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입원까지는 가지 않고 그날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어.
"밥.. 먹고 들어갈까?"
예상치 못한 병원비에 주머니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상황조차 좋지 않았지만 간만에 외출이고 출근도
안 하겠다 비싼 건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떡볶이라도
먹고 들어갔으면 좋겠다 싶어서 물어본 말이었지만
엄마는 검지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지.
"놉! 얼른 들어가서 도윤이 씻겨야 돼.
병원 갔다 왔잖아."
"그래.. 집에 가자"
아쉽지만 할 수 없었어. 엄마가 너무 단호했거든.
'또 도윤이가 먼저야?'
물론 서운한 감정도 들긴 했지만 말야.
평일 늦은 오후 길에 차도 많지 않아 집에 금방
도착했어. 조그만 몸으로 밤새 열과 싸우느라
지쳤는지 엄마 품에서 잠든 네가 한 번도
깨지 않았는데 말이지.
"이야.. 애가 웬일이야? 오는 동안 한 번도
안 울었어."
"애..?"
"아니 도윤이"
"좋았어!"
너를 '애'라고 부르는 아빠를 보며 눈을 흘기던
엄마는 아빠가 호칭을 정정하자 그제서야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는 엄마였지.
자고 있는 너를 눕혀놓은 상태로 옷을 벗기는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
"어디~ 우리 아들 쉬야 했나 보자~"
엄마가 기저귀를 벗기는 순간 차가운 공기에 놀란 건지,
아니면 자세가 불편했던 건지 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지.
"헙! 흐잉 흐잉 흐아아앙!"
너의 울음소리에 엄마는 너를 안고 달래기 시작했어.
"으이구~ 우리 아들 힘들었어? 깨끗이 씻고
맘마 먹자~ 응?"
아빠를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너를 안고 일어나는
엄마.
욕실로 향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는
엄마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어.
"어디가?"
"응? 물 받으러"
"도윤이 안고? 나 줘 내가 안고 있을게"
"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는 듯 놀라는 엄마.
밤새 한잠도 못 자 피곤에 절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너를 건네주는 엄마였지.
그런 엄마를 보자니 이 말 한마디가 뭐라고
입으로 내뱉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나 싶더라고.
"도리아저씨~ 도윤이 데리고 와~"
엄마의 부름에 욕실로 향했어.
처가에서 선물 받은 아기욕조에 어느덧 물을 받아
씻길 준비를 마친 엄마는 욕실바닥에 쪼그려 앉아
너를 안고 있는 아빠를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여전히 웃고 있는 엄마.
"아저씨가 한번 해볼래?"
"... 도윤이 물고문당하는 거 보고 싶어?"
우스갯소리로 한말인데 엄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어.
"배워야 하지. 한번 해봐! 아기 씻기는 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씻겨."
"오? 그르네~ 잘 봐봐 일단 물부터 만져봐
온도는 이 정도가 딱 좋아."
엄마의 권유에 욕조에 받아놓은 물을 손을 넣었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게 딱 좋은 거야.
"아저씨.. 아저씨가 씻으라는게 아니고.."
"아! 어. 딱 좋다. 그런데 내가 맞출 수 있을까?
금방 까먹을 것 같은데.."
"누가 아저씨 혼자하래? 물론 혼자 해야만 할 때도
있겠지. 혼자 잘할 때까지 내가 계속 도와주면
되잖아~"
아빠와 대화를 하면서도 너무 능숙하게 너를 씻기는
엄마. 그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어.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잘해? 모성애, 본능
뭐 그런 건가?"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의 손이 갑자기 뚝하고
멈추더니 아빠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며 말하더라.
"엄마한테 혼나면서 배웠어. 혼나면서 하면 돼.."
"아.."
살짝살짝 꿈틀 거리는 너를 팔과 팔 사이로
고정시키며 살살 물을 뿌려 헹구는 엄마는
계속 말을 이었어.
"나라고 처음부터 잘했겠어? 그래도 내가 엄마니까.
내가 해줘야만 하는 거니까. 계속하다 보니 잘하게
된 거지. 도리아저씨 수건~"
정말 빠른 시간만에 너를 다 씻기고는 수건걸이에
미리 걸어놓은 수건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엄마.
어떻게 싼 건지 모르게 순식간에 너를 수건으로
돌돌 말아 아빠에게 건네는 엄마였어.
"아저씨! 빨리빨리~ 도윤이 감기 걸려"
아빠에게 너를 맡긴 채 너를 씻기던 도구들은
그대로 내팽개치고 거실로 향하는 엄마.
