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by 도리

"흐하핫! 오늘 고생 많았다. 저녁 뭐 먹을래?

뭐 먹고 싶냐?"


일요일 늦은 오후 시연회가 끝난 행사장.

직원들과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행사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로 팀장님이

크게 웃으며 다가오셨어.


"구경만 했을 뿐인데요..."


사실이 그랬어. 시연회라고 왔는데 딱히 한 거라고는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자리 안내를 하는 것 정도밖에 한 게 없었거든.

아! 하나 더 있었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행사장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있습니다."


화장실 안내해 주는 일 말야.


"한 게 없기는~ 저거 너 혼자 다한 거야.

우린 네가 만든 걸로 우리 이런 게 있다고

자랑한 거고. 아니냐?"


'오늘 고생 많았다고 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팀장님의 말에 오류를 찾고 있으면서도

얼굴은 솔직했나 봐.


"어? 이 새끼 웃네? 그래 웃어라~ 반응도 대박이야.

이거 진짜 터질 것 같다. 두고 봐라."


너무 기분 좋은 티를 내면 보기 안 좋을 것 같아

아빠 옆에서 신나게 얘기하는 팀장님을 뒤로하고

의자 정리를 하려는데 팀장님이 어깨를 감싸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라고.


"야~ 이런 건 애들 시키고. 우린 나가서 저녁메뉴나

생각해 보자. 담배 있냐? 하나 줘 봐"


"아 팀장님.. 제가 제일 막내.. "


시끄러우니 더 떠들지 말라는 듯이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아빠를 데리고 나가는 팀장님.

행사장 옆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서 우린

담배를 꺼내 물었어.


"후~ 야! 도리야. 내가 솔직히 진짜 걱정이 많았거든?

이 새끼가 이게 잘할 수 있으려나.."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팀장님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말을 건넸어.


"너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맞지?

개발 경험도 별로 없을 거 아냐? 들어오기 전에

뭐 하던 거 있냐?"


"아니요. 학생이었습니다. 아직 졸업도 못했어요."


그때 아빠는 코스모스 졸업예정이었고

한 학기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급하게 결혼하고

취업하느라 휴학 중인 상태였지.


"너 아직 학생이야?"

"서류상으론 요..."


"그럼 학교 다시 가는 거냐?"


나중에 퇴사하고 다시 학교를 다닐 거냐는 정말

간단한 질문이었겠지만. 그 질문은

아빠 머릿속을, 그리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어.

여윳돈은 고사하고 당장 월세걱정, 이자걱정,

생활비 걱정만 해도 머리가 터지는데 대학등록비는

어떻게 내며, 설령 간다 해도 회사를 그만두면

우리 가족은 뭐 먹고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졸업은 하고 싶은데...'


졸업에 대한 간절함은 쉽게 놓칠 못하겠더라고.


"학교는 안 갈 겁니다. 만약 졸업한다해도

4학년 1학기까지 마친 상태라 취업계 내면돼요."


"새끼가 사람 놀래키고 있어. 너 알지?

내가 너한테 투자한 거. 너 어디 도망 못 간다?"


'가긴 어딜 갑니까.. 더이상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팀장님의 으름장에 담배연기와 함께 삼켜버린 말.

담배연기와는 다르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담배는 그렇게 타들어가고 있었어.


"아빠 왔다!"

"응? 웬일로 도리아저씨라고 안 해?"


"헤헤. 지금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혹시 또 까먹을까 봐

계속 얘기해 주려고. 밥 먹었어?"

"음.. 아니. 밥 먹자 배고파. 내가 차릴게."


옷을 벗고 있는데 밥 먹었냐는 엄마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 사실은 말야.


"에? 저녁 안 먹고 들어가게? 좋은 날인데 소주도

한잔 하려고 했더만?"


팀장님 차를 타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

집요하게 뭐 먹고 싶냐며 물어보는 팀장님의 질문에

집에 가야 한다 했더니 아쉬운듯한 목소리로

놀라며 물어왔어.


"집에 뭐 좋은 거 있냐? 아~ 애기? 애기는 인마

밥 먹고 가서 보면 되지. 애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사실 아빠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어.

그동안 야근하면서 고생해 만든 프로그램 시연회가

성황리에 종료된 상황에서 팀장님한테 인정도 받고

무엇보다 솔직히 그런 거 있잖아. 그냥도 저렇게

칭찬하고 추켜세워주는데 술 마시면 또 얼마나

이뻐해 주고 칭찬해 주겠어.


하지만 말야. 사실 아빠는

너도 너지만 사실 하루 종일 너 돌본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도저히

밥 먹고 들어갈 수가 없겠더라고.


집에 들어가서 챙겨주면 되지 않냐고?

팀장님이랑 밥 먹으면 이 얘기 저 얘기로 시간이

엄청 흐를 거고, 거기다 술까지 한잔 하게 되면

자정은 다돼서야 들어가게 될걸?


