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라지가 왜이래? 거지야?"
토요일 오후 전기가 끊긴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자는 일뿐이라.
오후가 다돼서야 일어났어.
남은 라면이라도 있나 해서 찬장을 뒤지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여자 목소리가 나더라고.
순간 깜짝 놀라기도 하고, 혹시 엄마인가 해서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더니 그곳엔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너희들 고모 도희가 서있었어.
목요일날 먹은 술병과 쓰레기들을 치우지 않은 상태로, 전날도 소주를 먹고
잠들었기에 여기저기 널부러져져 있는 소주병과 개지 않은 이불들.
그리고 안주로 먹은 명란젓과 뚜껑이 열려있는 김치 통.
누가 봐도 거지와 다를 게 없었지.
"오빠 결혼한 게 아니고 노숙하는 중이었어?"
"너가 여긴 어쩐 일이야?"
신발을 벗고 들어온 도희는 발로 쓰레기를 슥슥 밀어 공간을 만들더니
바닥에 앉아 어깨에 맨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어.
"언니한테 얘기 못 들었어?"
"무슨 얘기
그 당시 고모는 대학교 1학년 막 입학한 신입생이었단다.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그만두신 뒤 시골로 들어가셔서 농사를 짓고 계셨었지.
기말고사가 끝나고 본가로 들어가서는 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를 하는데
당시 시골 동네 특성상 동네 사람들이 맨날 들이닥치더라는 거야.
"도리 아빠 계슈?"
"도희야 엄마는 어디 가셨니?"
"하이고~ 더우다. 도희야 물 좀 가 온나."
집중이 될만하면 누가 오고 또다시 집중하려고 하면 심부름시키고
집중이 될 리가 없었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언니 내가 어떤 일까지 있었는지 알아?"
하소연이 하고 싶어서 나한테 몇 번 전화를 했었는데
받지 않자 고모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었데.
그때 아빠는 독촉전화, 미납전화 때문에 전화를 잘 꺼내지도 않았었거든.
혹시나 아는 사람 전화를 받고 있는데 그때 다른 데서 전화 와서 내가
전화를 피하는걸 눈치채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말야.
뭐.. 그 상황에서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말이지.
그래서 다른 전화는 안 받고 엄마 전화만 받았던 것 같아.
"대박!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내가 공부하다 목말라서 거실로 갔는데 거기에 할아버지 두 분은
장기 두고 계시고 한분은 티비보고 계시고 한분은 주무시고 계시더라..."
"뭐야... 엄마랑 아빠는?"
"엄빠라도 있었으면 내가 말도 안 해. 아니 우리 집이 무슨
경로당이야? 노인정이야? 아무나 막 들어와."
그렇게 한참을 통화하던 엄마는 고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더래
"웅 맞아. 참 근데 도희야 그렇게 힘들면 방학 동안 우리 집에
와있는 건 어때? 시골보다는.. 편하고 학원도 많지 않을까?"
"에이~ 신혼집에 눈치 보이게 어떻게 그래?"
"아~ 얘기 못 들었구나. 출산할 때 거의 다 돼서 나 지금 친정에 와있어.
도리아저씨 혼자 있어서 외로울 텐데..."
"흠.. 그래?"
왜 하필 그때인지. 나조차도 한심한, 누구에게도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때. 나에게 한마디도 없이 그런 결정을 한 엄마도, 도희도
다 서운하고 미웠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한테 전화도 안 하고 그냥 오셨다?"
어느 정도 짐을 풀자 도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어.
"오빠가 전화를 받아야지... 오빠 냉장고 고장 났어?"
냉장고 문을 연 고모는 불도 들어오지 않고 냉기도 없는 냉장고를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어.
"어.. 그게.."
설마 전기가 나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봐. 단순히 냉장고가
고장 났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지 고모는 별말 없이 집을 구경하기 시작했어.
"여긴 뭐 하는데야? 아.. 보일러..! 헐... 오빠 담배펴?"
학창 시절 때 친구들과 호기심에 시작한 담배. 엄한 아버지한테
걸려서 진짜 죽도록 맞으면서 다시는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아빠가 흡연 자라는걸 가족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었거든.
보일러실을 열자 진동하는 담배 쩐내에 고모는 눈이 땡그래지며,
하지만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살짝 웃으며 아빠에게 물었어.
"어.. 그게.."
"아싸~ 엄마한테 일러야지~ 아빠한테 이를까~ 으.. 이건 또 뭐야..
오빠 화장실 어디야?"
