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이 꼽은 가장 뿌듯한 순간
혈육의 항공사 입사 후에도 나는 한동안 스탭 티켓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우선은 아직 코로나로 격리기간 등 해외여행에 제약이 있던 시기였고, 개인적으로도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체력적으로 간신히 버티던 때라 놀러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케줄이기도 했다. 또 어차피 갓 입사한 승무원은 바로 스탭 티켓 혜택을 쓸 수는 없었고 수습기간 등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입사로부터 약 반년 이상이 지나서야 나도 첫 스탭 티켓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스탭 티켓 비행은 호주 시드니였다. 당시 학업 마무리를 위해 시드니에서 마지막 한 학기를 마치도록 되어있어서 그 전에 혈육이 살고 있는 중동 모 지역을 거쳐 며칠 머무르다 시드니로 넘어가기로 했다. 생애 처음으로 스탭 티켓을 써 보던 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인천공항 해당 항공사 카운터 중 제일 끝 쪽에 비어 있는 곳으로 가서 문의하니 사전 예약된 스탭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는 '스탭 티켓 체크인은 x시 x분부터 시작할 예정이니 그때 주변에 와 있으라'고 했다. 나오며 살펴보니 주변에 대기하는 스탭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참고로 혈육의 항공사를 기준으로 스탭 티켓을 이용하려면 일종의 복장 규정이 있어서 츄리닝 같은 차림으로는 탑승이 거부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책잡히지 않을만한 단정하고 긴 복장으로 가게된다. 그러니 몇 번 타다 보면 스탭 티켓을 사용하는 사람끼리는 '혹시...?' 하며 서로 은근히 알아보는 기류가 생성되기도 한다ㅋ 물론 아닐 수도 있음.
일반 승객의 탑승이 모두 마감될 무렵인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쯤 스탭 체크인이 시작되었고, 스탭 중에서도 입사일, 스탭 본인인지 가족인지 친구인지, 어떤 등급의 스탭 티켓인지 등 여러 조건에 따른 우선순위자와 동급인 경우는 카운터 도착 순서 등을 고려해 순서대로 호명되는 듯했다. 물론 이렇게 체계적이고 다소 엄격한 절차는 아무래도 스탭 출국자가 많은 인천공항에서 가장 두드러졌고 해외 공항에서 이용할 때는 같은 루트를 이용하는 스탭 자체가 비교적 적다보니 상황에 따라 바로 티켓을 받기도 했고, 기다리더라도 인천처럼 방송으로 이름까지 호명하며 차례차례 탑승한 경험은 없었다. 인천공항은 출국자가 많다보니 이런 식으로 호명하다 후순위자는 티켓을 받지 못하고 오프로드 되는 일도 빈번하다고. 그런 경우 다음날 다시 시도하든지 하는 식이다.
이윽고 내 이름이 불리고 카운터로 가서 복도석을 요청했고, 다행히 남은 자리가 있어 복도석에 앉아 편히 출국할 수 있었다. 코로나를 지나 몇 년만의 설레는 출국길, 그것도 얼마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던 혈육이 끊어준 스탭 티켓으로 한때 내가 꿈꾸기도 했던 A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어쩌면 내가 살았을 수도 있었던 그 사막 도시로 향하는 길은 설렘과 재미, 감동, 감사함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있었다. 혈육의 숙소에 머물며 승무원의 생활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유니폼도 한번 입어볼 수 있었는데 나한테도 잘 어울릴 색깔이라고 생각했는데 입어 보니 참 안어울렸다(다행이다ㅋ). 또 혈육 방문이 아니었다면 굳이 올 일 없을 것 같은 중동 도시를 둘러보며 의외의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과 맛있는 음식에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중동에서 시드니까지 14시간의 긴 비행. 당시 함께 시드니로 갔던 동기 한 명은 워낙 여행을 많이 다녔어서 내가 중동을 거쳐 시드니로 들어가겠다 하니 곧바로 거리를 파악하고는 '그렇게 돌아서 간다고?'하며 깜짝 놀랐지만(실제로 한국에서 그냥 가는 게 더 빠르니까) 그게 대수랴. 덕분에 중동도 처음으로 방문하고 혈육의 사는 모습도 보고, 거리나 시즌에 따른 가격 부담없이 스탭 티켓으로 가는 경험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즐거움이었다(스탭 티켓은 어차피 남는 자리로 가는 것이라 시즌에 따른 차이는 없고, 거리에 따라서는 가격이 좀 달라지긴 한다). 울트라 롱 홀 플라잇으로 불리는 긴 비행이라 그런지 평소 같으면 미리 티켓을 줄 정도의 여유가 있어도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하긴 했지만 결국 또 운이 좋게 옆자리가 빈 복도석을 받았고, 기종이 커서 그런지 좌석도 넓고 비행기도 새것 같은 느낌이라 앉은 다리까지 하고 편하게 갔다. 곧 누군가가 옆으로 자리를 옮겨 그것도 잠시긴 했지만.
그리고 혈육에게는 이 비행이 승무원이 되어 가장 보람찼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동생이 공부하러 가는 길에 그토록 오랜 시간 바라던 승무원의 꿈을 이루어 스탭 티켓을 끊어줄 수 있었다는 것. 동생인 나는 솔직히 그 마음을 정확히 느끼진 못하겠지만 그냥 그런 마음을 갖고 나에게 티켓을 끊어주고 싶어 하는 혈육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이다. 혈육이 아직 승준생이고 내가 대학원 공부를 막 시작했을 무렵, 혈육은 종종 K장녀 특유의 마인드를 발휘해 "너가 나중에 시드니 갈 때까지 내가 승무원이 되어서 스탭 티켓으로 그 비행기 끊어주면 좋겠다~"하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고, 나 역시 "그러면 좋지~ 근데 안 되어도 상관없으니 괜히 압박감 느끼진 말고"하며 큰 기대 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종종 우리의 대화거리였는데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다'하며 얘기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살다보면 생각지 못한 기적이 많이 일어남을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