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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의 쾌거와 떡고물

승무원 가족이라니, 오히려 좋아!

by 봄날의 봄동이

"이번에 서울 오픈데이 떴던데 유럽 면접 투어 가기 전에 연습 삼아 가보려고"


아직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계속되던 시기, 지칠 대로 지친 혈육이 기대 없는 말투로 어느 외항사의 한국 채용 소식을 알렸다. 당시 혈육은 서울에서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미 햇수로 7년째 승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고, 워낙 한국에서 드물게 열리는 채용과 치열한 경쟁으로 계속 고배를 마셔오던 터라 이번 채용소식에도 큰 기대감은 갖지 않고 있었다. 다만 몇 달 후 유럽 채용 오픈데이 투어(항공사 오픈데이가 밥 먹듯이 열리는 유럽 쪽으로 출국해서 오픈데이가 열리는 도시를 날짜순으로 찾아다니며 한 번에 몇 차례의 인터뷰를 보고 돌아오는 것. 실제로 외항사의 한국 채용이 드물기 때문에 이렇게 합격하는 사람들이 많다)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전에 인터뷰 연습 삼아 다녀오겠다는 심산이었다.


나 역시 한때 못지않은 시간을 투자해 승무원 면접을 보러다녔지만 최종 합격하지는 못했고, 그 사이 몇 년이 흘러 자아 인식이 확고해 지면서(!)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방향을 틀어 이미 승무원의 일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때 제법 굴렀던 사람으로서 준비 과정과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나도 별 기대 없이 그러라고 했다. 어쨌든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혈육은 멀쩡히 회사 다니며 일하고 있었고, 계속되는 탈락에 나도 큰 기대감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내 일만 신경쓰기에도 충분히 바빴고. 하지만 간만에 한국 채용이니 어쨌든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일차 면접 전날 좋은 얼굴 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라며 나름 정성껏 집밥을 차려 불러 먹이고 보냈다(혈육과 나는 각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따로 살고 있었다. 같이 살면 큰일 남).


승무원 면접은 '승무원 고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만큼 결코 합격이 쉽지 않고 준비하다 몇 년씩 흐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적은 채용 숫자에 비해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용모, 영어, 대인술, 관련 경험과 생각정리, 표현력, 나이(!) 등을 고루 갖추어야 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일차 면접의 경우 한 두 마디 대화로 결정나기 때문에) 호감을 갖고 나를 알아봐 주는 '케미가 맞는' 면접관을 만나는 운도 반드시 따라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도 이후 어느 단계에서 점 뺀 자국이나 흉터, 벌스마크 등이 보이거나 혹은 본인이 멋모르고 곧이곧대로 얘기하는 경우(항공사에 따라 잘못 걸리면 점 뺀 자국 하나에도 경기 반응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서 탈락시킨다. -경험담-), 치열이 비뚤거나 교정 중인 경우 등등 수많은 작은 이유로 언제든 중간에 아웃될 수 있기 때문에 승준생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스터디와 면접 준비로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업그레이드하며 -누군가는 영어, 누군가는 말주변, 누군가는 다이어트, 누군가는 피부(놀랍게도 항공사에 따라 엄청나게 중요하다), 또 위와 같은 면접 돌발상황에 대처 능력을 쌓으며 여러 차례 도전하다 몇 년은 금방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별 준비 없이 쉽게 되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어딘가에서 들려오긴 하지만 주변에서 거의 보지 못했고 흔한 경우는 아니라 모르겠다.


상황이 이런지라 일단 일차면접을 통과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되었다. 이후로는 그래도 여러 활동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일단 짧으면 몇 초안에 결정 나는 일차 '걸러내기' 면접을 통과해야 뭐든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혈육의 일차 면접 날, 나도 함께 조마조마하게 소식을 기다리다가 저녁에 만났는데 놀랍게도 이번에 오랜만에 일차를 통과해 온 것이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것도 쉽게 되지는 않았다며, 몇 차례 질문과 대답을 반복한 끝에 다행히 이야기가 면접관과 당시 하고 있던 일 사이의 공통화제로 부드럽게 흘러가 마침내 면접관이 책상 아래 숨겨두었던 이차 면접 초대장을 꺼내 주었다고 한다(보통 일차 면접에서 탈락이면 '나중에 연락을 기다려라'하고 돌려 보내고, 붙으면 초대장 같은 것을 직접 준다. 그러니 승준생들은 이미 면접관과 대화를 마치고 나오며 결과를 알게 되는 셈이다. 기다리라는 연락은 절대 오지 않으므로).


합격 소식을 전하며 혈육은 안도하면서도 앞으로 이차, 삼차, 또 메디컬 체크업, 최종 서류 통과 등등 관문이 많이 남아 있으니 아직 모른다는 투였지만 나는 왠지 '이번에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혈육은 이어진 단계마다 신이 돕는 듯 자잘한 위기들을 순조롭게 넘겼고 나는 매 단계마다 전날 집밥 먹이기와 합격 축하를 담당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혈육은 7년 만의 쾌거를 이루었고 짐을 싸서 인생 최초의 외국생활을 위해 먼 사막 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나에게는 스탭 할인 티켓이라는 떡고물 인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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