정신없는 고모의 행보에 이젠 나도 모르겠다라고 자포자기 한상태로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켰어.
/탁!/
"응?"
/탁! 탁! 탁!/
"...."
/탁탁탁.. 타타타타타탁!/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전등스위치를 눌렀는데도 불이 들어오지 않자
고모는 마치 오락실 게임기 버튼을 누르듯이 양손으로 껐다켰다를
무한반복 하고 있었지.
"그만해라... 스위치 망가지면 물어줄 돈 없다..."
아빠를 잠깐 바라보던 고모는 집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콘센트토 꽂아보고 스위치도 눌러보고 티비도 켜보기 시작했어.
"... 정전이야?"
"아니 전기 끊겼어..."
아빠의 힘없는 말에 고모는 창문을 열며 다른데는 어떤가 고개를
돌려가며 확인하는 모습이었지.
"응? 뭐가 끊겼다고?"
"전기.."
창문밖을 바라보던 고모는 마치 망치로 머리라도 얻어맞은 듯이
넋이 나간 표정을 하며 아빠를 바라봤어.
"헐.. 우와... 님아... 이건 좀..."
"... 언니한텐 말하지 마..."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는 말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어.
고모에게 아빠는 말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항상 바쁘셔서
어렸을 때부터 밥도 해먹이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무슨 일 있으면
항상 해결해 주는, 뭐랄까? 오빠가 아니라 아빠 같은 사람이었어.
그런 아빠 같은 오빠가 이지경으로 살고 있는 걸 보니 고모도 마음이
많이 아팠나 봐.
"미쳤어! 전기세 얼마라고 그걸 못내?"
"말하자면 길어..."
"아씨 짜증나. 엄마한테 다 말할 거야!"
"너 그러면 오빠 진짜 죽어 버릴거야!"
"그게 동생한테 할 소리야? 지금?"
고모는 아빠에게 큰 목소리를 소리를 지르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어.
고모는 고모 방식대로 아빠를 위로하고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한숨을 크게 내쉬던 고모는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 막 누르기 시작했어.
"너 진짜 엄니 아버지한테 얘기하면 가만 안 있는다?"
핸드폰을 열심히 누르던 고모는 얼굴을 살짝 들어 아빠를 째려보고는
"가만 안 있으면 뭐?"
무섭게 쏘아 붙였지.
그렇게 한 1분 정도 서있었을까? 뭔가 알았다는 표정을 짓던 고모는
갑자기 아빠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라구.
어제 입은 바지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 건네 주자 고모는
"무슨 부재중이 이렇게 많아?"
부재중으로 떠있는 숫자를 보더니 한번 더 놀라더라.
아빠핸드폰을 받아 든 고모는 통화로 들어가 어떤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어.
한전이었지.
그리고는 전화를 다시 아빠에게 넘겨줬어.
"뭐해? 빨리 전화해. 요금 낼 건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 어?"
"우리 오빠 맞아?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요금... 어떻게 내냐고... 물어보라고"
순간순간 울컥하는 고모. 아빠의 초라한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던 걸까?
고모는 말을 하는 중간중간 울컥하며 잠시 멈췄다가 말을 잇고 있었어.
"내가 방금 찾아보니까 요금만 내면 바로 정상공급해 준데."
"내가 낼돈이 있었으면 단전까지 갔겠냐..."
"아 진짜! 내가 내준다고! 전화하라고"
고맙고도 미안하다는 말.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
너무 고마운데. 그 고마움 자체가 너무 미안해서. 차마 통화버튼이
눌러지지 않았어.
전화를 들고 목석처럼 서있는 아빠에게 다가온 고모는
전화기를 뺏어서 통화버튼을 누르고 상담원 연결까지 한
다음에 아빠에게 전화를 넘겨줬어.
"음..."
한전에서 전달받은 계좌번호와 금액이 적힌 납입 안내 문자를
고모에게 전달해 주자. 고모는 바로 입금을 했어.
한 10분 정도 지났나?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꺼져있는 티비만을
응시하면서 앉아 있었지.
/팟!/
"오! 불 들어왔다! 아씨 어제 드라마 못 봐서 재방송 보려고 했는데
오빠 때문에 못 봤잖아! 빨리 티비 틀어봐 빨리!"
옆에 있는 아빠를 발로 밀면서 티비를 틀으라던 고모.
항상 오빠 오빠 하면서 따라다니던 그 꼬마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면서. 그렇게 꼬마취급하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은 게
동생 볼 낯이 없더라.
