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by 도리

즐거운 목요일 퇴근길.


내일만 버티면 주말이라는 생각과 이번 한 주도 잘 버텼다는 생각에

들떠있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빠는 걸음이 잘 떼지지 않았어.


'전기가 끊겼으면 냉장고 음식은 어쩌지...?'


냉장고에 음식이래 봐야 집에서 얻어온 김치,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 젓갈 그리고 계란 정도였지만


냉동실 안에 먹다 남은 것들을 비롯해 이것저것 얼려놓았던 것들 때문에

걱정이 한가득 이었지.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괜히 우리 집 창문을 한번 쳐다봤어.

평소와 같이 불꺼진 상태로 조용하더라고.


우편물함에 가득 찬 우편물을 꺼내는데.


'미납통지서.. 채권추심안내문.. 하아..'


전부 돈 내라는 애기뿐이었지.


'그때 대출받고 이런 것부터 다 냈어야 했는데...'


대출금이 마치 내 돈인 것인 양 펑펑 쓰던 그때의 나를 원망해봤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지.


/철컹/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등 스위치를 눌러봤지만 역시나 켜지지 않았어.

다시 한번 어깨가 축 늘어지는 상황이었지.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서는 보일러실로 들어갔어.

담배에 불을 붙이곤 너희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지.


"오! 도리아저씨 퇴근했다!"

"응 지금 집에 들어왔지~"


"오늘도 고생했어. 저녁은?"

"이제 먹어야지 너는?"


"삼촌이 몸보신시켜 준다고 소고기 사준댔어"

"오! 소고기 좋지"


다행히도 엄마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 보내길 잘했어. 이런 상황에서 같이 있어봐야...'


한편으론 안심이 되더라구


"음.. 아저씨? 근데 왜 목소리가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목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엄마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어봤어.


"아니? 좀 피곤해서 그런가?"

"별일 없는 거지?"


"별이이야 있을게 뭐 있어? 걱정하지 마~"

"웅! 고생했어 푹 쉬어~"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어느새 다 타버린 담배를 끄고는

집안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었어.


6월 말, 해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조금은 환해지더라

제일 먼저 냉장고 앞으로 갔지.

냉장실에 있는 반찬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냄새를 맡아봤어.


'음? 아직 괜찮은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집어 먹어보니 약간 미지근해졌을 뿐

상한 것 같진 않더라고.


밖에다 두는 것보다는 그래도 냉장고 안에 두는 게 나을 것 같아

다시 집어넣어 놓고는 냉동실 손잡이를 잡았어


'후..'


심호흡과 함께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툭/


뭔가가 하나 발 앞으로 뚝 떨어졌지.


'아.. 다 녹았네...'


얼마 전에 너무 많이 끓인 김치찌개를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게 아쉬워

식혀서 비닐봉지에 넣어 얼렸던 게 떨어진 거였어.


냉동실 안?

참담했지.. 얼음, 음식물 할 것 없이 다 녹아서 물이 흐르고

냄새도 나고..


그렇게 난리가 난 냉동실 안을 보며 좌절하고 있던 아빠는

통장잔고를 한번 확인해 봤지.


'만팔천원...'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기름 넣은 지 얼마 안돼서 월급날까진 버틸 수

있는 상태였고, 어차피 혼자사니 돈은 안 쓰면 되는 상황이었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편의점으로 향했어.


'음식물 쓰레기봉지 주세요'


일단 썩어가는 냉동실 음식을 버려야 했기에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구매했어.


봉지를 받아들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려는데 편의점 냉장고에 진열된

소주가 보이는 거야.


'소주.. 저거나 마시고 잘까?'


걸음을 돌려 냉장고 앞에 서서 문을 열까 말까 여러 번 고민한 끝에

결국 문을 열어 소주를 꺼냈어.


'한병.. 두병.. 세..'


그 당시 아빠 주량은 한 병에서 두병이었지만 세병을 샀어.


맞아. 마시다 기절해서 자겠다는 의지가 포홤돼 있었지.

그렇게 소주세병과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어.


한 시간 정도 걸렸나? 냉동실 음식물 정리하고, 흘러내린 것들 닦아내고

하다 보니 어느덧 어둑어둑해지더라.


