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야 잘되고 있냐?"
"저번에 말씀드린 부분 자꾸 에러가 터져서 다시 보고 있습니다."
"... 오늘 내로 되냐?"
"야근을 해서라도 해결하겠습니다."
처음으로 맡아보는 단독 프로젝트라는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어.
선배들에게 물어보는데도 한계가 있었고, 일단 나부터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하게 된 상황이라 그렇게 많은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야.
'하아.. 왜 안 되냐 진짜.'
원인도 모르겠고 분명 맞게 짠 것 같은 코드를 수십 번 다시 읽어봐도 빵빵
터지는 에러에 몸과 정신은 점점 지쳐갔지.
결국 근무시간 내에 처리하지 못한 아빠에게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었어.
사람들이 다들 빠져가자 아빠는 커피를 타기 위해 컵을 들고 탕비실로 향했어.
/ 커피는 원두커피가 맛있다. /
'X랄 하네 난 믹스파야 X발'
원두커피를 내리려다가 갑자기 예전에 아빠를 골탕 먹이던 과장생각이 나서
믹스커피를 꺼내 컵에 털어 넣고 돌아서 뜨거운 물을 부으려는데
"그래? 난 핫초코 파인데..."
다크서클이 늘어져서 볼까지 흘러내리려고 하는 초췌한 모습에 정현이가 서있었어.
"으허헉! 너.. 뭐.. 뭐야.."
핫초코를 뜯어 컵에 넣고는 물을 받으며, 놀라서 뒤로 넘어질뻔한 아빠를
눈을 뜰 힘도 없는지 실눈으로 쳐다보면서 축 처진 목소리로 얘기하더라
"뭐야.. 왜 놀래..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뭐야? 너 야근이야?"
"야근?.. 야근이지 어제도 야근이고 그저께도 야근이고 내일도 야근일 거고 모래도 야근일 거고
나는 야근하다 죽을 거야? 그치? 나 죽으면 놀러 와 술은 공짜로 줄게. 근데 이거 산재되나..?"
핫초코를 타고는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는 정현이를 살짝 비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팔로 통로를
탕 막으며 정현이는 간절한 듯 아련한 듯 얘기했어.
"우리 도망갈까? 야근도 업무도 없는 그런 곳으로?"
"사랑의 도피도 아니고 그게 뭐냐? 일이나 해..."
"뭐야 너 회사 편이야? 됐어 우리 헤어져"
"하아.. 만난 적도 없다.. 그만 질척거려..."
그렇게 정현이를 두고, 아니 버려두고 자리로 돌아왔어.
정신없이 일하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8시. 담배나 하나필 겸 흡연실로 향했지.
/딸칵. 씁 후~/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곤 내뱉으면서 핸드폰을 펼치곤 전화를 걸었어.
"도리아저씨!"
"응~ 잘 있어? 저녁은 먹었고?"
"응 아까 먹었어. 고기 먹었다요!"
"오 고기~ 좋았겠네?"
"응! 다소도 완전신나서 배 뻥뻥 차면서 놀았어"
"다행이네 다들 건강하시지?"
"응! 이번 주에 올 거지?"
"다행이네 그럼 가야지~"
/나 몇 달 뒤면 출산하는데.. 그럼 나랑 다소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중요한 뭔가를 잊었다 깨달은 그런 기분이었어.
임산부인 엄마를 너무 오랫동안 혼자 방치할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출산일도 두어 달 밖에 안 남아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라 옆에 항상 오분대기조로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지.
"내.. 내가.. 한번 회사에 물어볼게.."
"응.. 너무 신경은 쓰지 말고 방법이 있을 거야"
"어.."
"힘내라 개도리!"
"그것 좀 하지 마~"
"왜? 좋은데? 아자! 개도리!"
아빠를 격려하며 하이파이브 자세를 취하는 엄마의 손바닥을 힘없이 치고는
많은 걱정과 함께 잠이 들었어.
다음날 회사에 가서 선배들에게 스치듯 프로젝트와 야근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야근? 안 하면 되지 시간 내에만 잘 끝내면"
"우리 회사 야근 강요 안 해~ 근데 너 야근 안 할 정도로 잘하냐?"
"뭘 걱정해 퇴사하면 되지 끌끌끌.. 그럼 야근 안 해도 되잖아?"
"헛소리 말고 앉아서 전 화나 받아."
꿈도 꾸지 말라는 반응들이었지.
사실이 그랬어. 시간은 정해져 잇는데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한번에 에러도 없이 착착 일정에 맞게 해나간다는건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
다만,
이 이야기를 엄마한테 어떻게 전해야 하나. 그게 걱정이었어.
