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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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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장소로 옮기는 차 안에서 벨소리가 울렸어.

발신자를 보니 할머니였지.

그런 날 있잖아. 너무 지쳐서 통화하기조차 꺼려지는 그런 날

전화기를 뒤집어 벨소리를 무음으로 만들고는 다시 운전을 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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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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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 있잖아. 별거 아닌 평소와 같은 현상에도 다르게 느껴지는 날.

두 번째 전화에 뭔가 가슴이 시리고 답답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하지만 역시 받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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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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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전화를 받지 않자 날아온 문자메시지.

어느덧 회식장소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담배를 입에 문체

열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담배 나쁘다니까!"


갑자기 나타난 노란머리가 또 내담배를 뺏으려고 하는 거야.

뒤로 몸을 휙 젖혀 피하고는

'이번엔 안 뺏겼지?'

라는 승자의 여유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문자를 열었지.


그때 느꼈던 것 같아. 전원공급이 끊긴 듯 모든 사고가 정지되고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에 물고 잇던 담배를 바닥에 떨구는 날 바라보던 노란 머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날 쳐다보며


"왜? 뭔데? 들어가쟈"


"아니.. 나 다른데 좀 가야 될 것 같아."


아빠의 말에 노란 머리는 아빠의 핸드폰을 슥 훔쳐보면서 말을 이었어.


"어디? 사무실? 뭐 놓고왔.. 헉.. 야..."


"할아버지.. 나.. 우리 할아버지한테 가야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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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야 왜 전화 안되니?

할아버지 천국 가셨다.

장손이 얼른 와서 배웅해드려야지.

할아버지랑 못다 한 애기도 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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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느낌, 좋지 않은 상황. 이런 것들은 특징이 있어.

항상 우르르 몰려온다는 거지.


그때 아빠는 알고있엇던 것일지도 몰라.

그것들이 가까이 왔음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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