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면 더블로 가!
나의 혈육이 다니는 중동 항공사를 기준으로 스탭 할인 티켓에도 등급이 있다. 복잡한 내부 규정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족 입장에서 일단 가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ID90과 ID50으로, 혈육에게 물어보니 대충 90은 90% 할인, 50은 50% 할인이란다. 실제 지불하는 가격을 보면 9시간짜리 한국-중동 편도 티켓이 ID90은 약 8만 원, ID50이면 약 16만 원 수준으로, 타려고 하는 비행편의 예약 상황이 널널하다면 당연히 ID90을 선택한다. 승무원들은 사내 앱으로 해당 비행기의 자리가 얼마나 찼는지, 스탭이 몇 명 대기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족들도 이 정보에 의존해 예약을 결정한다.
물론 잔여석이 많은 경우가 그리 흔하진 않다. 코드쉐어 등을 통해 한 비행편에 여러 항공사를 통해 예약을 받아 꽉꽉 채워서인지 루트와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남은 자리는 항상 간당간당한 경우가 많다. 가볍게 혼자 타는 경우라면 '놓치면 다음편 타지 뭐~'하며 여유를 부릴 수도 있지만, 중요한 볼일이 있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 등 오프로드 당했다간 피곤해지는 경우에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조금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윗단계 티켓인 ID50으로 발권한다. ID50은 일정 조건 하에서 컨펌 티켓(마지막까지 대기하는 것이 아닌 일반 승객 티켓처럼 미리 확약되어 자리 선택, 사전 체크인 가능)으로 발권할 수 있는 경우가 있어 중요한 일정에는 할인도 되면서 안심도 할 수 있는 고마운 옵션이 된다. 물론 ID90보다야 금액을 더 지불해야 하지만 필요할 땐 아주 요긴하다. 우리 가족도 부모님과 함께한 유럽 비행 귀국편에서 이 등급으로 마음의 부담을 덜었었다.
티켓 등급뿐 아니라 그 비행편에 스탭이 몇 명 대기하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나의 운명이 결정된다. 같은 등급의 티켓이라면 순위는 크게 승무원 본인(끼리는 사번 순)>가족>친구(버디) 순이기 때문에 앱으로 미리 이 서열(?)을 보며 베팅을 한다. 예를 들어 잔여석이 3인데 대기하고 있는 스탭이 4명이고 그 중 버디가 2명이라면 가족인 나의 경우는 '휴 나까지는 어떻게 타겠군' 하는 식이다. 물론 엄청 아슬아슬한 예시라 이 정도면 마지막까지 불안에 떨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실 승무원의 친구 신분으로는 직원 티켓을 사용하기 열악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승객과 승무원 본인, 가족만으로도 이미 자리는 꽉 차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러니 혹시 승무원 친구가 적극적으로 할인 티켓을 제안하지 않는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말자. 오프로드 당하면 정말 난감하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본인이나 가족을 태울 때도 X줄이 탄다.
잔여석과 스탭 등록 수도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ID50을 해야 할지, ID90만 해도 될지 애매한 경우가 많아 체크인 당일까지도 사내 앱을 통한 눈치싸움은 계속된다. 자리가 충분히 남아 최하위 등급으로 끊어두었는데 갑자기 당일날 아침에 승객이나 스탭 예약이 확 늘어 자리가 간당간당해지면 급하게 상위 스탭 티켓으로 교환하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한 마음에 미리 상위 티켓으로 끊어두었는데 당일에 다시 확인해보니 ID90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다시 변경해 비용을 절약하기도 한다.
혈육이 승무원이 된 후 나도 수없이 항공사 카운터 옆을 서성이며 순서를 기다렸다. 자리가 많은 비행편의 경우라면 출발 한 시간~두 시간 전쯤 가도 바로 발권해 주거나 승객 줄에서 똑같이 수속하라는 안내를 받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탑승 가능 여부를 알 수 없을 만큼 풀플라잇인 경우 직전까지 수차례 카운터를 왔다갔다를 반복해야 했다. 한번은 짧은 휴가를 내고 혈육의 뉴질랜드 데이오프 비행(중간에 휴일이 하루 낀 비행으로 조금 여유있게 현지에 머물며 여행할 수 있다)에 따라갔다 출근을 위해 반드시 홍콩으로 복귀해야 했던 날, 직전날까지는 분명 혈육과 앱으로 확인하며 '지금 남은 자리 x개에 스탭 x명이고 그중 하나는 버디니까 너까진 타겠다~'하며 안도하고 있었는데 당일 갑자기 추가 예약과 승무원 본인의 스탭 예약이 늘어 내가 순위가 밀리면서 비행기를 놓칠 위기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걱정이 되어 일찌감치 카운터를 찾아가 상황을 물어보니 누군가 노쇼하지 않으면 못 탈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상황을 봐야하니 한 시간 십오 분 전에 다시 오라해서 커피 마시며 걱정하다 겨우 시간이 되어 갔더니 그때도 아직 못 준다며 다시 오십 분 전에 와 보라고 하며 마지막까지 피를 말렸다. 기다리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편도 티켓을 찾아보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다행히 신이 도와 극적으로 자리를 받았고 심지어 운 좋게 비상구석을 받아 편안하게 왔던 기억이 있다.
내 혈육이 승무원인 것을 알게 된 어느 외국인 동료는 자신의 친구도 승무원이라며, '스탭은 세금만 내고 탄다며?'하며 부러운 듯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규정은 모르겠고 대략 홍콩-한국 기준 스탭 티켓값을 얘기하자 그 비용이면 자신은 스탭 티켓이 아니어도 고향에 왕복으로 다녀올 수 있다며 생각보다 높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항공사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고 알고 있지만 체감으로는 세금 혹은 공짜에 가깝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원가격을 생각하면 세금이나 거의 공짜가 맞을지도ㅋ) 조건이나 거리에 따라 스탭 티켓의 가격도 올라간다. 내 경우 직계가족이 아닌 자매인지라 가족 중에서도 분류 기준이 달라서 부모님은 사용할 수 있는 타항공사 티켓을 나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당되는 항공사의 경유 티켓을 많이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경유하며 두 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로서는 거리도 멀어지고 스탭 티켓 부담금도 올라가게 된다(물론, 그래도 일반 티켓보다 저렴하니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경유 티켓의 경우 처음부터 1, 2섹터의 탑승권을 모두 확보하는 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좌석 상황이 불안하면 먼저 1섹터 티켓만 받고 경유지에 가서 2섹터 티켓을 확인해 보라며 일단 경유지로 보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일단 경유지에 내려서 연결편을 탈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하고 유사시 다음 항공편으로 밀리거나 하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나는 경유지에서라도 제때 티켓을 받았었다.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스탭 티켓은 최고의 복지이자 때로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기도 해서 가족이나 주변인을 태워 반드시 가야 할 때 한계와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혈육의 어느 동료는 가족여행에서 치열한 스탭 티켓 사용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휴 내가 그냥 일반 예약을 하고 말지'하고 항공권 가격을 조회했다가 이내 수백만 원에 달하는 정상가에 숙연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전에 십몇만 원에 탑승했던 편도 티켓의 가격을 방금 조회해 보니 정상가가 200만 원에 육박한다.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