땀으로 범벅돼서 이제 좀 씻을까 싶어 보일러를 켜고

불도 켜지지 않는 욕실로 들어가 이제 씻으려고 물을 틀었는데


'앗 차거'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따듯해지지 않는 거야.

보일러를 안 틀었나 싶어 보일러를 확인했는데.


전원이 켜지지 않았어.


'아... 맞네... 이것도 전기로 돌아가는 거지...'


당연히 켜질 거라 생각하고 전원버튼을 눌렀던 보일러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던 거야.


그냥 체념한 채로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씻는데

지금 내 처지가 너무 처량하고 화가 나서 차가운 지도, 추운 지도

전혀 모르겠더라.


곧 여름인데 밤에는 해가 떨어지니 왜 그렇게 쌀쌀하던지

옷을 입고는 그 어둠 속에서 아까 사 온 한쪽 구석에 널부러져있는

까만 비늴 속 소주병을 찾았어.


아빠가 명란젓을 참 좋아하거든? 며칠 전에 아빠 동생 그러니까

너희들 고모가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오빠생각이 난다며 보내준

명란젓 그걸 안주삼아 첫 잔을 넘겼지.


젓가락으로 명란젓을 콕 찌르면 묻어 나오는 알들 있잖니?

그냥 덩어리로 먹기 너무 아까워서 젓가락으로 찔러서 맛만

느낄 정도로 그렇게 안주 삼아 몇 잔을 마시다 보니


안주가 부실해서 였을까? 너무 빨리 마셔서였을까?

한 병밖에 안 마셨는데도 취기가 올라오더라고


'흐아~ 죽겠다.'


슬슬 어지러워지자 아빠는 벽에 등을 기댔어.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들어갔어.

와이프번호, 가족들 번호, 친구들 번호...


'전화해서 뭐라 해? 잘 살고 있냐고 하면 뭐라 하냐고'


요즘 어떠냐? 잘살고 있냐? 이런 사소하고 기본적인 인사 조차에도

대답할 말이 없는 내가 너무 초라했기에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어.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두 번째 병을 깠어.


소주 한잔에 또 명란젓 한 젓갈.


두 잔쯤 더 마셨을까? 술 때문에 열도 올라오고 호흡도 가빠져서인지

좀 더운 것 같아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어.


눈을 감고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힘껏 들이 마신뒤

한숨과 함께 내뱉어 버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더라.


어딘가 바삐 걸어가는 사람, 친구랑 장난치는 사람, 편의점 앞에 모여서

술 마시는 사람, 연애 중인지 서로 끓어 안고 있는 커플.


술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나만 빼고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질투라도 느꼈던 걸까?


"X발 여기도 사람 있다!"


라고 창문밖으로 큰소리로 내뱉고 말았어.


"누구야!"

"뭐야?!"


있는 힘껏 내지른 소리와는 다르게 혹시 사람들이 나를 찾아낼까 두려워

창문 밑으로 재빨리 주저앉고 말았지.


'헤헤헤 재밌다... 하아...'


그렇게 입은 웃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지더라.

평소 같으면 옷깃으로 슥 닦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을텐데

보는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빠는 갑자기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그것을 토해내듯이 소리치며

울부짖고 있었어.

그렇다고 거창한 건 아니었어. 단 한 단어였거든


"왜!"


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왜라는 말에 답을 줄사람은 없는데

마치 따지기라도 하듯, 하소연이라도 하듯

하염없이 왜만 외치며 그렇게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렇다고 하소연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죄 없는 벽에다가 삿대질도 하고 주먹질도 하다가

이따금 가슴도 치면서도 술 취해서 왜라는 말밖에 찾질 못하면서 말야.


어느덧 두병을 다 마시고는 마지막 한 병을 깔려다가


'아.. 쉬 마려...'


술을 너무 마셨나.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는데

이게 너무 어두워서 자꾸 부딪히는 거야.


'뭐? 너도 나 무시하냐?'


부딪힐 때마다 한 번씩 쏘아대고는 화장실로 향했어.

아! 물론 벽이나 문 같은 사물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사람으로

보였던 건 아니야. 그냥 뭐랄까... 자연스럽게 나왔어 그 말들이..