옆에서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티비를 보는 고모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
"... 고마워"
"응? 안 들려~"
정말 안 들리는 건지, 공치사를 하고 싶어 일부러 그러는 건지
고모는 티비를 보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얘기하더라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깜깜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준 고모에게 감사인사는
제대로 해야겠단 생각에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얘기했지.
"돈 내줘서 고맙다고"
그러자 고모가 고개를 돌려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어.
"내주다니? 헐! 오빠 설마...
내 돈 먹으려는 거 아니지? 갚아! 학생이 돈이 어딨어?"
"그래 갚아야지"
그렇게 아빠는 또 빚을 지고 말았어.
박장대소하며 아빠의 등을 툭툭 치면서 드라마를 보는 고모,
그리고 그 옆에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멍하니
티비만 보고 있던 아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밖은 슬슬
어두워지려는 듯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어.
"아~ 재밌었다. 오빠 우리 저녁 뭐 먹어?"
"어? 먹을 게 없는데.. 오빠 월급이 다음주라.."
쌀도 떨어지고 반찬이라고는 김치하고 장아찌, 계란 정도라
딱히 해줄 만한 게 없었어. 고모는 곰곰히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술 먹으러 갈까? 집에서는 엄빠때문에 못 먹거든"
"술?... 니가 사는 거냐?"
"와나... 진짜 동생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고. 다 이를 거야"
"근데 너 돈은 있냐?"
"있었는데 지금 없어지고 있어.
하... 내가 이럴려고 돈 모은 게 아닌데 말이지..."
"돈이 어디서 나서?"
"용돈 받은 거 모으고, 오빠한테 간다고 엄빠한테 생활비 받고...
아니 그래서? 어디가 맛있는데? 빨리 가자. 동생 배고픔"
전기 끊기던 날 아니 그전날부터 지금까지 3일 내내 술을 마신상태라
속이 좋지 않았지만 밥을 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 신발을 신고
문을 여는 고모를 따라나갈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정현이와 갔던 포차거리
그 포장마차였어.
"어서와요~ 응? 학생 아가씨가 바뀌었네?"
"아! 애 동생이에요. 친동생이요"
포장마차에 들어서자 반가운 듯 맞아주는 이모님이. 저번에 정현이와
왔던걸 기억하는지 고모얼굴을 보더니 얼굴을 갸웃거리며 물었어.
"언니랑 왔었어?"
고모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대답했지.
"아니? 친구랑"
"헐!"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거 아니다? 그냥 회사동료다"
"헐! 언니한테 일러야겠다. 이건진짜 일러야겠다..."
핸드폰을 꺼내는 고모의 팔을 살짝 꺾어 핸드폰을 뺏어 들고는
쓸데없는 장난치지 말라는 눈빛을 주고는 다시 건네줬어.
"근데 왜 이 많은 포차 중에 여기야? 여기가 제일 맛있어?"
"아니"
고모의 질문에 아빠는 그때의 정현이처럼 고모한테 가까이 가서는
귓속말로 속삭였지.
"여기가 서비스로 주는 계란말이가 제일 크대"
이모님의 계란말이를 스타트로 술자리는 시작됐어.
사실 아빠는 말야 고모가 술 먹자고 할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어. 어쩌면 대부업체에서 돈 빌린 것까지 얘기해야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말이지.
어떻게 얘기해야 되나 무슨 애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택시를 타고 오면서 온통
그 생각뿐이었거든.
하지만 고모는 그런 얘기를 묻지 않았어.
그냥 단순히 처음 1학기를 마친 대학 신입생의 경험담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고모였어. 딱히 할 말이 없는 아빠는 그저 듣고 간간히
맞장구만 쳐줄 뿐이었지.
"아니 그래서 다들 수업 못 듣겠다고 수업거부를 하는데"
"니들 크게 노네? 그래서?"
"세명이었나? 두 명이었나? 배신자들..."
이를 바드득 갈면서 소주를 넘기는 고모를 보면서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더라고
'그래도 애는 잘 살고 있구나'
시끌벅적한 포차 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술에 취해 우리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었어.
"오빠 그때 생각나? 오빠가 한번 자면 정신 못 차리잖아?
내가 오빠한테 오빠~ 나 천원만~ 이러면 어 가져가~ 이랬었는데 "
한번 잠들면 정신을 못 차리는 아빠를 잘 아는 고모는 뭔가 부탁, 예를 들어
돈이 필요하거나, 뭔가 해달라고 하거나 할 때 꼭 아빠가 잘 때를 노려서
부탁하곤 했었어.
