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두 그릇

by 도리

"야.. 뭐하냐.. 인간적으로 씻는 건 집에서 하자.."


정현이와의 술자리 이후 차에서 자고 바로 출근하는 바람에

씻지도 못한 아빠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화장실로 직행했어.


"도리야.. 집에 수도 끊겼냐? 니가 웬일로 일찍 출근했나 했다."

"헤헤 시계를 잘못 봐서요.. 지각인 줄 알고 씻지도 않고 바로 출근했어요."


수건이 없어 핸드타월을 왕창 뜯어 머리와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화장실 밖을 나섰어.


'아.. 진짜 노숙자가 따로 없네...'


그때 속이 불편한지 계속 헛구역질을 하면서 걸어오는 정현이가 보이더라고


"우욱.. 야.. 괜찮..?"


툭치면 쓰러질 것처럼 힘없이 걸어오던 정현이는 갑자기


"어? 너 몰골이 왜 그래? 집에 가다가 얻어맞았어?

벌통이라도 건든 거야?"


초여름에 강가, 그것도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 포장마차촌에서

창문을 연 상태로 잔 덕에 울긋불긋하게 모기에 물린 자국으로 가득한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놀라서 묻더라.


"어? 더워서 창문 좀 열고 잤더니..."


아빠의 변명에 정현이는 여전히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너.. 생각보다 용감하구나.. 이 날씨에 우우욱!"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막고는 화장실로 뛰어가는 정현이를 보면서


'어제 그렇게 많이 먹었나?'


라고 생각하며 흡연실로 발길을 옮겼어.

한 반쯤 피었을까?

흡연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왠 머리만 하나 쑥 들어오는 거지.

맞아 정현이 머리였어.

두리번거리던 정현이는 나를 발견하더니


"야... 이따 점심때 해장하러 가자.. 어우 죽겠네"


숙취가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기에

해장이란 말이 반가웠지만. 어제 술도 정현이가 샀는데 또 얻어먹기엔

미안하더라고. 그리고 솔직히 정현이가 사준단 말도 안 했고 말야.


각자 낸다 하더라도. 회사에서 밥을 공짜로 주는데 굳이 돈 내고 먹기에는

돈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아까운 그런 상황이었어.


"나 점심때 고객전화 예약이 있어서..."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정현이는 어쩐지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어.


"그래? 그럼 점심때 회의실에서 자야겠다. 수고해~"


정현이가 떠나고 왠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지.


"야 폐 썩는다. 뭐 아침부터 연타야?"


반대편에 앉아있던 무리 중에 경태형이 말을 걸었어.


'한 개나 두 개나.. 폐는 무슨, 총알 한 대 맞았냐 두대 맞았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속으로 생각했을 뿐인데 얼굴에 티가 났나 봐


"야 욕하는 거 다 들린다."


경태형 말에 살짝 뜨끔해서 놀라는 표정을 짓자 경태형은 실눈을 뜨며 다시 말했어.


"이새끼.. 진짜 욕했나 보네. 야 너 정현이랑 친하냐?

"네 뭐 나이도 같고, 친구 하기로 했어요"


"요즘 잘 붙어 다니는 것 같던데 어제 술 마셨어?"

"네"


"둘이? 단둘이?"

"네... 근데 왜요?"


"허허.. 그러지 말아.. 사람들이 안 좋게 봐. 사회에서 소문 이라는게 무섭거든"


친구끼리 술을 먹던지 말던지 그게 왜 안 좋게 볼만한 일인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경태형의 말이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빠였지.

그때 김과장이 입에 담배를 문체로 핸드폰게임을 하면서 흡연실로 들어오는 거야.


"응? 술? 나도."

"네?"


"뭐야? 술 먹는다며? 나도 데려가라고"


들어오면서 들은 건지 농담처럼 말을 건네고는 주머니를 뒤적뒤적거리더니

경태형을 빤히 쳐다보는 거지


"아~ 형 도리도 있는데.."


약간 짜증 섞인 말투와는 달리 김 과장이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는 경태형이었어.

힘껏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아빠를 쳐다보며 묻더라고


"그래서 누구랑 마시는데? 경태랑?"

"아.. 그게.."


"어제 정현이랑 둘이 마셨다던데?"


내 말을 자르며 얘기하는 경태형 말에 약간 의아한 듯 눈꼬리를 올리는 김 과장.

이내 다시 특유의 귀찮음과 무관심이 묻어있는 무표정으로 바뀌고는 게임에 열을 올리며 물었어.


"그래? 나 빼고 먹으니까 맛있냐?"

"아.. 부르려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주무실 것 같아서..."


아빠의 말에 말도 안 되는 거짓말 하지 말란 식으로 피식 웃고는


"크큭 너 그러다 와이프한테 혼난다.