전기가 끊기던 날. 아빠에게 그날의 기억은 거기까지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은 밝아 있었고.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처참하게 어질러진 방뿐이었지.


'별 지X을 다했네...'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물건들, 널브러져 있는 소주병들

분명 두 병 마신 것까진 기억나는데 언제 더 마셨는지

아님 쏟은 건지 모를 3병의 소주병과 소주인지 물인지 모를

바닥에 고여있는 투명한 액체. 그리고 방안 가득한 술냄새.


'폐인이 따로 없네... 아 머리야...'


깨질듯한 머리를 감싸며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어.

한번 해봤다고 적응이 된 건지 찬물로 샤워를 하면서도

춥다는 생각보다는 얼핏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을 때


'도리야.. 이게 진짜 뭐 하는 거냐...'


그 모습이 너무 구질구질해 보여 스스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어.


"갔다올게..."

/도리아저씨 잘 갔다 와~/


배웅해 줄 엄마가 없단 건 알지만 집을 나서면서

들을 사람 없는 집에 인사를 하곤 회사로 향했지.

그날 다행히 출근시간엔 늦지 않았어.


"이거 상태가 왜 이래? 너 어제도 술 먹었냐?"

"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한잔했어요"


전날 술을 급하게 많이 마신덕에 숙취 때문에 몸은 축 쳐지지

눈은 빨갛지 누가 봐도 과음한 사람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던 아빠에게

경태형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얘기했어.


"형들이 먹자면 맨날 빼는 놈이. 너 솔직히 말해봐 우리 싫어하지?"

"아유.. 그럴리가요"


돈이 없어서 같이 놀기 눈치 보인단 말은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내가 진짜 때려죽여도 못하겠더라.


그렇게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하는 건지 졸고 있는 건지

정신을 놓고 얼마나 있었을까?

내 책상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어.


"감사합니다. 개발1팀 도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리씨? 누가 찾는데?"


"누구요?"

"글쎄? 집이라고 하던데? 돌려줄까요?"


순간 생각했어. 집이면 핸드폰으로 전화하지 회사로 전화할 리가 없었거든.


'대출업체 아니야?'


사실그때 아빠는 이자를 못 낸 지 좀 오래된 상태라. 독촉문자와 추심전화가

계속 오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도 무시하는 상황이었거든.


"아... 아니요 출장 갔다고 해주세요"

"응? 그래도 돼요?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한숨을 팍 쉬는데 김 과장이 또 엿들었는지 아빠에게 묻는 거야


"도리? 출장 가냐? 어디로?"

"아.. 집전화인데 좀 있다가 개인폰으로 하려고"


"..."


평소라면 아빠를 계속 놀렸을 김과장이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더 이상

묻지 않았어.


'뭐지.. 이제 회사로도 전화하나... 이러다 집에도 찾아오는 거 아니야?'


숙취에, 전화 사건으로 신경도 쓰여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었더니 어느새 점심시간도 금방 지나가 버리더라.


'이제 몇 시간 뒤면 퇴근인데...'


당장 내일부터 주말인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어떻게 버티나

걱정이 한가득인데. 다른 부서 직원이 아빠를 찾는 거야.


"도리씨?"

"네 대리님"


"손님 왔어. 상담실 가봐요."

"손님이요? 누구요?"


"그걸 내가아나? 그냥 도리씨랑 상담할게 있어서 만나기로 했다는데?"


나한테 찾아올 손님이 있었나?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상담실로 들어갔는데 거기엔 건장한 체격에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앉아 있더라고


"아이고 사장님~ 반가워요"


그 사람은 날보더니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고 여전히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자.


"자 우리 근처 커피숍이라도 가서 저번에 그 계약건에 대해

마저 말씀 나눌까요?"


하며 내 어깨를 감싸며 밖으로 나가자는 제스처를 취하는 거야.


"네? 네.."


그 사람을 뒤따라 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어

거기다 계약건? 내가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계약건이

있을 리가 없잖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그 사람이 먼저 탔어.


"사장님 어서~"


내가 올라타자 엘리베이터문이 닫히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사람은

지금까지 반가운 말투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깔며 말을 하기 시작했어.


"XX대부에서 실사 방문차 나왔습니다. 전화는 왜 안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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