"맞아 그랬지 니가 오빠가 해준다며~ 라면서 애기할떄 엥? 내가?
싶었던 건 모두 내가 자다 약속한 거였지"
어렸을적 생각에 크게 한번 웃고는 건배를 하고 술을 넘겼어.
"성인 되니까 이렇게 오빠랑 술도 마시네~"
"조그만게 술은~ 너 그러다 큰일난다? 이모 ~ 여기 한병 더 주세요."
"큰일 난다며? 지가 안 산다고 막시키네?"
"오빠한테 지가 뭐냐 지가?"
그렇게 한잔 두 잔. 어느덧 새병째 병을 열고 있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이 조금 빠져나가 조금은 조용해진
포차 안. 너무 큰소리로 얘기해서 기운이 좀 빠진 걸까?
아니면 취해서였을까? 우리 목소리는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된 상태로
조용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
"오빠 그것도 기억나? 나 전에 학교에서 친구한테
괴롭힘 당하고 있을때말야"
"기억나지"
"그때 다른 친구가 오빠한테 이르니까 오빠가 오빠 친구들이랑
단체로 몰려와서 개 혼내 줬는데 그때 오빠 되게 멋있었다?"
"..."
아련한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얘기하는 고모.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왠지 알 것 같아서 입을 떼지 못했어.
그런 아빠를 보며 고모는 별 의미 없었다는 듯
혼자 소주를 넘기곤 웃으며 물었지.
"캬~ 그냥 그렇다고. 근데 왜 혼자 안 온 거임? 왜 우루루 몰려온 거임?"
"싸우면 질 것 같아서."
"푸핫!"
그렇게 웃고 떠들며 많은 애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이 많이 쌓여서 5병이 넘어가고 있었어.
"야 너 술 잘 먹는다? 학교에서 술만 가르치냐?"
"고롬! 내가 우리과 탑이다!"
"그래 잘났다.. 술 잘 먹는 건 우리 집 내력인가 보다..."
비어있는 고모잔에 한잔 따라주고 아빠잔도 채운뒤 건배하자고
소주잔을 들어 올리는데. 그때 봤어.. 고모 눈이 풀려있는걸...
고모는 소주잔이 아닌 물을 닦은 건지 뭉쳐져 있는 젖은 휴지를
아빠를 보며 베시시 웃으면서 내밀고 있더라고.
"알지?"
"응? 뭘 알아? 야.. 너 뭘 들고 있는거야?
뭐? 휴지는 왜? 너 진짜 괜찮아?"
"풋"
아빠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고모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풋 하고 웃고는 휴지를 입으로 가져다 대면서 마치 소주잔에 소주를
넘기듯이 마시려고 하고 있었지.
"아.. 뭐야 왜 안 나와.. 오빠 다시 따라줘..."
/쿵/
그 말과 함께 고모는 옆으로 휘청하더니 테이블 옆으로 쓰러져버렸어.
"하아..."
그런 고모를 일으켜 세워 다시 의자에 앉혔지.
얼굴을 보니 다행히 얼굴은 안 다쳤는데 팔 하고 다리가 살짝 까진 건지
긁힌 자국이 있더라고.
"도희야 앉아 있을 수 있지? 어? 정신 좀 차려봐"
"아! 계산계산"
행사장 풍선마냥 휘적휘적거리던 고모는 자기가 메고 온 손바닥
두개만한 가방에서 뭔가를 찾더니 게슴치레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면서 말했어.
"오빠.. 끅.. 지갑 좀 찾아서 계산 끅.. 좀 해줘..."
한편으론 다행이었지. 고모가 인사불성이라 술값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고모가 계산한다고 했으니 지갑을 훔쳐서 계산하고 내일
말해야 하나. 그건 좀 모양이 빠지는데? 라고 생각 하던 중이었 거든.
"아이고.. 동생이 많이 취했네.... 동생 맞지?"
"아니었으면 버리고 갔죠..."
계산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언제 또 쓰러졌는지
고모가 바닥에 누워서 허우적거리는 거야.
옆테이블 사람들에게 부탁해 도움을 받아 고모를 등에 업고
포장마차를 나왔어.
"으휴.. 네가 오빠 때문에 고생이 많다."
"후~~"
내 혼잣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고모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어.
그때 맞은편에서 학원이라도 가는 건지 대여섯명의 교복 입은 학생들이
무리 지어 지나가고 있는 거야.
"어? 오빠 내려줘 봐 내려줘!"
