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나 하나피자?"
약 일주일 만에 출근임에도 마치 오랜만에 출근한 것처럼
그동안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월요일 아침이었어.
아빠를 발견하자마자 어깨를 툭치며 담배 한 대 피자고
얘길 건네는 경태형이었지.
흡연실에 들어가자 형은 아빠에게 담배를 건네며 물었어.
"잘 보내드리고 왔냐?"
"네 뭐.."
"에휴.. 큰일 치렀다. 형이갔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못 갔다야"
"괜찮아요"
그냥 미안해서라고 생각한 아빠는 그냥 멋쩍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지. 솔직히 올 거라고 기대도 안 했었고,
온다 해도 뭐 딱히 좋을 것도 없었고 말야.
그런 아빠의 반응을 뒤로하고 경태형은 말없이 담배를 피우더니만
팔꿈치로 아빠를 툭치며 웃으며 다시 말을 걸더라고
"이 새끼 뻥치네~라고 생각했지? 진짜야 인마"
"헤헤 알아요 마음만이라도 고마워요."
"니가 알긴 뭘 알아 인마"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아빠를 흘겨보던 경태형은
말을 이었어.
"그럼 인마 너 형 언제 결혼하는지 알아?"
"아.. 형결.. 에? 형 결혼해요?"
"그래 인마 그래서 못 간 거라니까. 이 새끼 안 믿어."
뻔한 핑계를 대겠지란 생각에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아빠는
경태형 입에서 결혼이란 애기가 나오자 깜짝 놀랐지.
"아~ 그럼 당연히 못 오죠. 언제 하는데요?"
"다음 달에"
"에? 근데 왜 애기안했어요?"
"너한테만 안 했어요."
경태형 대리 달았다고 회식했던 그날.
단순히 경태형이 기분이 좋아서. 같이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회식을 제안했던 게 아니었어.
모두들 모여있는 그 자리를 빌어서 자연스럽게 청첩장을 돌리려 했던 거지.
술값이야 하늘에서 뚝떨어진 포상금도 있겠다. 정말 좋은 기회였던 거야.
"와... 영업 잘한다 진짜..."
"사람이 머리를 잘 써야 하는 거지"
"아니 그래서 지금 며칠 전에 할아버지 보내고 온 나한테 영업하는 거예요?
부서 옮길 생각 없어요?"
"아녀~ 이건 영업이 아니라 너 혼자만 모르면 소외감 들까 봐 알려주는 거지"
어느새 아빠 손에 들려있는 청첩장과 뿌연 연기 그날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어.
"경태야!"
그렇게 담배를 피고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영업부 마케팅 팀장님이 경태형을 애타게 부르며 달려오는 거야.
"아.. 힘들 것 같다니까 왜 이러세요.."
"야~ 너 아니면 누가 하냐? 아이템 확실하다니까?"
"아니 팀장님 저 몇 주 뒤면 결혼해요. 준비할 것도 많은데 프로젝트에 또 어떻게 참여해요.
나 야근하다가 장가 못 가면 저 데리고 살 거예요?"
알고 보니 마케팅 팀장님이 대박거리 아이템을 물어왔는데 이게 만들어낼 개발자가 없는 거야.
이전 프로젝트로도 인정받고 회사 내 자칭, 타칭 최고의 개발자라고 부름 받는 경태형에게
협업 요청을 하는데 경태형도 곧 결혼해야 하고 하니까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지.
팀장님 경태형 할 것 없이 지금 완전히 난감 해져버린 상황인 거야.
"야 그럼 추천이라도 좀 해봐."
우리 팀을 한번 훑어보는 경태형을 보면서 아빠가 했던 생각이 뭔지 아니?
'하아.. 그래도 야근 많이 하면 월급은 많이 나오겠네.. 내가 하고 싶다...'
- 딩동 -
주머니에 핸드폰에서 문자 알람이 울렸고.
어차피 아빠는 상관없는 상황이라 핸드폰을 보면서 내 자리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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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월세 납입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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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받아서 밀린 거 내고, 그달꺼 내고, 내고내고 내도내도 계속 돌아오는 월세 납입일이라는 굴레.
월세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핸드폰을 닫으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어.
'하아...' / "도리 잘합니다~"
내 한숨과 거의 동시에 경태형이 아빠를 가리키며 팀장님께 추천하더라고
"재 벌써부터 한숨 쉬는데? 재 아직 신입 아냐?"
"아우 재 우리 팀 미래 에이스예요. 한번 시켜봐요 겁나 잘해"
경태형의 말을 듣고 약간의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던 팀장은
"너.. 계산기는 만들 줄 아냐...?"
정말 기본적인 작업조차 할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의심을 하고 잇었어.
"네! 가능합니다!"
"... 경태야! 진짜 이 방법밖에 없는 거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경태형에게 다시 한번 매달리던 팀장님은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잘할 수 있어? 이거 잘못되면 둘 다 죽는 거야?"
"네! 잘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공부해서라도 해내겠습니다!"
그제서야 팀장님은 의심의 눈초리를 풀고 살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어.
"그 말은 좋네. 잘해보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어.
이 프로젝트는 아빠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킴과 동시에 마치 파도처럼
아빠의 인생을 흔드는 중요한 첫 번째 전환점이 되게 된단다.
"도리 아저씨~ 오늘은 회사에서 어땠어?"
퇴근 후 저녁시간 살짝 졸아든 김치찌개와 계란프라이 그리고 김. 그리 훌륭하진 않지만
함께여서 행복하고 아늑한 저녁시간.