왜 그러고 있어 편하게 펴 술도 나 없이 편하게 먹는데 뭘"


직급 차이때문일까? 단순히 김 과장이 불편한거 였을까?

담배를 검지와 중지사이에 낀 채 열중 쉬어 자세로 살짝 경직돼서

대화를 하고 있는 아빠에게 편히 피라고 말하는 김과장이었지.


아빠는 살짝 뒤를 돌아 담배를 마저 피기 시작했어.

어른과 부득이하게 맞담배를 피게 될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예의라고 들은 적이 있거든.


'후아....'


담배연기가 벽에 부딪혀 흩어지고 그 냄새가 살짝 무거워지자. 어젯밤 일이 생각이 났어.




"야~ 내가 그래도 학교 다닐 땐 잘 나갔다?

우리 아버지가 어? 우리나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역에서 이름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 지금도 잘 나가잖아? 입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단독 프로젝트까지 맡고"


정현이의 격려와 위로에 모르면 말하지 말란 식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 아빠였지.


"하씨.. 그러면 뭐하냐 돈이 없는데 어? 돈 없어서 니가 마누라 유배 보내봤어?"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


"하 이새끼.. 속 편한 소리 하네? 응? 이모! 여기 한병 더 주세요"


술이 어느 정도 오르자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해진 우리는. 아니 아빠는

정현이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얼마나 아픈지를

토해내고 있었어. 아직 버리지 못한 돈걱정 없이 행복했던 지난날들을 들먹이며 말이지.


"니가 x발 가난을 알아?"


비어있는 아빠의 술잔에 술을 채워 넣으려 병을 들며 내뱉자. 정현이가 먼저 소주병을

쥐고는 아빠에게 따라주며 말했어.


"알지"


쓸쓸해 보이는 정현이의 말투에 살짝 당황했지만 술기운 때문일까? 단순히 위로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알긴 니가 뭘 알아"


약간은 무시하는 듯 한 말투로 정현이에게 쏘아 붙히자 정현이는 자기 잔에 스스로

소주를 따라서는 휙넘기며 얘기했어.


"크.. 알지. 그게 얼마나 힘들고, 비참하고,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드는지"

"너도 거지냐?"


술은 참 재밌어. 평소라면 할 엄두도 못 낼 말도 막 내뱉게 만드니까 말이야.

저 때 아빠의 말은 참.. 그래 너무 경우 없고 예의 없고 생각마저 없던 질문이었어.

아빠의 말에 정현이는 다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어.


"아니? 지금은 거지까진 아닌데?"

"얼씨고.. 좋겠다야."


"너 나 고퇴인건 알아?"

"엥? 아... 그래서 머리색이... 너 사고 치고 퇴학 맞았냐?

뭐 일진 그런 거야?"


"... 술이나 받아"


정현이의 씁쓸한 반응에 아빠는 뭔가 잘못됐다라는 걸 직감으로 느꼈어.

다시 자기 잔에 술을 따르려는 정현이를 막고 소주병을 건네받아 정현이에게

따라줬지.


"아.. 미안. 술 먹으니까 감정도 격해지고, 너무 편하게 생각했나 보다."

"친구끼리 뭐가~ 편하면 좋지!"


"근데.. 지금은 아니라면 전엔 거지였어?"

"야이씨! 이 아저씨가 자꾸 선 넘네! 짠해 짠~ 우리 인생이 너무 짠하고 짠내 나서

짠을 안 할 수가 없다. 짠!"


술 넘기는 소리와 '크~'하며 시원하게 내뱉는 소리가 포차를 가득 메웠어.

잠시 머뭇하던 정현이. 그 모습은 마치 뭔가를 얘기 하고 싶어 하는데

해도 될까 말까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었어.


"근데 왜 자퇴한 건데?"


궁금하기도 했고 이야기를 더 이어가고 싶기도 했고.

소주를 따라주면서 살짝 정현이의 눈치를 보며 묻고 있었지.


"돈 때문에... 돈이 필요했거든"


소주잔을 와인잔처럼 살살 흔들며 입을 떼는 정현이.

그 모습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정현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쓸쓸함이 묻어나는 모습이었어.


그날들은 정현이의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정현이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데.

어려서부터 정현이의 집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상태였지.


아래에서 바라보면 하늘과 맞닿은 달동네

억지로 끼워 맞춰놓은 블럭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판자촌

그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집.


세게 닫으면 벽에서 가루가 후두두 떨어지는

작은 바람마저 버티기 힘든 문을 지나 널빤지를 덧대고

지푸라기 섞은 흙으로 대충 발라놓은 평수조차 나오지 않는 작은집에서

그렇게 힘들게 자라왔데.


그래도 화목한 가정을 위안 삼으며 살아가던 와중에

그마저도 세상은 못마땅했는지

아버지까지 초등학교 때 암으로 돌아가시게 된 거야.


