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나쁘다니까!"
갑자기 나타난 노란 머리가 또 내 담배를 뺏으려는 거야.
뒤로 몸을 홱 젖혀 피하면서 문자를 열었지.
그 순간 느꼈던 것 같아.
전원 공급이 끊긴 듯, 모든 사고가 정지되고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느낌.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걸 본 노란 머리가 놀란 듯 나를 바라봤어.
"왜? 뭔데? 들어가자."
"아니… 나, 다른 데 좀 가야 될 것 같아."
내 말에 노란 머리는 핸드폰을 슬쩍 훔쳐보며 말을 이었지.
"어디? 사무실? 뭐 놓고 왔… 헉… 야…"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한테 가야 될 것 같아…"
그 말을 남기고,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서서히,
그러나 점점 빠르게 회식장소에서 빠져나왔어.
들어오던 사람들과 부딪히며 나가는 동안
등 뒤로 목소리들이 쏟아졌지.
"어? 도리 어디 가?"
"야, 조심 좀 해라!"
"쟤 표정이 왜 저래?"
수많은 질문들과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어.
"운전할 수 있겠어?"
키를 계속 돌리고 있는 나를 보며,
노란 머리가 조심스럽게 물었어.
"아니… 도와줘."
장례식장으로 가던 길
미칠듯한 슬픔? 괴로움?
그리움?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
처음에 차에 오르고 5분?
그 정도만 정신이 없었고
그 이후에는 편해진 것 같아.
이상하게도 말이지.
"야~ 그래도 나 같은 친구가 어딨냐? 바로 이렇게 운전도 해주고"
"어 그러니까..."
"너무 고마워하진 말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 알지?"
"어 근데.. 정현아?"
"안전하게~ 모셔드리겠습니다. 네비도 다 찍었다고. 힘들 텐데 좀 자"
"아니..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아 너 좀 내려라 시끄럽다."
"...?"
애는 뭐지?라는 표정을 짓는 노랑머리. 아니 정현이를 더 늦지 않게 지하철역 근처에 내려주고
운전대를 잡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어.
정현이?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어느덧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인파 속에 활짝 웃은 채 손님들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빠. 그러니까 너희들 할아버지가 보이더라.
그리고 저기 구석에 아빠의 사촌형들, 사촌 누나들, 동생들..
뭐가 그렇게 신난 지. 장례식이라기보다 그냥 명절 같은 느낌이었어.
"도리 이 새끼 형보다 늦게 오고. 밥먹엇냐? 여기 육개장 뒤진다 진짜"
아빠랑 6살차이 나는 사촌형 영우 형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잘 붙어 다니면서 잘 놀았는데.
아빠 군복학 이후로는 연락을 잘 안 해서 서서히 멀어진 그런 형이지.
"연예인 됐다며?"
"응? 연예인?"
"그래서 연락을 못한다며? 이 새끼 건방지게 형한테 연락을 안 해? 그렇게 바빠?"
할아버지 빈소는 지하에 차려졌어.
영우형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지하로 길을 안내하면서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에서였는지 말이 끊기지 않았어.
"아! 할아버지부터 봐야지."
영우형은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더니 안쓰런 표정을 짓더라고.
"에휴.. 너무 울진 마라"
영우형을 뒤로하고 영정사진 앞에 섰을 때.
할아버지의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을 때.
그거 아니?
아빤 사이코패스처럼 웃고 잇었어.
아무 느낌이 없었거든.
그렇다고 박장대소하면서 웃는 게 아니라.
음.. 굳이 생각한다면 그 정도 느낌이었을 거야..
'할아버지? 이거 장난치는 거지? 몰래카메라잖아? 내가 속을 것 같아?'
어디선가 툴툴거리면서 걸어 나오시면서
"뭘 또 왔어?"
"뭐 사람이 죽는 게 당연한걸. 대단한 걸 했다고 우르르 몰려들 왔어?"
"그래서 도리야. 밥은 먹었냐고"
라고 하실 것 같아서. 절도 못하고 할아버지 사진만 그렇게 5분, 10분,
20분 쳐다보면서 얼음 상태로 굳어져있었어. 얼른 와서 땡! 해주라고..
"땡"
놀람에 소리 나는 곳을 쳐다봤을 때. 그곳엔 아빠동생 그러니까 니들 고모가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시꺼멓게 변해 판다처럼 변해 보는 사람이 안쓰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오히려 아빠를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더라고
"땡?"
"응? 땡은 무슨! 떽! 할아버지랑 눈싸움하는 거 아냐"
"아.. 그렇지 떽.."