엄마가 아빠에게 물어왔어.
"뭐 똑같지.."
"그래두~ 장례식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바로 출근하는 거 보니까 안쓰럽더라."
"바로는 무슨 그래도 2일 쉬었잖아."
밥을 입으로 먹는 건지 아빠를 눈으로 먹는 건지. 아빠에게 눈을 못 떼는 엄마.
임신 때문에 장례식에 오지 못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빠의 많은 추억,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엄마는, 아빠혼자 얼마나 아프고 슬퍼할까 싶어.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하더라고
"할아버지 하고는 많은 얘기 나눴어? 잘 보내드린 거지?"
"아니..."
엄마의 말에 가슴에서 뭔가가 훅하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면서, 답답한 것 같으면서 그런 거 있잖아
목 근처가 간질간질하면서 누군가 살짝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그래서 억지로 붙잡고 있는 그런 느낌..
"도리아저씨..."
"아무 애기도 못했어.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괜찮아 할아버지는 다 알고 가셨을 거야."
"나떄문에 응?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드셨을 텐데.. 사고 치는 손주새끼 걱정 때문에
눈은 어떻게 감으셨데? xx손모가지도 분지르고 가셨어야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 문자에도, 장례식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할아버지 댁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터지지 않았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서러움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었어.
엄마는 그런 아빠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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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뭐 좋은데라고 이렇게 오래 있어? 들어가 으이? 아 들 들어가라니까?"
"아~ 알았어요. 할아버지 빨리 나으셔요~ 건강해지시면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아빠의 말에는 신경도 안 쓰고 옆에 있던 가습기를 흔들어대던 할아버지는
"야 도리야. 이거 만졌나? 갑자기 이게 뭐가 안되네?"
"응? 아까 물만 채웠는데요?"
"어휴 저놈 새끼 손에만 들어가면 멀정한게 없어. 저놈의 손목쟁이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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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원하면 맛있는 거 사드린다고 했는데. 그거에 대한 대답은 안 하셨어.
대답을 안 하신 게 아니야. 못하신 거야.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기다릴까 봐 그게 미안해서"
"도리아저씨.. 그래도 할아버지가 기특하게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너무 아파하지 않았음 좋겠어."
그 말에 아빠는 또 한 번 무너졌어.
"나는 지금처럼 당신한테 넘어지면 돼.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그런데 말야. 할아버지는 평생 아프다고 슬프다고 힘들다고 한마디도 못하고 가셨어."
이미 터져버린 눈물, 찢어지는 목소리로 쳐대는 고함덕에 점점 쉬어가는 목소리 그리고.. 그런 아빠를 도닥이고 있는 엄마...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심히 잘 가라는 말보다, 할아버지가 떠나셔서 내가 이렇게 슬프다는 하소연만
듣고 가셨단 말이야."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호흡이 조금 진정되고 들리지 않던 시곗바늘 지나가는 소리가 조금씩 선명해질 때쯤
아빠를 안고 위로하던 엄마는 그제야 아빠를 놓아주었어.
"도리아저씨 다 울었다~ 물마시자요! 물 갖다 줄게."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물을 따르고는 아빠에게 건네는 엄마였지.
"자~ 시원한 물 나왔습니다"
일부러 아빠의 기분을 풀어주려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말투로 아빠에게 물을 건네는 엄마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번 픽 웃고는 컵을 받아 원샷을 해버렸어.
속이 정말 시원한 게 마치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뭔가 촉촉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아.
"아휴.. 주책없이 이게 뭐니.. 미안"
"놉! 뭐가 미안해? 우린 가족인데... 또 담배피게?"
일어나면서 주섬주섬 담배를 챙기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상황이 그래서였을까? 평소처럼 막 뭐라 하진 않았어.
보일러실로 들어가다가 문득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엄마에게 얘기했지.
"참. 나 프로젝트 맞게됏다?"
"오! 능력자 개도리! 무슨 프로젝트?"
추켜세워주는 엄마의 말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다니 정말 그때 아빠도
답이 없긴 해 그치?
"회사에서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일단 개발자로는 나 혼자 참여되는 것 같아."
"오!... 호.. 혼자?"
혼자라는 말에 잠깐 멍해진 표정을 짓는 엄마를 뒤로하고 보일러실로 들어갔어.
보일러실 밖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지.
'이번에 잘해서 나도 진급도 하고 연봉도 올리고 잘해보자'
그때 군데군데 곰팡이가 살짝씩 묻어있는 보일러실 창문 너머로 높게 뻗은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어.
까만 밤에 형형색색으로 이쁘게 빛나고 있는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
'내가 꼭 저런데 살고 만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것 같아? 내가 질 것 같냐고!'
마치 청춘만화 주인공과 같은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오그라들만한 그런 다짐들과 함께
담배는 타들어가고 있었어.
보일러실에서 나왔을 때.
엄마는 아빠 쪽을 보며 뭔가 말을 할까 말까 하며 안절부절해 보이더라고.
"응? 무슨 할 말 있어?"
"어.. 음.. 그 프로젝트.. 야근 없이도 할 수 있는 거야..?"
"아마.. 안될걸? 자세히 확인은 안 해봤지만 기간도 짧지 않고 뭔가 좀 복잡해 보이던데..
더군다나 난 아직 신입이라 기술력도 달리고 말이야.."
아빠말에 눈이 살짝 흔들리는 엄마.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마지막 내뱉은 말은 우리의 앞날을 바꾸는데
충분한 씨앗이 됐어.
"나 몇 달 뒤면 출산하는데.. 그럼 나랑 다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