그 당시 팀장님이 말도 많으신 분이었지만

술도 엄청 좋아하시는 분이었거든.


"그것도 그건데 와이프 애 본다고 밥도 못 먹었을까 봐

같이 먹으려고요."


"이야.. 애처가.. 뭐 그런 거냐? 난 안 그래봐서

공감이 전혀 안되네.."


팀장님은 더 이상 묻지 않으셨어. 아빠는 말야

한번 더 물어 봐 주길 바랬을까? 억지로라도


'시끄러 그냥 밥 먹고 가!'


라고 얘기했으면 어쩔 수 없는 척하면서 따라갔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나는 건 나도 내 맘을, 내 생각을

잘 몰랐었던 것 같다라는 거지. 그런 상황에서도

결국 발걸음은 나를 집으로 데려다 놓았어.


"아빠야~ 무슨 생각해?"


"어? 아니 뭐 해 먹을까? 계란 후라.. 아 기름 요리

안된다고 했지?"


계란후라이를 얘기하려다 문득 이전에 기름요리는

하며 안된다며 싸웠던 게 생각나 멈칫하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어.


"해도 돼.. 엄마한테 얘기했다가 혼났어.

조선시대도 아니고 나 좋아하는 거 해주겠다는

신랑한테 그게 무슨 짓이냐고.."

"해도 된다고?"


"환기만 잘하면 된데.. 요리 할 때 아기랑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고.."

"해도.. 된다고..?"


"웅! 나 3개 해줘!"

"하아.. 무릎 꿇고 손들어. 우리 왜 싸운 거냐?"


"몰라 이모가 그랬어. 하면 안 된다고."

"알았으니까 빨리 손들어."


계란 후라이와 김치, 젓갈과 먹다 남은 참치 반캔

조촐하게 차려진 음식조차도 마음 편히

먹을 수가 없었어.


"흐아아앙!"


자는 걸 확인하고 잠시 눕혀 놓았는데 또 언제 깼는지

울어대는 너. 밥을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급하게

먹고 있는 엄마. 네가 울자 바로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너를 안고 달래는 엄마였지.


"내가 안을까? 오늘 밥도 제대로 못 먹었지?"


"아냐~ 아저씨부터 먹어 다 먹으면 교대하면 되지!"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면서 가끔 살짝살짝 흔들며

너를 달래는 엄마. 그 앞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는데

그게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니? 벌떡 일어나 거의

뺏다시피 너를 안았어.


"아이고 도윤아! 애를 그렇게 확 뺏어가면.."


"먹어! 너 먼저 먹고 교대해!"


아빠의 단호함에 억지로 밥상 앞에 앉은 엄마.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지만 눈은 여전히 너를

향해 있었지.


"참! 오늘 시연회 어떻게 됐어?"

"빨리도 물어본다~ 괜찮았어. 잘했다고 칭찬도

받고 밥도 사준다고 하고"


"밥? 그럼 당신 이거 디저트야?"


엄마의 해맑은 그리고 터무니없는 질문에

웃음이 살짝 새어 나오더라


"안 간다고 했어."

"왜? 시연회 잘됐으면 맛있는 거 사주지 않았을까?

아쉽다."


"아빠가 집에 있어야지. 가긴 어딜 가."

"오! 우리 신랑 멋지다요!"


너무나 기다렸던 말이었는지. 정말 오랜만에 본듯한

환하게 웃는 엄마의 모습.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너무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괜히 머쓱해지더라고.


"근데 너.. 너무 천천히 먹는 것 같은데?"


"아! 웅 빨리 먹고 교대 하자요!"


시연회가 있던 날. 뭔가 엄청난 게 일어날 듯했던 그날은

그렇게 별일 없이 너무도 평범하게 흘러가고 있었어.


"시연회 대박 터졌다며? 게시판 사진 올라온 거 봤다."


"저는 밖에만 있어서.."


그날도 지각을 겨우 면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출근을 한 상태라 아무도 모르게 슬금슬금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는데 경태형이 뒤에서 등을 찰싹 때리고는

묻더라고.


"이야 잘 나가네. 좋겠다? 이제 형 필요 없지?

건방진 놈..."


'건방진 놈?'


건방지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뜨는 경태형.

또 내가 뭐 잘못하거나 주제넘게 행동한 게 있나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사무실문이 열리더니

김 과장이 들어오는 거야.


"과장님 안녕하세요?"


"..."


평소라면 '도리도리!' 하면서 장난 시동을 걸었을

김 과장인데 스윽 한번 쳐다보더니 대꾸도 없이

자리로 가더라고.

'맞네.. 나도 모르게 뭐 실수한 거 맞네.. 뭘까..'


왠지 모를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 앉는데


"도리! 출근했냐?"


멀리서 팀장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네!"


팀장님이 부르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서 자리로

뛰어가려는데 문득 김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어.


"하.. 나.. 시X.."