애써 웃는 표정은 짓고 잇는데 눈가는 축축해서 그 와중에 신경 쓰인 거지.
살짝 지우려고 눈가를 만졌는데 더 번지기만 하고
'아.. 이게 안되네..'
눈물을 한번 소매로 훔친 고모는 무슨 비운의 여주인공 마냥 약간은 오버스럽게
한숨을 내쉬더라
"후아~ 밥 안 먹었지? 여기 홍어무침 맛있더라. 내가 한 접시 같은 두 접시 갖다 줄게. 참 언니는?"
"임신했잖아. 처가 가있으라고 해야지."
"그렇네 알았어 가서 앉아있어"
웃겼어.
티비 드라마 보는 것 같아서.
그냥 다들 연기를 하고 잇는 것 같아서.
그렇게 자리를 잡고 식탁에 앉아있는데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너희들 할아버지가 오시더라?
"장손이 제일 늦어 아주 그냥. 너 네가 상주니까 빈소 계속 지켜야 된다?"
"아버지는요?"
"난 손님 받아야지"
"술도 드시고?"
"개놈새끼가 그냥"
평상시면 막 뭐라고 했을 성격이다만 그날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것 같아.
고모가 밥과 국, 반찬을 갖고 오고 한술 떴을 때 멀리서 영우 형이 뛰어오더라.
"이제 밥 먹는구먼. 천천히 먹어. 야! 술도 한잔해야지"
술도 한잔하잔 말고 함께 이미 술병 뚜껑을 돌리고 있는 영우형이었어.
-꼴꼴 꼴-
"장례식장에선 짠한 거 아니니까 알아서 먹자"
-크으-
한잔을 넘겼을 때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크으'란 소리에 뭔가 민망하다가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한 게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런 내가 이해가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어떤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던 건지.
"왜? 뭐가 뭔지 모르겠지? 다 꿈같고?"
"어! 딱 그 거야 형. 지금 내가 그런 거 같아."
내 반응에 영우형은 술을 한잔 따라 휙 넘기곤
"할아버지가 너 참 이뻐했는데..."
"그러게? 이제 이 집구석에 나 이뻐할 사람 하나도 없네?"
"주량이 2잔이냐?"
- 푸흡 -
이거 위험한데?라는 표정을 지으며 술병을 살짝 치우려는 듯한 약간은 코믹한 모습에
아빠의 웃음은 터져버렸어.
"오~ 술 좀 마시나 본데?"
"나 우리과 탑이었어 이거 왜 이래?"
"좋아 그럼 오늘 도리랑 찐하게 한잔 해볼까?"
"아.. 나 상주라 빈소 지켜야 돼"
"니가 왜 상.. 아..."
나의 아빠를 두고 내가 왜 상주냐며 고개를 획돌린 영우 형의 눈엔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웃고 떠드는 아빠가 보인 거야.
"괜찮아! 야 너 술 깨면서 술먹어봣냐?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게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를 잡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그리고 어깨로 살짝 아빠의 위치를 가리키며
"외삼촌.. 울고 계신 거다.. 많이 미워하거나 서운해하지 마라.."
그리고는 사라지더니 소주를 10병 정도 가지고 다시 나타났어.
술 깨면서 술 먹는 거? 그거 별거 아니었어.
한잔을 오래 마시면 되는 거더라고..
한잔 마시고 그 술이 꺨때쯤 술 한잔 더 마시고...
그래도 그 덕분에 그렇게 첫날을 버텼던 것 같아.
"유가족분들. 13시 00분 입관입니다. 준비 부탁드려요"
밤새 술먹엇지, 잠은 못 잣지, 씻지도 못해 몸은 찝찝하지.
입관에 대해 안내하는 직원의 말은 귀에 잘 들리지 않고 하품만 하고 있을 뿐이었지.
"도리야 입관 몇 시라냐?"
그때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던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묻는 거야.
"열.. 네시?"
시간을 제대로 듣지 못한 아빠는 들렸던 대로 대충, 정확하지 않은 시간을 얘기하고 있었어.
'발음이 혓발음이엇는데..? 아 몰라 맞겠지. 늦으면.. 데리러 오겠지..'
"삼촌 입관 한시야!"
멀리서 들려오는 사촌 누나의 목소리. 순간 정적과 아빠의 노려보는 눈빛.
아.. 아침에 빈소가 하나 빠지더니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라고 느껴질 때쯤
"그거 하나 똑똑하게 못 알아보고..."