프로젝트를 포기하자니 평생 이 꼬라지로 살아야 할 것 같아 겁이 나고,
엄마를 포기하자니 뱃속의 아기와 엄마가 너무 걱정되고..
"도리아저씨! 어떻게 됐어? 야근 안 해도 된데?"
"그게..."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아무래도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아빠가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어. 엄마도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듣고 잇었지.
"그랬구나... 할 수 없지. 그래서 나도 생각을 해봤는데..."
"응? 무슨 생각?"
"나 출산할 때까지 집에 가있을까? 거기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예삐도 있어서 심심하지도 않고"
"가긴 어딜 가!"
화가 났어. 지금 가진 것 하나 없어 초라한 내 모습도 너무 화가 나는데 그게 이유가 돼서
신혼부부인 우리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게, 그게 내 여자가 생각해 낸 어쩔 수 없는 마지막 방안이라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났던 거야.
"아니 도리아저씨 화내지 말고 잘 들어봐."
"내가 둘 다 하면 되잖아? 회사에서 일하다가 너한테 문제 생기면 내가 뛰어오면 되잖아"
"아휴~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닌 거 알잖아"
"그래서 뭐? 떨어져 살자고? 이혼하자고?"
"왜 이래? 누가 이혼하쟀어? 그냥 나 출산할때 까지만 엄마한테 가 있겟다구 3개월 정도만..."
너무 초라하고 너무 답답해서 눈물이 났지. 하지만 잡을 수가 없었어. 명분이 없었거든.
"괜찮아~ 잠깐만 떨어져 있는 거니까. 대신 도리아저씨가 주말마다 내려오면 되잖아."
하지만 그 약속도 지킬 수 없었어. 일도 일이거니와 기름값, 통행료등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
자주 보러 갈 수도 없었지.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첫 번째 이별 아닌 이별을 했어.
"도리아저씨 힘들겠다~ 그럼 오늘은 몇 시에 끝나?"
"글쎄 해봐야지? 피곤하겠다 얼른 자~"
"웅 힘내라 개도리!"
장난스러운 엄마의 격려와 함께 통화를 종료하고는 다시 사무실로 향했지.
해결되지 않는 코드를 붙잡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야! 잘 돼 가냐?"
파티션 위로 정현이의 얼굴이 스윽 나타났어.
"허억.. 야 깜짝이야! 아 왜 이러는 건데 진짜"
"흐흐흐 대충 됐으면 가자~ 열시야 열 시"
정현이의 말에 시계를 쳐다보니 열 시를 넘어가고 있었어.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음에
찌뿌둥함을 느껴 의자에 몸을 기대 기지개를 쭉 켜었지.
"으그그그 그럴까?"
"오?!"
정현이는 다 죽어가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눈이 땡그래져서 자기 자리로 뛰어가더니
정말 말도 안 되게 10초 만에 컴퓨터 끄고, 가방까지 챙겨서 뛰어오더라고
"가자~ 술 마시러"
"응? 왠술?"
"가자 가자 원래 친구끼리 이렇게 야근하고 술 먹고 회사도까고 상사도 까고 막 그렇게 다 까고 그러는 거야"
"까기 전에 좀 가라.. 넌 집도 없냐?"
"아아~ 가자고 내가 좋은데 안다고~"
내 팔을 잡고 늘어지는 정현이.
'그래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는데...'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고 혼자 티비 보다 지쳐 자는 것보다 차라리 술이나 한잔하고 차에서 자고 내일 그냥 바로 출근하는게
낫겠다란 생각이 들었어. 왜 집에 안 가고 차에서 자냐고?
대리비가 어딨니...?
"여기가.. 좋은데냐..?"
정현이와 들어간 곳은 티비나 드라마에서 보던 직장인들이 많이 가는
고깃집, 막창집, 횟집, 선술집 이런 곳이 아닌 포장마차 촌에 한 포장마차였지.
"왜? 포장마차 무시하냐? 그리고"
정현이는 갑자기 목소리를 팍 줄이며 귓속말로
"여기 이모가 서비스로 주는 계란말이가 제일 커"
"참.. 대단한 걸 주시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잡고 소주 한 병과 안주로 김치찌개를 시켰어. 왜 김치찌개냐고? 제일 쌌거든.
아빠는 술자리 모드로 전환시키고자 일부러 핀잔을 주는척하며 농담을 걸었어.
"술 먹자고 맨날 노래 부르길래 뭐 맛난 거라도 사주나 했더니 김치찌개야?"