네 두 배정도되는 수건을 바닥에 깔고는 또 다른
수건을 준비하며 너를 데려오라고 재촉하더라고.
'아.. 물기.. 이거 떨어지는 거 아냐..?'
엄마에게 가면서 한걸을 한걸음 내딛기가
왜 그렇게 조심스럽던지.
물기 때문에 혹시 미끄러져 떨어지지나 않을까.
갑자기 바둥대면 어떡하지?
그런 아빠를 보던 엄마는
"... 내일 올 거야?"
답답했는지 한소리 하더라고.
그 조그만 아기 목욕에 뭐 그렇게 신경 쓸게 많던지
씻긴다고 끝이 아니더라고.
물기도 말려야 하고 로션도 바르고 가루 같은 것도
뿌리고..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너를 바라봤을 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입을 뻐끔거리는가 하면
가끔 윙크도 하고, 뭐에 놀란 것처럼 온몸을 꿈틀
거리기도 하는 게 지켜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더라.
"애도 개운한 걸 느끼나? 표정이 완전 다른데?"
"아구~ 시원했어 우리 아들? 네 시원해요~"
"... 너 뭐 하는데...?"
"..."
마치 인형극이라도 하는 듯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엄마 그 모습이 너무도 오글거려서 저지하는
아빠였지.
울지 않는 너.
평소 작지 않은 네 울음소리에 지칠 대로 지쳐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네 얼굴.
정말 처음으로 오랫동안 본 것 같아.
"난 안 닮은 것 같은데?"
"아저씨 안 닮았으면 나 닮았겠지.
그런데 내가 봐도 당신 판박인데?"
"내가 이렇게 못 생겼냐..."
"죽고 싶어? 도윤이가 훨씬 낫지 무슨!"
엄마의 심술 가득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꼼지락 거리는 네 손을 나도 모르게 살짝 잡아보려
손을 갖다 대는데
"와.. 애 봐! 봤어? 방금 피하는 거?"
손이 가까이 닿을락 말락 하자 손을 접어버리는 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는 배까지 잡은 채 웃으며
아빠를 놀려대기 시작했지.
"헤헤헤 못생긴 사람이랑 손잡기 싫다잖아~"
한번 큰일을 겪고 나서였을까? 그렇게도
실감이 안 나던 아빠라는 자리. 그리고 너라는 존재가
슬슬 내 인생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날 밤.
"흐앙 흐앙 흐아앙!"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네 덕분에 어렵게
잠들었음에도 알람시계마냥 때만 되면
여전히 울어대는 너.
'아.. 진짜 미치겠네..'
잠이 덜 깬 눈으로 네 쪽을 바라봤는데 엄마가
없는 거야.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아 바라본 화장실.
살짝 열린 문에선 빛이 새어 나오고 그 안에 선
엄마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
"도윤아! 미안해 엄마 금방 갈게! 미안!"
'아.. 화장실..'
그랬겠지. 또 밤새 화장실도 못 가고 너를 돌보다가
네가 잠든 것 같아 잠시 자릴 비운 사이에 그걸 못 참고
또 울기 시작했을 거야.
"넌 왜 엄마 화장실도 못 가게.. 어휴.."
천장만 보고 목이 터져라 울던 너.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아니면 단순히 소리가 나서
쳐다본 걸까? 너는 확실히 나를 응시하며
더 크게 울고 있었어.
"자~ 자자.. 자자.. 좀.. 제발.. 자자..."
티비에서 본 것처럼 네 가슴을 살짝살짝 토닥이며
한번 재워 보려고 했어. 물론 실패했지만 말야.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못해 뚝뚝 떨궈가며
더 크게 우는 너.
"도윤아~ 착하지? 엄마 다했다! 금방 간다~"
화장실에서 다급한 엄마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아빠는 네가 누워있는 아기 베개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네 목을 받쳤어. 그리곤 엉덩이와 허리를
받쳐서 들어 올린 후 너를 안았지.
"그래그래~ 엄마 온댄다. 그러니까 자야지? 응?"
아빠의 간절함이 너에게 닿았던 걸까?
울음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이내 울음을
그쳐 버리는 너였지.
'응? 뭐지?'
갑자기 멈춘 울음에 화들짝 놀라 너를 쳐다본 너는
조그만 입으로 하품을 하고 있더라고.
'또 내가 뭐 잘못해서 기절한 줄 알았네..'
네 상태를 확인하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쿵쾅대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뭐야? 도윤이 갑자기 왜 조용해? 도윤아!"
