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에서 흘러나온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다감한, 애정이 묻어 있는 목소리가 아닌
많이 지쳐 있는 듯하면서도 너무도 차가운 목소리였어.
"당신.. 진짜 너무한다..."
"아니 나도 어쩔 수.."
변명을 하려는 아빠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을 잇는 엄마였지.
"나 혼자 도윤이를 어떻게 봐? 아무리 바빠도
너무한 거란 생각 안 해?"
"누가 놀면서 안 간데? 어떡해? 말도 안 되는 작업을
이번 주까지 마치라는데?"
미안한 마음을 회사일로 인한 짜증으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는 아빠였지.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해해 주기를 바랬어.
'그래 그럴 수 있지.'
'너도 고생하는구나.'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런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이해를 바랬는지 몰라.
하지만 엄마는 예상과 달랐어.
"당신은 가정보다 회사가 우선이야?"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엄마의 말이 옳아서? 내가 잘못한 걸 깨달아서?
아니, 엄마의 말속에는 아빠의 생각, 그리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해, 배려가
전혀 없었다고 느껴졌던 거지.
"돈 없이 가정을 어떻게 지키니!"
결국 큰 소리를 질러 버렸지.
"그리고 돈 벌려면 회사에서 인정받고 잘 붙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그러려면 회사에서 원하는 걸 해줘야 하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너의 울음소리.
'응 아냐 도윤아 괜찮아~'
그리고 이따금 들려오는 널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
이 상황이 너무 짜증 난 걸까?
가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뭔가가 결국 폭발해 버려
입 밖으로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
나 조차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
"내가 뭐만 하면 너 아빠야, 너무하네 하면서
다 맘에 안 들어하는데. 나도 살려고 그런다.
다 같이 좀 살아보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그래서? 내가 그렇게 기름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계란후라이한 것도 살아보려고 한 거다?"
더 이상 내가 아는 엄마는 없었어.
낯선 사람과 통화하는 기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그 당혹감과, 상실감은 아빠를 더 분노하게 만들었지.
"계란후라이! 너 좋아하는 거 해준 것도 잘못이야?
이게 다 도윤이 때문이야!
그 새X 태어나고 되는 게 없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퍼붓고 있을 무렵.
엄마의 기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너. 말 조심해."
"아.. 그게 아니고.."
아차 싶어 사과를 했지만. 그 찰나의 시간마저도
너무 늦어버린 후였지.
"알았어. 야근해."
야근하라는 말과 함께 끊어져 버린 전화.
'아오 씨X'
답답한 마음과 후회를 담아 핸드폰을 집어던졌어.
일부러 소파 위로 던졌건만 둔탁하게 울리는
핸드폰 떨어지는 소리에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쭈볏쭈볏 걸어가 핸드폰을 들어 올렸어.
'깨진 건 아니겠지? 하아..'
그날 야근을 하는데 일이 잘 될 리가 있겠니?
모니터만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발작처럼
터져버리는 답답함에 담배피러 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시계를 보니 어느덧 9시를 가리키고
있더라고. 작업은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전화라도 해볼까?'
주체하지 못한 화로 인해 엄마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다시 전화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빠의 자존심은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있었지.
'됐다~ 나만 잘못했나? 내 말이 뭐 틀리냐고.
무슨 죽을죄를 지었냐고 내가...'
이내 고개를 휙휙 젓고는 키보드에 손을 올려
놓았어.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퇴근할 순 없었거든.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 그건 일정이 넉넉할 때
얘기고, 아빠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잖니?
시계가 11시를 가리키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어.
입에 담배를 문체 집에 가면 어떻게 얘기를 할까
고민하면서 말이지.
집 문 앞.
'그래도 뭐.. 크게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고리를 잡았어.
/도리아저씨 왔다!/
별일 없을 거야. 여느 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반겨 주겠지.
문을 열고 들어간 집.
자고 있는 널 안은채 소리도 들릴까 말까 한 티비를
틀고 멍하니 앉아있는 엄마.
'나 왔어..'
아빠의 인사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티비만 쳐다보는
엄마.
"나 왔다고. 사람이 왔으면 쳐다는 봐야 되는 거 아냐?"
아빠의 큰소리에 엄마의 시선은 아빠가 아닌
시계로 향했어.
"내일 오지 그랬어? 그리고 소리 지르지 마. 도윤이 깨"
"그게 지금까지 일하고 온 나한테 할 말이야?"
"하아... 담배도 피셨네? 나하고 도윤이한테
관심 없는 건 알겠는데. 조금만 주의해 줘.
부. 탁. 할. 게."