"김치찌개가 왜? 야~ 우리 같은 젊은애들이 돈이 어딨냐? 이런 것도 사 먹을 돈이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지"
"사 먹을 돈도 없으면 감사 안 해도 되냐?"
"..."
지금 생각하면 정현이는 참 착한 아이야.
아빠가 그때의 정현이었으면 매사 그렇게 삐뚤게 생각하고, 돈 때문에 자격지심에 절어 있고, 피해의식 가득한 놈이 내 친구라면?
두 번 다신 같이 안 놀았다 진짜.
그런데 정현이는 반대로 아빠의 기분을 풀어주며 위로하고 있었어.
"근데 너 이렇게 늦게 들어가면 와이프가 뭐라 하지 않아?"
"누구? 우리 마누라? 없어~ 친정 갔거든"
"아~ 친정 좋지.. 요양 중이시구먼? 응? 이거 자유의 몸이구만?"
"자유는 개뿔.."
"우리 회사 선배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상황인데?"
"왜 부러워?"
그러자 정현이는 '큼큼' 목을 다듬더니 무슨 개그맨 만담하듯이 자세를 잡는 거야
"결혼이요? 좋은 점은 여자친구랑 모든 걸 함께 하는 거죠. 밥도 먹고 티비도 보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싶어 눈살을 찌푸리며 소주잔을 들어 입으로 넘기고 있었어.
"야야 단점은요? 라고 물어봐봐 빨리"
"아 왜 이래"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덧 차있는 사람들 때문에 부끄러워서 학을 떼며 손사래를 치고 말았지.
하지만 그런 아빠 모습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대사를 치라고 하는 정현이었어.
"아빨리~ 단점은요!라고 물어보라니까?"
"아 진짜.. 단점은요?"
어쩔 수 없이 내뱉은 아빠의 질문에 정현이는 갑자기 오열하는듯한 흉내를 내면서 포장마차가 떠날듯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어.
"여자친구가 집에 안 가! 나도 게임도 하고 야동도 보고 쉬어야 되는데 집에 안 가!"
"야이!! 미친 인간아 조용히 안 해!"
그렇게 시끄럽고 부끄럽게 시작된 술자리.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덧 12시가 넘어가고 잇었지.
"오늘은 내가 살 거다!"
정현이는 비틀대면서 포차이모에게로 향하고 잇었어.
"아 내가 산다니까?"
아빠가 내뱉은 내가 산다는 말과는 다르게 아빠는 괜히 식탁에 흘린 음식물들을 한번 더 닦고
의자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물도 한잔 마시며 시간을 벌고 잇었지.
"짠~ 내가 했다~"
계산을 마친 정현이가 아빠에게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계산 끝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때
아빠는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비참함을 느끼고 있었어.
'넌 내가 성공하면 제일 먼저 술 산다'
라는 기약 없는 다짐과 함께 말이지.
"어떻게 들어갈 거야? 택시? 대리?"
포차에서 나온 우리. 정현이는 나에게 집에 어떻게 들어갈지 물어보고 잇었어.
"대리 불러야지.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 대리비 빌려줄까?"
걱정과 배려가 섞인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봐도 그런 말이었는데
그게 아빠에겐 적선, 동정 그 정도로 들렸던 거야.
아빠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기가 걷히고 어떻게 보면 조금 화난 것처럼
정현이에게 쏘아붇혔어
"야. 내가 거지냐?"
"에?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아니 아니 알았어~ 그럼 조심히 들어가 내일 보자구!"
마치 도망치듯이 뛰어가는 정현이. 정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해질 때쯤 아빠는
아까 차를 세워 놓았던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
술기운 때문일까 자격지심에 흥분해서일까 호흡이 빨라지고 어질어질한게 딱 죽을 맛이더라고
차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가 몸을 새우처럼 접어서 누웠지.
아주 좋진 않지만 그렇게 못 잘 만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숨을 너무 몰아쉬어서일까 실내에 술냄새가 가득하고 점점 따뜻해져 가는 느낌이 들면서
숨쉬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어.
후닥닥 내려 운전석으로 가서 창문을 살짝 열었지.
밤이라 그런지 선선한 바람이 차 내부로 들어왔다가 나가고를 반복하면서 나름 쾌적한 환경이 완성되었어.
하지만 하나 간과 한 게 있었지.
/위이잉
짝! /
'에이씨.. 머야아... 음냐..'
그날은 6월. 그것도 강가옆 포장마차촌 이었다는 걸 말야.
그렇게 아빠는 모기들과 함께 좁은 차안에서 다음날을 맞이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