울던 애가 갑자기 울음을 멈추자 놀래서 화장실에서
뛰어나오는 엄마. 너를 안고 있는 아빠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우와.. 오늘 여러 번 놀라게 하네? 아저씨 지금
도윤이 재운 거야?"
"응? 아니 아직 자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엄마의 말에 내려다본 너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지.
"넌 누구야? 이러는 거 같은데?"
태어났을 때 빼고는 얼굴도 자주 보지 못했고,
집이라고 왔는데 짜증만 내고 귀찮아하던 사람이
자기를 안고 있으니까 이게 누구인가 싶어서
뚫어지게 쳐다보나 싶더라고.
"아니지~ 우리 도윤이 아빠한테 안겨서
지금 감격 중이다요."
"도윤이보다 당신이 더 감격한 거 같은데?"
"웅! 그것도 맞다요! 이렇게 잘하면서 왜 그랬어!
이제 도윤이는 나한테 맡기고 얼른 자. 출근해야지."
너를 엄마에게 넘기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어.
그날도 새벽 내내 간헐적으로 울어대는 네 덕에
제대로 잘 순 없었지만 말야.
"도리야! 애 아프다며? 어떻게 된 거야? 병원에선 뭐래?
퇴원은 한 거야?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데? 조그만 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는 괜찮아? 얼굴 봐.."
다음 날. 아빠를 보자마자 질문 공세를 퍼붓는 정현이.
"흐아아암. 하나씩 물어.. 아니야 묻지 마 피곤해."
"잠도 못 잤나 보네? 아직도 많이 아파?"
"하암.. 묻지 말라니까 참.."
하품을 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문득
네가 하품하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더라.
그때.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아빠를 발견한 팀장님이
아빠를 불러 세웠어.
"도리! 흡연실로!"
'하아...'
또 뭐라고 화를 내시려고 저러나. 어제 쓴 연차 때문에?
일정 차질 없게 진행하라고? 그것도 아니면
역시 너는 안 되겠다며 프로젝트에서 빠지라고?
오만가지 상상을 다하며 팀장님을 따라 흡연실로
들어갔지.
"애는?"
"네?"
"애 아프다며? 애는 어떠냐고. 입원했냐?"
"아.. 수액 맞고 지금은 집에 있습니다."
"..."
아빠의 말에 뭔가 생각하는 듯이 잠시 말이 없던
팀장님.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고는 다시
내뱉으며 말을 이었어.
"애 아프면 진짜 사람 미치지. 놀랬겠다?"
"네.. 뭐 조금.."
"일정을 맞출 수 있겠냐?"
'그럼 그렇지. 결국엔 일정 맞추라고 압박 주려고
부른 거였어'
라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오더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 좋아. 내가 딱 2주 더 준다.
그 정도면 야근 없이 넉넉하게 할 수 있지?"
"추.. 충분합니다!"
어제 아빠가 연차 내고 팀장님은 팀장님대로 바쁘셨던 거야
관계자들한테 전화하고 일정조율하고 내부 긴급회의
소집하고.. 작지만 크다면 큰 그 배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살짝 맺히더라.
"그래. 열심히 해라. 그리고, 애 장난감이나 사줘."
아빠에게 오만 원권 2장을 내미는 팀장님.
"저.. 저번에도 큰돈 주셨는데.."
"너 주는 거 아냐. 병문안 못 가서 주는 거야.
피고 들어와라"
그렇게 한동안 아빠는 돈을 쥔 채 흡연실을
떠나지 못했어.
"오! 도리아저씨 오늘은 야근 안 하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너를 안고 현관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엄마.
"응. 일정이 미뤄져서. 이거 받아."
"응? 와! 웬 돈이야? 십만 원?"
"일 잘한다고 금일봉 받았어. 도윤이 장난감 사주래"
"그럼 도윤이한테 줘야지~ 아빠감사합니다~
받아 도윤아~"
"그런 말을 하겠냐~"
엄마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너에게 가까이 돈을 건네는
아빠였지. 그 순간, 돈이 좋은 걸 아는지 너는 돈을 향해
손을 내 뻗었어.
"애 봐라? 돈이 좋은 건 아나 보네? 인생 2회 차인가?
... 어...?"
그때였지. 그 작은 손으로 돈이 아닌 아빠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잡은 너.
"봐.. 봤어? 애 지금.. 내 손 잡았다!"
그건 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에게 건넨
인사였어. 잊을 수 도, 다신 놓을 수도 없는
인사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