화해하려고 차에서 그렇게 고민하고 연습을 했건만
엄마는 시도조차 못하게 아예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어.
일부러 신경질적으로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향했지.
답답한 마음에 괜히 소리도 한번 질러보고
벽도 한번 쳐봤어. 만약, 밖에서 엄마가 듣는다면
아.. 애도 화가 많이 났구나, 많이 답답해하는구나
하고 혹시라도 느끼길 기대하면서 말이지.
씻고 나왔는데 엄마는 퇴근할 때와 다름없이
영혼 없는 눈빛으로 티비를 응시하고 있었지.
여전히 너를 안은 채로 말이야.
"애 자는데 안자?"
"너 자"
"아니 안 자냐고"
"당신 자라고."
"뭐 어쩌자는 거야? 말을 해야 풀던지 싸우던지
할거 아냐?"
아빠의 말에 엄마는 한번 울컥하는 듯하더니
살짝 격양된 말투로 아빠에게 쏟아붓기 시작했어.
언제 맺힌 건지 눈물을 떨구면서 말이지.
"좀 놔둬! 내가 기계야? 나는 감정도 없어?
니가 풀으라면 풀고 참으라면 참아야 돼?
놔둬. 지금은 풀고 싶지 않아. 풀릴 때까지 제발 좀
놔두란 말야!"
"그럼 나는!"
"그러니까 당신도 당신대로 힘든 거 같으니까
서로 할 일 하자고. 야근하는 거 뭐라 안 할게.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나둬."
"몰라 맘대로 해!"
더 이상 대화는 무의미해졌어.
큰 목소리에 놀라서 깬 건지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우는 네 울음소리만이 집안을 가득 채웠지.
엄마와 아빠가 싸운 걸 아는지 그날따라
더 자주, 그리고 더 크게 울더라.
다음날.
그날도 밤새 시달렸는지 네 옆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지도 않은 채 조용히 회사로 향했어.
어제 일이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던지.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도윤이는 잘 노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얼마나 미안한지.
전화기를 꺼내 엄마 번호를 눌렀지만 끝내
통화버튼은 누르지 못하고 주머니에 다시 넣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 하루였지.
'그래. 혼자 애 보는데 그 시간은 너무했다..'
야근 때문에 혼자 독박육아 하는 것도 힘들 텐데
자정이 다돼서 들어온 내가 좀 너무 했다 싶었지.
그래서 그날은 물도, 커피도, 심지어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일만 했던 것 같아.
좀 더 빨리 퇴근하려고 말야.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 40분.
이미 늦은 시간임에도 어제보다 낫다는 생각을
위안 삼아 집으로 들어갔어.
문밖까지 흘러나오는 네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말이지.
문을 열자, 또 얼굴이 시뻘게져서 울고 있는 너를
웬일인지 바닥에 그냥 내려놓은 채 서랍에서 뭘
찾고 있는 엄마가 보이더라고.
"뭐 해?"
"..."
아빠를 한번 쳐다보더니 여전히 말이 없는 엄마.
"뭐 찾아? 같이 찾아 줄까?"
"... 체온계..."
"체온계? 그거 당신만 쓰잖아. 여기 어디 잇겠지."
"몰라.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어. 분명히
두던 데다 뒀는데..."
5층으로 된 조그만 서랍장.
한 층 한 층 다 열어보고 뒤져봐도 체온계가 나오지
않는 거야.
티비 근처도 뒤져보고 이불도 뒤적여 봤는데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어.
"하아.. 근데 체온계는 왜? 얘.. 아니 도윤이 어디 아파?"
"자꾸 울어서 열이 좀 있나 싶어서.."
그때 아빠 눈에 불룩 나온 엄마 주머니가 보였어.
"마지막으로 언제 썼는데?"
"한 시간 전쯤?"
"어디다 뒀는데?"
"주머니? 아!"
"..."
"와! 얘가 왜 여깄 대?"
주머니에서 체온계를 꺼내 한번 놀라고는
네 체온을 재는 엄마를 뒤로하고 욕실로 향했어.
씻고 나온 시간이 짧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울고 있는 너를 아직 화가 안 풀린듯한 표정으로
안고 달래고 있는 엄마를 보며
뭔가 말을 꺼낼까 하다가 그냥 자리에 누워버렸지.
"도리아저씨 미안..."
너의 울음소리, 그리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쉽게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그냥 답답했어. 도윤이는 울고, 할 일은 많고,
당신이 뭐라도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항상 바쁘니까..."
"그래도 소리 지르는 건 아니지. 그리고 말을 해야
풀 거 아냐. 나랑 대화 안 하려고 그랬어?"
