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은 당신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혈육이 승무원이 된 후, 우리는 각자의 나라에 떨어져 살면서도 직업적 혜택을 적극 활용해 한국이나 서로의 나라에서 자주 만났다. 그때마다 새로운 비행 이야기가 주 화젯거리 중 하나였는데, 한번은 혈육이 어느 컴플레인 썰을 풀다 '태블릿으로 국적을 봤더니 XX나라 사람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깜짝 놀라 승무원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있냐고 묻자 혈육은 당연하다는 듯 "응, 태블릿 보면 다 나와."라고 했다.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태블릿을 보면 승객의 좌석 번호별로 이름, 나이, 국적, 항공사 멤버십 등급, 스탭 여부 등등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비행기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처음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었다. 지상직 직원도 아니고 기내 일반 승무원이 이런 정보를 그 자리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로 자주 열어 본다는 것!
그렇지 않아도 혈육이 승무원이 되고 나서는 감정이입이 되어 이미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뭘 부탁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렸지만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기내에서 행동거지를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꼭 '진상'이 되지 않더라도 어떤 이유로든 주의를 끌었다간 호기심이 동한 승무원들이 내 정보를 찾아보고 화젯거리로 삼을 수도 있으니까. 반대로 이런 사실이 약간 도움이 된 적도 있었는데, 스탭 티켓으로 따라 간 비행에서 남은 좌석 중 어느 아시아 여성의 옆자리로 선택해서 들어간 것이다. 기내로 들어가 오버헤드 빈에 가방을 넣고 자리에 앉으며 옆자리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눈인사를 하고 앉아 벨트를 채우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가 일부러 본인 옆자리를 고른 줄은 전혀 모르겠지'. 물론 딱히 개인정보에 관심은 없다. 그냥 인구통계 분류상 나랑 비슷한 아시아 여성 옆자리에 앉는 것이 가장 편했을 뿐.
이 외에도 혈육이 승무원이 되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되거나 익숙해진 점들이 있다. 전에는 공항에 세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한 편이었는데, 스탭 티켓을 사용하게 되고부터는 어차피 약 한 시간 전쯤에야 수속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때 가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많은 승객을 처리하려면 미리미리 가는 게 맞겠지만, 조금 늦게 되더라도 그리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진 건 사실이다. 물론 항공사마다 규정이 다를 수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이 아예 닫혀 스탭이든 뭐든 체크인을 못 하게 될 수 있으니 평상시라면 되도록 빨리 수속을 마치는 것이 좋긴 하다.
다른 하나는 기내에서의 자리 변경이다. 나는 강경 복도석 파지만 스탭 티켓은 자리 선택권이 없어 만석일 때는 중간에 끼는 최악의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기내에서 승무원을 붙잡고 다른 빈자리가 있는지 물어보곤 했다. 정말 옮길 데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는 카운터에서는 복도석이 없다고 해도 기내에서 다시 물어보면 비상구석이나, 남는 다른 자리를 안내해 주는 경우도 꽤 많았다. 물론 이것도 항공사마다 규정이 달라서 유료 좌석은 기내에서도 안 바꿔 주거나 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내에 탔는데 어떤 이유로든 자리가 불편하다면 괜히 머뭇거리며 참지 말고 승무원에게 일단 한번 물어볼 가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