의외로 반응이 괜찮았어.
평소 같으면 욕하고 두드려 맞고 그랬을 텐데 말이야.
빈소 앞에 앉아 손님들께 절하고, 손님들 없으면 그냥 멍하니 할아버지 사진 보고
슬프거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멍하지 모고 잇었던 건 아냐.
그냥 할 게 없으니까...
손님들 와서 절할 때 외엔 할 게 없으니까...
내 애기를 궁금해하거나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입관 들어가겠습니다."
입관. 고인을 관으로 옮기는 행사.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행사.
많이 운데.
마지막 모습이라. 눈에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그렇게 바라보고, 울고, 사랑했노라고 얘기하고...
입관식을 하는 곳으로 처음 들어갈 때
아빠는 중얼거렸어.
'춥네? 할어버지 추운 거 싫어하는데'
그냥 거기 있다고 생각한 걸까? 돌아가신 게 아니라?
장손, 장남이 도와달란 소리에.
아빠하고 내가 먼저 들어갔어.
하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이쁘게 주무시고 계시더라.
이불을 세 번 접어 얼굴을 비췄을 때.
그때였던 것 같아.
2일 동안 묵혀왔던 눈물이, 떨림이, 먹먹함이, 슬픔이 한 번에 몰려왔어.
아빠는 말이야, 아무 느낌이 없었던 게 아니었어.
슬프지 않았던 게 아니었어.
단지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접은 이불속 할어버지 얼굴이 비췄을 때.
아빠의 얼굴은 그 차디찬 실내온도 속에서도 마치 세수한 것처럼
눈물을 떨구고 있었어.
정말 평소와 같은 모습인데.
나랑 장난치다가 조용해져서 쳐다보면 주무시고 계시던 그냥 그 모습인데.
앞으로 더는 보지 못 할 모습이라서.
다른 표정은 더 이상 짓지 못할 표정이라서.
아무 말도 듣지 못할 모습이라서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 죄송하다, 아프다.
어떤 말을 해도 듣지 못할, 하지 못할 모습이라서.
이게 정말 끝이라서.
기침하듯이 오열하며, 발작하며 울었던 것 같아.
그때 이후로 아빠는 얘기하지.
장례식의 클라이맥스는 입관이라고.
준비 안 하고 들어가면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고만 나오니 준비하라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청각이 제일 오래 살아남는다더라..
그 상황에서 아빠는 울기만 했던 거야..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뭘지 한 번도 생각 안 하고.
그냥 가는 길 힘들게 가시라고, 울음길만 뿌려드린 거지..
그 이후로는 똑같았어.
절하고 향 피우고, 아.. 손님은 2일째 때 더 많이 오더라.
그렇게 모든 장례가 끝나고 아빠는 회사로 돌아왔지.
회사사람들? 한 명도 안 왔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고, 친한 사람도 많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지.
속상하거나 그런 건 없었어. 솔직히 경황이 없어서
신경도 안 쓰였거든.
그 후로 몇 주가 지낫을까?
할아버지댁으로 향했어.
돌아가신 지 어느 정도 됐으니 무슨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던데?
오랜만에 들어선 마을
똑같은 골목
그리고
"할아버지 저 왔어요"
늘 같았던 인사.
"거봐 도리도 저렇게 인사하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빠의 고모가 앞치마에 손을 탁탁 치며 웃으면서 얘기하더라고
"뭐.. 뭐가?"
"아이고 힘들다"
소파에 몸을 던지듯이 앉으면서 뭐가 그리 재밌는지 계속 웃는 표정을 짓던 고모는
"지금 여기 오는 사람들마다 아빠~ , 아빠~ 저왓어요~ , 할어버지~ 이러고 들어오는 거 알아?"
"그게 좋은 건가..."
뭐 맛있는 거라도 잇나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방에서 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빠의 아빠가 걸어 나오더라.
"안.. 먹었어요..."
"제사를 지낸 담에 처먹더라도 먹어야지.. 아직 건드리기 전이긴 한가 보네"
성질을 확내고서는 음식을 살펴보더니
"좋은 거 래더라. 좋은 데 가시거나 계속 우리 옆에 있으신 거라고"
"네?"
어디서 주워들은 억지 위로 같은 말이겠지만
아빠는 아직 이 말을 좋아해.
돌아가신 분이 아직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분이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거잖아?
하지만 더 확실한 건 그다음이었어.
"아니면 너 손목 아직 못 부셔서 미련이 남으셔서 못 가시나 보다"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잠시나마 해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