사람 참 간사하지? 그렇게도 어떻게 화해할까?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하던
아빠였는데도 엄마가 먼저 사과를 하자, 마치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엄마에게 따지고 있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몰라. 나 산후 우울증인가 봐.
막 답답하고, 속상하다가도 막 신나고..
진짜 미친 사람 같아.."
울먹거리며 말을 잇는 엄마. 그런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지더라. 엄마도 아빠처럼 모든 게
처음일 텐데 갑자기 한 아이의 엄마가 돼서
그 아이에게 자기 생활의 일부도 아닌 전부를
걸어가며 보살핀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얼마나
아플지 감히 상상 조차 하기 어려운데 엄마는
그걸 하고 있었으니 말야.
"주말에 푹 자! 내가 주말엔 도윤이 볼게."
아빠의 약속에 엄마는 활짝 웃어 보였어.
여전히 눈에 눈물이 맺힌 채 말이야
"오! 진짜? 도리아저씨 약속한 거다?
좋았어~ 시체처럼 자야지!"
그렇게나 좋을까? 신나 하는 엄마를 두고 잠자리에
들었지.
얼마나 잤을까?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또 잠이
깨고 말았어.
'하아.. 이건 진짜 적응이 안 되네.. 사이렌이야 뭐야..'
그냥 무시하고 자야지,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조금 있다가 출근해야 하니까.
그런 생각들로 네 울음소리를 무시하고 계속 자려는데
엄마가 아빠를 흔들어 깨웠어.
"도.. 도리아저씨.. 일어나 봐.. 도리아저씨!"
"응? 왜?"
"도윤이가.. 도윤이가 이상해.."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너를 바라봤어.
자기 전보다 더 빨개진 것 같은 얼굴.
혹시나 해서 만져본 네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지.
"뭐야 애 열이 왜 이래? 언제부터 그랬어?"
"어제부터 맘마도 잘 안 먹고 미열도 있긴 했는데.."
"그럼 병원을 갔어야지. 119. 119 전화해 봐 빨리."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는 엄마.
"도윤아.. 엄마가 미안해.. 도윤아.. "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전화를 손에 꽉 쥔 채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엄마였지.
저상태로는 통화도 어렵겠다 싶어서 엄마 전화를
뺐어 들었어.
"여보세요? 애가 지금 열이 불덩인데 구급차 좀
보내주세요."
"아이가 몇 살인가요?"
"3개월 정도 됐어요."
"체온은 어떤가요?"
"체온은.. 아 뭔 말이 많아요? 그냥 좀 보내주세요
지금 당장요..."
체온을 묻기 위해 엄마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몸이 살짝살짝 떨리면서 눈동자까지 하얘지는
너를 보며 이성을 잃었던 것 같아.
"아기 상태는 지금 어떤가요?"
"아 됐어요! 알아서 갈게요! 급한데 뭘 그렇게 물어대!"
전화를 끊은 후 너를 안고 부리나케 차로 향했어.
"아저씨.. 운전 조심해야 돼? 응?"
"알았으니까 너무 걱정 마. 도윤이도 괜찮을 거야."
"그렇겠지?"
"어. 장담해."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신호위반과 과속을
병행하며 도착한 병원 응급실.
너는 죽어라고 울고 몸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은데
의료진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어.
"아 여기 의사 다 죽었어요? 왜 안 와요!"
"아버님. 지금 응급환자 순으로 진료를 하고 있어서.."
"여기서 애가 제일 어린데, 애는 응급환자 아니란 말이에요?"
"기다리시면 선생님 오실 거예요"
그렇게 의료진이 떠나고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의사에 너와 엄마를 두고 밖으로 향했어.
그리곤 응급실 옆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지. 너를 데리고 오는 날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
그리고,
정말 안 좋은 상상을 했어.
'이러다 죽는 건 아니겠지...'
처음 보는 네 모습에. 아니 정말 처음 보는
아기가 아픈 모습에 겁부터 덜컥 나더라.
모든 게 네 탓이라고 생각했던 아빠의 탓인가 싶어
벽에다 머리를 몇 번이고 부딪혔어.
'미친놈아 왜 그딴 생각을 해. 어쩌자고 이 미친놈아!'
내 생각이 너에게 닿아서, 아빠가 날 필요 없어하니까
이렇게 떠나는 게 아빠가 행복하는 길이구나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네가 아픈 게 아닐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때는
참 진지했던 것 같아.
담배를 다 피우고, 바로 들어가려다가
응급실 입구 옆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어.
옷을 털고, 손도 씻고, 세수도 하고.
고개를 들어 축축이 젖은 얼굴이 거울에 비쳤을 때.