병원비에 수술비, 그리고 빚들로 인해 집은 더더욱 어렵게 됐고.

밤낮없이 일하는 어머니의 노력만으로는 빚도 갚기 힘든 상태였던 거지.

고등학교 입학을 얼마 앞둔 정현이는 새로운 학교로 진학한다는 설레임과

기쁨에 가득 찬 또래친구와는 다르게


'이대로 계속 학교를 다녀도 되나...?'


라는 생각을 했데.

오랜 고민 끝에 어머니께 자퇴 후 돈을 벌고 싶단 얘기를 했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맞았다고 하더라.


"니가 지금 돈걱정할 때야? 열심히 공부해서 벗어나야지.

엄마 이러고 사는 게 보기 좋아 보이니? 엄마처럼 살 거야?"


하지만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데. 밉지도 않았데.

그 매 에는 어머니의 아픔, 슬픔, 미안함이 그대로 묻어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결국 자퇴를 결정하고 자퇴서를 내던날 두모녀는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라.


그 후로 인형탈알바, 식당알바, 편의점, PC방 할 것 없이 알바를 전전했고.

자는 시간을 쪼개서 수작업 부업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데.


정현이 손목 위 팔등에는 조금 깊은 화상자국이 있거든?

한 번은 삼계탕 집에서 일할때였데.


"주문하신 삼계탕 나왔습니다."


꼭 그런 사람 있잖아. 뜨거운 게 나오면 가만히 기다리면 좋은데

자꾸 움직이거나 딴짓하는 사람들.


그날 삼계탕을 건네주려던 손님이 갑자기 전화를 받으며 벌떡 일어났고

탕을 들고 있던 정현이의 팔을 친 거야.


"악!"


정현이가 들고 있던 탕은 정현이 팔에 닿으며 쏟아져버렸고

팔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데.


"아 거 조심 좀 하지. 요즘애들은 쯧."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손님은 그 말만 남기고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가버렸고.

정현이는 혹시 사장님이 보면 뭐라 할까 싶어. 아픈 것도 꾹 참고

쏟은 탕을 정리하기 시작했어.


그때 사장님이 뛰어오더니 정현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 거야


"내가 이래서 어린애들은 안 쓴다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애가 어려서"


누구도, 단 한 명의 그 누구도 정현이의 상처를 걱정하거나,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데.

하지만 정현이에게 그보다 더 신경 쓰였던 건.

이일을 계기로 잘리면 어쩌지란 생각이었던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죄송하단 말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에휴.. 너 팔은 괜찮니? 빨간데? 병원 안 가도 돼?"


그제서야 정현이의 빨갛게 부은 정현이의 팔을 발견한 사장님은

정현이에게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서도


"니가 실수한 거니까 병원비는 못 대준다? 너무 아프고

일이 안 맞으면 다른 일 찾아보던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얼른 치울게요 죄송합니다."


이일을 빌미로 자를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야.

솔직히 대우를 봐서는 그만둘만도 한데 정현이는 그럴 수 없었어.

다른 데보다 시급이 쎗거든.


그날 늦은 저녁. 퇴근한 어머니는 수포가 올라온 정현이의 팔을 보고

그대로 주저앉았어.


"너.. 팔이.."

"엄마 왔어? 밥 안 먹었지?"


"야 이년아 밥이 문제야? 너 팔이 왜 그래? 병원은?"

"어휴.. 병원비가 얼만데. 괜찮아 이거 물집 터지면 괜찮아질 거야.

봐봐 하나도 안 아파!"


"아이고... 모지란 년... 네 아빠는 이런 걸 두고 어떻게..."


정현의 팔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다시 문을 나서려고 신발을 신기 시작했어.


"엄마? 밥은?"

"밥은 이년아... 먹었어.. 밥 잘 챙겨 먹어. 엄마 대리운전 하고 올게"


그렇게 어머니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뗐고 그 뒷모습을 보며 정현이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어머니가 나가신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데.


"엄마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도 했는데..."


작은 앉은뱅이 상 앞에 주저앉아 억지로 밥을 떠서 입에 넣었는데

잘 넘어갈 리가 있니? 사레가 들려 버린 거야.


"컥.. 컥컥.."


사레 때문일까? 오늘 일 때문일까. 눈에 고인눈물은 그날일을 씻기라고 하라는 듯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데.


시간이 지나 새벽이 되었을 때 부업으로 초콜릿 포장을 하던 정현이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데.


'오늘은 좀 늦네? 나도 내일 출근하려면 자야겠지?'


그렇게 어느새 잠이 들었을까?


'아.. 아파..'


누군가 울음 참는 소리와 화상 입은 부위를 메만지는 느낌에 살짝 눈을 떴을 때

거기에는 불 꺼진 방에서 자신에게 연고를 발라주며 숨죽여 오열하는

엄마가 보이더래.