혼잣말처럼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였지만

분명 김 과장은 욕을 하고 있었지.


"네 팀장님."


"오 그래! 오늘 점심에 뭐 하냐?"


의자에 기대 누워있다시피 앉아있던 팀장님은

아빠를 보자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어.


"점심 먹겠죠..?"

"그렇겠지. 그럼 지금 뭐 하냐? 바쁜 거 얼추 끝났잖아?"


"네 지금 당장은 급한 건 없습니다."

"그래? 나가자?"


아침부터 또 어딜 끌고 가려고 하는 건지.

일 없다니까 또 일 주려고 하네라는 생각에


'하아.. 일 많다고 할걸..'


후회하는 아빠였지만 이미 늦은 후였지.


"네.. 그런데 어딜?"

"순댓국 같은 거 먹냐? 옆동네에 죽이는 데 있는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


'잉? 밥?'


갑자기 웬 밥을 먹으러 가자는 건지.

그보다 이미 업무가 시작됐는데 밥을 먹으러

가도 되는 건지.

도대체 뭐가 뭔지 어리둥절했지만. 어쩌겠니?

높으신 분이 따라오라는데 따라가야지...


팀장님을 따라 사무실 문을 나서는데

아까 있었던 김 과장과 경태형의 반응 때문인지

이상하게 사무실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무거운 거야. 그런 거 있잖아. 왠지 모르겠는데

수근거리는 느낌.


기분 탓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애써 털어 내고

팀장님의 차에 올랐어.


"어떠냐? 여기가 나 신입 때부터 자주 오던 곳인데."


"아.."


어쩐지 식당 들어설 때부터 사장님하고 살갑게

인사하는 것 같더니. 오랜 단골집이었어.


"딱 너만 할 때였나? 그땐 사장님도 젊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네"


"네.."


간부급 인사랑 마주 앉은 식사자리.

그것도 업무시간에 말야.

상당히 불편했지.


'네'

'아닙니다.'


기본적인 리액션만 뻐꾸기처럼 반복할 뿐

딱히 할 말이 없었어.


"다 먹었으면 가자?"


'이럴 거면 왜 부른 거야? 나 밥 못 먹을까 봐?'


티비에서처럼 회사생활, 업무에 관한 이야기 등

이것저것 얘기하고 서로 의논할 줄 알았던

식사자리는 생각보다 별 이야기 없이 끝이 났어.


"먼저 들어가라 나 거래처 갔다 가게."


그 말만 남기고 유유히 떠나시던 팀장님.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는 회사 건물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지.


'도대체 뭐지? 왜들 이러는 거지?'


분명 금요일 저녁까지 아무 문제 없이 퇴근했었는데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뀐 회사분위기가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었지.


"야! 어디 갔다 오냐? 너 할 일 다 했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김 과장이 소리쳐 물었어.

한 번도 본적 없는, 평소 실눈 뜨고 장난치며

커피 마시던 모습과는 다른 화난 표정으로 말이지.


"아.. 시연회 이후로 들어온 일은 없습.."


"시연회 끝나면 다야? 니 일이 그것뿐이야?

전화 안 받아? 우리 팀 일은 안 해? 놀려고 회사 다니냐?"


김 과장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회사가 쩡쩡 울리자

직원들은 파티션 위로 고개를 살짝 들고 우릴

주시하기 시작했어.


창피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가 안 됐어.

'쥐약을 잡쉈나.. 갑자기 왜 지X이야..'


황당한 마음이 얼굴에 그려졌던 걸까?

김 과장은 옆에 있던 서류를 내 책상에 집어던지듯이

놓으며 말했어.


"니가 지금 밀린 일이 얼만데 싸돌아다녀

너 바쁠 때 형들이 해주니까 당연한 거 같냐?"


"아니.. 하.. 아닙니다."


더 이상 말을 이을수가 없었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거든.


"이 새X가 한숨 쉬네? 예쁘다 예쁘다 해줬더니

정신 못 차리고. 이번 주까지 리뉴얼건 해결해 놔"

"어.. 이건 제게 아닌데요?"


"하아.. 하라면 하지 뭔 토를 달아.

별 이상한 새끼가 들어와서"


짜증을 내며 사무실을 나가버리는 김 과장.

김 과장이 사라지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멍하니 자리에 앉았어.


그리고


그렇게 소란이 났음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체 일을 하고 있던

경태형에게 조용히 물었지.


"형.. 과장님 갑자기 왜 저러시는지 아세요?"


아빠의 질문에 경태형을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훑어보고는 한숨을 팍 쉬고는 말을 이었어.


"하아.. 이 건방진 놈.."

"제가.. 왜.."


"아니다 니가 무슨 죄가 있겠냐.."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 경태형. 그런 경태형의 팔을

붙잡고 다시 물었지.


"왜요.. 저 뭐 잘못했어요..?"


다급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물어보는 아빠의 질문에

경태형은 말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지.


" 너.. 라인 탄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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