갑자기 아빠등에 업혀있던 고모는 아빠를 툭툭 치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고 이러다 같이 넘어지겠단 생각에 아빠는 고모를 던지듯이
바닥에 내려놨어. 그때였어
"야!"
학생들을 향해 고모가 소리치자 학생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우리쪽을 쳐다보기 시작했지.
"이 어린끄.. 놈들이 늦은 시간에 돌아끅.. 다녀! 니들 술 먹었지?"
어이없었겠지.. 친구들과 그냥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데 웬 술 취한 여자가
자기들한테 이유 없이 화내고 있으니 말야.
아빠는 고모를 붙잡고는 학생들 향해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어.
"아~ 미안해요 누나가 술을 많이 마셔서..."
말리는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모는 비틀대며 그 아이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며 따지듯이 물었어.
"야! 너 왜 웃어 우리 오빠가 우습냐? 어?!"
"그만해라 좀..."
"우리 끅.. 오빠 무시하지 마라! 끅.."
아빠가 난감해하며 계속 말리자 학생들은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어. 다행이었지.
그 상황에서 싸움이라도 났어봐..
아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화를 내던 고모는 아빠를 쳐다보며
말을 했어.
"봤어? 내가 끅.. 오빠 괴롭히는 끅.. 불량항생들 물리쳤다!"
"...니가 제일 불량해 보인다..."
"어휴.. 어깨 좀 펴! 끅.. 몇 달 사이에 무슨 다른 사람 된 것 같아
끅.. 우리 오빠 아닌 것 같아."
고모가 말하고 싶던 건 그거였던 것 같아. 지금까지 자기를 지켜주고
키워줬던 부모님 같은 오빠가. 돈도 못 내서 전기가 끊긴 방에서
폐인같이 지내고 있던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같이 술 한잔하면서 평범한 삶으로 조금이라도 다시 들어오라고.
다시 우리 오빠로, 내가 아는 우리 오빠로 돌아와 달라고
그렇게 속으로 외침에도 술자리 내내 기죽어 있던 아빠가.
고모를 그렇게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게 권했는지도 몰라.
고모를 다시 등에 업고 어느 정도 걸었을까.
현실은 티비처럼 로맨틱하지 않았어.
엄청 무겁더라...
걷고 걷다가 지쳐서 결국 인도에 고모를 눕혀놓고 나도 주저앉아 버렸어.
순간 생각했지.
'도희 지갑에 현금이 좀 있던데... 택시 타고 갈까...'
만원정도면 집에까지 택시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였거든.
이렇게 업고는 못 가겠다 싶어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어.
뒷좌석에 먼저 고모를 구겨 넣듯이 태우고 옆에 앉아서 집으로 향했지.
"난 오빠끅... 가 행복했음 끅... 좋겠어..."
잠꼬대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고모의 말을 들으면서
주책없이 왜 눈물이 나던지. 그래도 다행이었어. 울고 있는걸
고모는 취해서 못 보니까 말야.
"욱!"
집에 거의 다다라서 마지막 골목을 돌을 때쯤
그때 갑자기 고모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우웨엑"
맞아. 시트에 토를 해버리는 거야.
깜짝 놀란 기사아저씨는 비상깜빡이를 켜고 길에 세웠지.
아빠는 고모를 먼저 택시에서 내려놓고 고모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시트를 닦기 시작했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물어내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진짜 열심히 닦았던 것 같아.
하지만 예상은 벗어나질 안았어. 아빠를 보며 인상을 쓰던 기사님은
"그거 그렇게 해서 안돼요. 냄새는 어쩔거야? 세차비 주셔야겠는데?"
"얼마요.."
"오만원"
고모지갑에서 오만원을 빼서 기사님에게 건네자. 기사님은 여전히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하며 자리를 떠났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깊게 들이마신 뒤 내뱉고서는 우리 집 창문을 봤는데
급하게 나온다고 불을 끄지 않았는지 창문이 밝게 빛나고 있더라구.
"음냐..... 행복.."
고모는 또 바닥에 널부러져있고 말이지..
"하아... 내가 너 때문에 행복해질 수가 없다..."
아빠는 다시 고모를 등에 업고 집으로 향했어.
계단을 오르는 동안 몇 번이나 넘어질뻔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바람에 몇 번을 쉬어가면서
겨우 집에 들어와 바닥에 고모를 집어던졌어.
"아야... "
떨어지면서 머리를 살짝 부딪혔는지 머리를 감싸는가 싶더니
그 자세 그대로 다시 잠이 들더라고..
그런 고모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하며
웃고 있더라.
'그래도 노력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