"우리 착한 딸... 엄마가... 미안해?"


그때 정현이는 다시 다짐했데.

이 지랄 맞은 가난을 꼭 이겨내겠다고.


그때가 또래친구들은 펜시점 가고, 연예인 따라다니고, 예쁜 옷 구경하러 다닐

한창 예쁠 나이 18살이었던 거야.

정현이는 그렇게 친구들보다, 학업보다, 꿈보다 돈을 선택했던 거야.

아니 어쩌면 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일지도 모르지.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됐을 때 우연한 기회로 지금 회사에 지원하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6년을 다니게 된 거고, 그동안 빚도 많이 갚아

이제 숨통은 좀 트이는 수준이라고 하더라고.


정확히 얼마 남았냐고?


"너 몰랐어? 우리나라 1급기밀인거?"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안 알려주더라 1급 기밀이라며..

오랜 시간 이 회사를 다니면서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게 되자

정현이가 제일 부러웠던 거는 직급도, 연봉도 아닌

비슷한 나이끼리 뭉쳐서 같이 떠들고 술 마시러 다니고, 같이 어울려 노는

선배들이었데


"넌 어린 게 어디껴?"

"계집애는 안 껴준다. 집에 가서 드라마나 봐"


어린 데다 여자라고 선배들이 잘 껴주지도 않았었나 봐.


"너 귀엽게 생겼다? 이름이 뭐랬지?"


그때 처음 관심을 가져준 게 사차장이었던 거야.

그 이후로 사차장 옆에 딱 붙어서 회사에서는 상사로 사적인자리에선 친한 언니로

지내오면서도 친구라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친구라는 그것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던 거야.


"아.. 그래서 걸린게 나였다?"


"음.. 걸렸다기보다 간택당했다고나 할까? 님 고양이 한번 키워보쉴?"


"아.. 내가 고양이 알러지가 있어서.."


웃으면서 잔을 내미는 정현이.

하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어. 저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와 같은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큰 슬픔과 고통을 겪어왔는지.

그리고, 정현이라는 애가 얼마나 단단한 아이인지 말이야.




분명 아침까진 괜찮았는데 11시 넘어가니까 메스껍고 숙취가 더욱 올라오는 거야.

엎드려있어 보고, 화장실에서 헛구역질도 해보고. 계속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인거지.


"너 밥 안 먹냐?"


식당으로 향하던 경태형이 책상에 축 널어져 있는 아빠를 보고 물었어.


"... 다녀오세요..."


"술을 얼마나 먹은겨. 근무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먹어야지. 그럼 쉬어"


조용한 사무실. 좀 자볼까 싶어 눈을 감는데 갑자기 문자 알림이 울렸어.


/ 도리야. 내가 짬뽕을 시켰는데. 술이 안 깨서 그런가 잘못시켰나 봐 두 개가 왔네?

지금 내가 많이 곤란한데 지원 가능하냐? /


뻔한 레퍼토리였지. 하지만 정현이의 과거도 듣고, 어젯밤일로 더 친해졌다고 생각해서일까?

그게 더 이상은 동정이나 적선 따위로 보이진 않았어.


/어딘데?/

/회의실. 짬뽕 들고 식당 가서 먹을 순 없잖아/


결국 아빠는 회의실로 향했고. 정현이랑 짬뽕으로 해장을 하기 시작했어.

매콤하고 뜨거운 국물이 속을 훑음에도 희한하게 시원한 느낌.


"하! 이 맛에 술먹지"

"넌 여자애가 무슨 아저씨 같아"


"그래? 아저씨들이랑 많이 일해서 그런가?"

"노가다도 해봤어?"


"해봤지. 내가 어떤일도 있었냐면?"


- 띵동 -


그때 갑자기 아빠 주머니 속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이 울렸어.


"아 미안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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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전기 공급 제한 안내

안녕하세요. 고객님.

고객님의 전기요금 연체로 인한 공급중지를 예고해 드렸으나,

이후에도 납부되지 않아 최종 공급 중지 되었음을 안내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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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빠가 받은 건 전기요금 연체 때문에 전기 공급제한. 쉽게 말해

전기를 끊었다는 안내문자였어.


"또왜? 너 문자보고 그 표정 지으면 괜히 내가 불안하다니까?"

"아니야.. 짬뽕 잘 먹었다..."


"야! 도리야!"


돌아서는 아빠의 뒤에서 정현이가 여러 번 아빠이름을 부르며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어. 결국 올게 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앞섰거든.

한편으로는 엄마가 없을 때 이렇게 돼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면서 말이야.


'진짜..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터덜터덜 흡연실로 향하던 아빠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정현이가 있던

회의실 쪽을 쳐다봤어.


'나도.. 언젠가 저렇게 웃을 날이 올까...?'


너무나도 간절한 희망을 품은 채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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