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어.
'아빠..'
아빠란 게 뭔지, 아이라는 게 뭔지, 어떤 게 아빠다운 거고,
어떤 게 아빠 같은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서
스스로 누군가에게 내가 아빠다, 애가 내 아들이다.
라고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던 단어들.
무를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아빠라는 자리.
앞으로도 적응하는 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이제 정말 받아들여야 모두가 행복하고,
무엇보다 그게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구나.
더 이상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구나.
"어? 의사 왔다 갔어?"
"웅.. 어디 갔다 왔어..?"
"화.. 화장실.. 배가 아파서.."
"담배 핀 거 아니지?"
"담배는 무슨.."
수액이 연결된 너의 작은 팔을 보면서
의사가 왔다갔음을 알 수 있었지.
"애는 뭐래?"
"열성경련.. 피 뽑아갔어.. 면역이 약한 상태에서
차를 너무 오래 탔나 봐.."
"잘못되는 건 아니라지? 아휴.. 조그만 게
사람 놀래키고있어."
"피 뽑아 갔는데.. 일단 도리아저씨.
집에 가... 출근해야지.. 요즘 바쁘다며
못 자서 어떡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더라.
약물이 효과가 있었는지 울음도 그친 채로 잠들어버린 너.
얼마나 울었는지 퀭한 눈으로 아빠에게 말을 건네는
엄마. 이 둘을 놔두고 출근해야 되는 상황이었어.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그렇게 너와 엄마를 두고 응급실을 나서려는데
조용한 목소리로 엄마가 아빠를 부르더라.
"도리아저씨.."
"응?"
잠시 머뭇 거리더니 이내 남아있는 힘을 모두
짜낸 듯이 힘들게 방긋 웃으며 말을 잇는 엄마.
"도리아저씨. 오늘 진짜 멋진 아빠였어. 고마워"
엄마의 말에 왠지 먹먹해져 눈물이 살짝 고이더라.
"그럼 내가 가짜 아빠냐? 이따 봐~"
등을 돌려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응급실을 나왔어.
어둠이 슬슬 걷히고 있는 하늘. 선선한 새벽바람.
한적한 도로. 급하게 내원하는 바람에 노상에
주차해 놓은 차로 걸어가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지.
타들어가는 담배는 아빠의 복잡한 머릿속까지
태우지 못했어.
어느덧 필터 위까지 다 타버린 담배.
아빠는 새 담배를 다시 꺼내 물었지.
그리곤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지.
"여보세요? 네가 웬일이냐 이 시간에 나한테 직접?"
"아 팀장님.. 다름이 아니고.."
마케팅팀 팀장님에게 건 전화였어.
"다름이 아니고 뭐? 용건이 있을 거 아냐?"
"저 오늘 연차 좀 쓰려는데.."
연차라는 말에 팀장님은 한숨부터 팍 쉬셨어.
"하아.. 너 세찬이 닮아가냐? 오늘 연차 쓰고
금요일까지 가능해? 이게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아.. 애가 아파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거든요.."
"아니 애가 뭘 어떻게 아프길래 회사를 못 나와?
일정 뒤틀리면 누가책임지냐?"
"아..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봐서 아니 너무 절실하기에 용기 내
건 전화였는데도 팀장님께서는 화만내시더라고.
안되는가 보다. 이게 사회생활이고 이게 회사인가 보다
싶어 전화를 끊으려는데
"야 그리고 너네 대가리 누구야? 연차를 쓰려면
김세찬이한테 전화를 해야지 왜 새벽부터 잠을
깨우고 그러냐?"
"아? 저 그럼 연차 써도.."
"애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몰라 어쨌든
이번 주까지 꼭 완성시켜 놔. 끊는다"
팀장님과 전화를 끊고 바로 김 과장한테 전화를 걸었지.
"뭐냐.."
"과장님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끊어. 회사에서 얘기해.."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웅얼거리는 말투로 얘기하는
김 과장이었지.
"아.. 과장님 잠시만요."
"아~ 왜애! 도리도리 왜!"
"저 오늘 연차 좀..."
"하.. 써! 써! 쓰라고! 난 또 뭐라고. 니 연차지 내 연차냐?
아씨 잠 다 깼네. 어떻게 책임질 거야 도리도리"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복귀할 때 사이다."
결국 연차 허락을 받고 말았지.
뭔가 속이 시원한 게 개운한 느낌마저 들더라고
차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서 응급실로 향했어.
"어? 도리아저씨? 왜 뭐 놓고 갔어?"
아빠를 보며 의아한 듯 물어보는 엄마.
그런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어.
"다녀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